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적 의미에서 커다란 차이점이 느껴지지는 않지만 우리는 분명 '추억'과 '기억'이라는 단어를 차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생활 속에서 기억이 실용적인 역할을 담당한다면 추억은 종종 정서적인 힘을 제공하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살인을 추억한다는 것이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대상을 추억한다는 것이 바로 이 영화가 처음부터 제공해주는 부조화의 매력이었다.

농촌의 평화로운 모습에 대한 기대는 도시 사람들의 사치인양. 어수선한 분위기에 소음이 섞여 든다. 그리고 쥐죽은듯 아무도 모르게 일어난 지난밤의 살인 사건이 조용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태평하게 경운기 얻어 타고 등장하는 박두만 형사. 그에게는 감히 어울리지도 않는 사건의 시작인 것이다.

동네 양아치를 한데 모아 찍기 실력 발휘하고.. 정신 지체자를 범인으로 몰아 허위 자백을 받아 낸다. 무모증 남자를 찾기 위해 사우나 문턱이 닿게 만들며 무당을 찾아가 부적을 끌어 모은다. 아무리 답답하고 조급한 마음에 지프라기 잡아 보는 심정이라 해도 범죄자의 치밀함을 반보도 따라 잡을 수 없는 이성지체 수사방식을 들이밀고 있으니 말이다.

열정보다는 소신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걸음으로 안개 속을 빠져나오는 서울 형사 서태윤. 서류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는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수사방식을 선호하는 그 역시 유전자 분석 장비조차 갖추지 못한 1980년대식 수사본부에 적합하지 않은 사건의 희생자임은 마찬가지다.

실종자 명단에서 피해자의 가능성을 산출해 시체 한구를 더 찾아내고 피해자들의 공통점을 치밀하게 계산했지만 범인 옷자락은커녕 머리카락도 구경 못하는 신세라는 말이다. 그리고 상식과 검증이 통하지 않는 세번째 용의자 박현규 앞에서 그는 분노의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서태윤 형사의 방식도 아닌 그렇다고 박두만 형사의 방식도 아닌..전두환 정권의 방식대로 사건을 방치해 버린다.

농촌 스릴러를 자칭한 영화답지 않게 이 영화 속 인물들은 범인과 제대로 된 두뇌 게임을 펼치지도 못하며 서로 다른 개성에 한판 승부를 걸어 보지도 못한 채.. 사건의 뒤만 쫓다가 연쇄 살인범의 영원한 그림자가 되어버린다. 영화는 범죄자의 사회적 응징이나 응어리를 풀기보다는 암울했던 80년대의 사회상을 있을법한 두 형사와 부재했기에 더욱 완벽했던 범인의 캐릭터를 빌려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맹신하던 서류가 거짓말을 하는 순간.. 확신하고 있던 직감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 순간..
모든 것이 육중한 열차의 몸뚱이에 짓밟히고 딱 그만큼의 무게가 두 형사의 가슴을 평생 짓누르게 만들 추억!
그 잔인하고도 눈물겨운 살인의 추억에 관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