- 평범한 학점에 토익 점수는 제로 그렇다고 전공을 살리기를 했나.. 도대체 어떻게 취업한거야?
- 그게.. 나름대로.. 그러니까.. 음!음! 나는 운이 좋았던 거 같애.

각종 수상식의 겸손을 위시한 감사 멘트 중에서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라는 말을 나는 무척 싫어한다. 노력만으로는 되는 것 하나 없는 불공평한 이 땅에 허덕이며 살아가고 있는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누구는 거저먹고 누구는 평생 구경도 못해보는) 행운이라는 것을 굳이 강조할 필요 있느냐는 말이다. 하지만 졸업하기도 전에, 그것도 원하는 직종에 발을 들여놓은 나에게 취업 상담 전화를 걸어온 후배 앞에서.. 나는 그만 그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죽도록 영어 공부하고 면접용 상식백과를 외우며 자기소개서 한 장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가엾은 청년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고작 그뿐인.. 못난 선배로 누가 나를 임명했단 말인가?! 이에 대한 보상심리라고 해도 좋다.

폭력과 섹스가 난무하는 스크린에 시대적 아픔을 경쾌하게 건드린 이 영화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 주고싶었던 심정을 말이다.
허나!!!

청년 실업이 40만을 육박하는 험난한 사회의 백수와 백조에 대한 마음 아픈 공감대를 코믹하게 그려냈으리라.. 그들도 이제 딱! 2시간만큼은 자부심 느끼며 화려한 날개짓을 할 수 있으리라.. 라는 기대를 가졌던 영화‘위대한 유산’을 보며 나의 질문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너는 왜 백수지?

그래. 조금 모자라는 외모로.. 안되는 연기로.. 스타가 되기 위해 안달하는 배우 지망생 미영은 꿈이라도 쫓고 있는 잠정적 미운오리 새끼라고 할 수 있겠다. 갖은 구박과 수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각종 취미생활까지 누리는 당당함도 매력적이니 말이다. 하지만 명문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도 형의 쌈짓돈 축내며 이유없는 백수생활을 지속하고 있는 창식은 무엇 때문에 험난한 백수를 택하였단 말인가?! 담배값 모자라 단돈 100원에도 목숨 걸어야 하는 진정한 백수들에게 그는 너무나도 배부른 ‘명품 백수’란 말이다.

영화 맞어?

남아도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사용하다가 것도 혼자 쓰기 아까워 두 번의 우연을 연출하고, 그 중에 한번은 또 운명적인 사랑을 예고할 만한 희대의 기막힌 상황을 함께 겪게 되는 두 사람. 조폭 보스가 운짱을 하는 것도 우습지만... 교통사고를 내고 뺑소니가 불가해 시체를 병원 앞 휠체어에 안착시키는 것도 희한하지만.. 보상금 타러 갔다가 유괴 당한 두 사람이 소화기하나로 말끔하게 탈출에 성공한 것도 뒤집어지지만.. 20년 전에 잃어버린 아들을 만나기 위해 재벌 할아버지가 밤마다 뜀박질하는 것도 눈물겹지만.. 이 모든 것을 코미디라는 이름으로 용서하노라~!! 하지만 전단지에 난 담배구멍 때문에 남자아이를 여자아이로 착각했다는 설정은.. 그래서 등 뒤에 난 점하나(아니 점 두개--;) 믿고 말도 안되는 체면요법까지 동원해가며 벌인 소동은.. 대체, 어떤 마음으로 포용해주어야 하는 걸까! 시도때도 없이 넘어지고 자빠지고 때리고 맞고 게워내고 뱉어냄으로써 유도되는 그 웃음은 고단한 삶에 지친 백수와 백조 혹은 운좋은 직업맨들이 지불한 7000원을 값지게 했을까! .. 진정?

사랑이었어?

진저리 치게 싸우고 말끝마다 육두문자 날리며 겁없이 주먹 날리고, 형사아저씨가 지나가는 말로 뱉은 ‘커플’이라는 단어에 도끼눈 치뜨던 그들. 물론 남녀의 사랑은 토닥토닥 이유없는 쌈짓거리에서 시작된다고 하지만, 밥사주고 술사주고 업어주기 까지 했으니 너도 줄 것은 주라며 여자 옷 벗기는 창식이가 강간현장을 카메라에 담아서 협박하려는 조폭과 다를 바 무엇이 있다고.. 영화는 그들을 아름다운 사랑으로 엮어 주려하는 것인가? 애초에 영화를 즐겁게 해주었던 ‘백수와 백조의 뺑소니 동시목격 사건'은 유치원색 퍼즐 조각 끼워 맞추듯 종지부를 찍어버리고 급하게 달려~ 달려~ 간 도로 한 폭판에서 벌어지는 키스 장면. 이 시대의 100만 백수들을 대신해서 한판 신나게 놀아주길 바랬던 그들의 꿈같은 비즈니스가 아아~!! 정말 이것이었단 말인가?

별수 없이, 이 영화의 관계자 중 한분도 흥행 성공에 대한 소감을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으리라..
‘운이 좋았습니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