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촬영이 있던 날, 전 스텝들은 하늘을 보고 있었다. 촬영의 가장 중요한 세트가 하늘이었기 때문이다. 총 천연의 파란 하늘과 타오르는 태양을 찍어야만 하는 스텝들로서는 서울의 오염된 공기와 흐린 날씨로는 도저히 무리임을 알았다. 그리고 모든 스텝들은 충남의 하늘에는 해가 있을 거라 굳게 믿고 대전으로 떠났다. 그러나 대천에서의 촬영도 만만치 않았다. 날씨는 계속 흐렸고, 다시 대천으로 장소를 이동했다. 역시 충남의 하늘에는 해가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 계속 되어야 할 촬영에는 때아닌 안개로 다시금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결국 무창포와 대천 해수욕장을 오가며 촬영을 했지만 시도 때도 없이 급습하는 안개 때문에 결국 철수하고야 말았다. 충남의 하늘에는 해는 있었다. 근데 안개도 참 많았다.

목욕탕의 수증기를 원두커피 연기로 대체하던 날, 온 스텝들이 커피 냄새만 맡아도 속이 메스껍다며 비명을 지르던 날 '한밤의 TV 연예'에서는 난리가 났었다. 새벽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귀가하시던 감독님이 집에까지 모신다는 말에 극구 사양하며 버스를 타신 것이다. 다들 고생했는데 나까지 고생시키긴 싫다는 이무영 감독...그러나 22시간의 촬영에 무리가 따랐던지 이무영 감독은 계속된 졸음으로 새벽 6시에 탄 버스를 낮 2시까지 타고 다니신 것이다. 결국 한밤에서는 연락이 두절된 이무영 감독 때문에 엄청난 소동이 벌어졌지만 밤 방송에서 이무영 감독은 여전히 호탕한 모습으로 시청자들 앞에 섰다.

움직이는 최광일씨를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찍어야 하는 촬영에서, 포커스 맞추는게 어려워 계속 컷 사인이 나고 있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 최광일씨가 직접 이동차를 밀면서 움직이는 것이다. 결국 만족스러운 오케이 싸인이 나긴 했지만 최광일씨의 고충은 대단했다. 이동차를 밀면서 태연한 표정연기를 했어 하는 심정....요즘은 축구선수 뿐 아니라 배우도 멀티 플레이어 시대이다.

태권소녀가 드디어 태권도 실력을 보이던 날, 수많은 엑스트라들의 귀엽고 쨍쨍한 응원과 함께 정말 태권도복이 잘 어울리는 공효진이 등장했다. <화산고>를 비롯해 그동안 맡았던 모든 역이 터프한 여성이라서 스텝들은 별로 걱정을 안했지만 사실 공효진은 태어나서 태권도를 한번도 해본적이 없다고 했다.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시작된 촬영...스텝들은 공효진을 내숭과 거짓말로 무장한 태권소녀라 했다. 공효진은 정말 태권도의 '태'자도 모른다고 했지만 그녀가 보인 연기는 이미 태권도 사범님도 감탄할 정도였다.

안마사의 집을 터는 장면을 찍어야 하는 날...가장 중요한 배우는 바로 '녹스'이다.
안마사의 맹도견 '녹스'는 오늘따라 계속된 명연기를 펼치고 있다. 이미 첫 번째 촬영에서 꽤 말썽을 부렸던 터이라 스텝들의 감동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완벽한 연기를 소화해내는 '녹스'가 스텝들에게는 너무 사랑스러워 보였다. 스텝들은 하나같이 '녹스'의 명연기를 칭찬하며 머리도 쓰다듬어 주고 과자도 주고 그랬다. 이게 화근이었다. 과자를 먹던 녹스는 이제 연기는 뒷전이고 바닥에 떨어진 과자를 주워 먹기에 여념이 없었다. 결국 벌렁 누워 바닥 핥기에 들어간 '녹스'...결국 애물단지 '녹스'로 인해 촬영은 무진장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태권소녀>에는 여러 스타급 조연들이 나와서 연기를 펼친다. 김승현, 김기연, 유혜리...그러나 누구보다 돋보이는 것은 바로 은빛이다. 은빛은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1인 다 역을 한다. 그것도 완전히 다른 역할이다. 비밀을 알게 되면 깜짝 놀라게 될 충격 실화!! 은빛은 공효진과 조은지의 담임선생님으로 나오지만 후반부에서는 창녀로 변해 특유한 섹시한 매력을 발산한다. 전혀 다른 두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 내는 은빛...그녀의 연기는 금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