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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제작기간이 짧은 감독님인데 이번 작품은 제작기간이 길었던 것으로 안다. 기획 단계부터 완성까지 간략하게 말해달라.
A.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2>의 개봉 직전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인권에 대한 작품을 해 달라고 제안을 받았다.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2>를 찍긴 했지만, 인권에 사실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인권위원회 내용을 보니까 소재들이 다 강렬했다. 폭력적인 내용도 있고… 부모님 두 분을 모시고 살면서도 노인 문제나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소홀했다. 그래서 노인 문제를 해보겠다고 덥석 덤볐다가 작품이 안 끝났다. 8월에 마무리 해야 했었는데 한 달 조금 더 찍고 영화의 50%를 버렸다. 시스템 다 교체하고… 아마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2> 때문에 우리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 것 같다. 이후에 추가 3차 정도로 조금씩 촬영해서 진행했는데 출연하시는 분들이 배우가 아니라 생업도 하셔야 해서 일하시다가 스케줄 되면 와서 찍고…. 그렇게 올 2월까지 작업을 했다. 이 영화는 배우분들한테 너무 감사한데 오히려 인생을 깨닫게 만들어주는 작품이었다. 이 영화를 통해서 너무 많이 배웠다.

Q. 배우들이 각자 어떤 직업에 종사하고 계시는지 소개 좀 해 달라.
A. 다음 작품은 첫째 형을 맡았던 문석범 선배님을 주인공으로 준비하고 있는데, 8월 25일에 양배추 심으러 가셔야 해서… 선배님이 4, 5일 정도 농사를 지으셔야 하는데 원래 영화도 하시면서 소리도 하시는 분이다. 근데 요즘은 소리보다 영화 스케줄에 더 매달리고 계시고, 셋째 형의 김동호 씨는 저흰 사장님이라고 부르는데, 한길 자동차 사장님이시다. 둘째 형 양정원은 제주도 사투리로 주로 노래를 하시는데 제주도에서 가수시다. 평소에는 음악과 관련된 활동을 하시고 유일하게 다른 일로 저랑 영화 작업을 꾸준하게 해주고 계신다. 뽕똘 이경준은 알고 지낸 지 20년이 넘었는데 미술학과 후배다. 연극도 잠깐 같이 하다가 일본으로 장가를 갔다. 지금 일본에서 딸기 농사를 도와주고 있어서 이 작품 할 때도 그쪽 관계자들과 일정 맞춰서 촬영하고 갔다.

Q. 킹스턴 루디스카는 어떻게 만나셨고, 어떻게 참여하게 됐는지와 음악 편곡을 돈 스파이크가 했는데 그 부분도 함께 말씀 부탁드린다.
A. 티비 프로를 보는 게 [무한도전], [정글의 법칙],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이다. 어느 날 [불후의 명곡]을 보는데 킹스턴 루디스카가 나와서 양희은 선생님 곡을 연주하는 걸 본 적이 있다. 그걸 보면서 인디 신에서 자기 활동을 열심히 하는 팀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장르는 생소했다. 레게의 초시가 됐던 장르라고 알고 있는데 <하늘의 황금마차>의 권미희 피디가 보컬 이석율과 친분이 있어서 섭외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돈 스파이크는 [나는 가수다]에서 편곡을 듣고 깜짝 놀라서 꼭 맡기고 싶었다. 예산이 부족했지만 찾아가서 부탁하니까 흔쾌히 수락해줬다. 사실 전에는 상상도 못 했다. 그냥 우리끼리 해왔는데 이 영화를 제주도 영화, 우리 영화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공유를 할 수 있고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해서 버라이어티하게 해봤다.

Q.킹스턴 루디스카와 돈 스파이크와 함께한 작업에서 좋았던 점과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A. 멤버가 많아서 밥값이 많이 들었다(웃음). 제주도라서 이동경비와 숙박 등 예산여유가 없어서 그 점이 좀 힘들었고 돈 스파이크는 자기가 잘 알아서 챙겼다. 별 걱정 없었다. 부담스러웠던 점은 킹스턴 루디스카는 인디밴드이고 돈 스파이크는 메이저인데 이 둘을 소개해주는 입장에서 조심스러웠지만 서로 음악인들이라 부담 없이 잘 만날 수 있었다.

Q. 이 영화는 어느 집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더 보편적인 것 같다. 킹스턴 루디스카의 멤버 교체도 있었는데?
A. 킹스턴 루디스카는 정말 귀엽다. 자기들끼리 티격태격 자주 싸운다. 연습실에 처음 간 날 자기들끼리 연습하다가 싸웠다. 싸우다가 심각해지는데 보니까 손님은 와있고…. 그러더니 감독이 이런 것도 다 봐야 되는 거 아니냐며 열심히 싸우더라. 계속 지켜보니까 음악 하는 분들은 신기하게도 정말 착하다고 느꼈다. 그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걸로 싸운다. 이걸 어떻게 영화에 녹일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 점들을 영화에 녹여내는 것이 가장 어려운 숙제였다.

Q. 해녀 역할을 오영순 선생님이 맡으셨는데….
A. 제 첫 작품부터 지금까지 같이 해 오신 분인데, 2주 전쯤에 돌아가셨다. <어이그 저 귓것> 할 때도 간암으로 판정 받아 힘들어 하셨다. 영화에서 제가 돌아가시는 거 체험 한번 해보시라고 하여 영화에서 자기가 죽은 모습을 인지하고 노래 부르셨던 장면도 있다. 그러고 나서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2> 때 너무 안 좋으셨는데도 하루 시간을 내서 촬영하셨다. 그때도 이게 유작일 거라고…. 찍고 나서 조금 더 사셨는데 이 영화까지 하고 개봉도 못 보고 돌아가셨다. 저희는 돌아가시는 날에도 작업을 하고 있었다. 마음의 준비를 오래 전부터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또 이 얘기를 하려니까 눈물이 난다.

Q. 오멸 감독이 이끄는 자파리필름 이라는 영상집단의 작업방식이 한국영화의 하나의 길이 될 수도 있지않을까란 생각을 하는데 작업방식에 대해 말해달라.
A. 현재 무인도에서 배우와 스텝3명만 들어가 텐트생활을 하고 있다. 전기도 없고 화장실도 땅 파서 간이로 쓴다. 생태전문가가 와서 먹을 수 있는 풀을 가르쳐 줬다. 낚시를 좋아해서 작업 전에 일찍 나가 물고기를 잡아 생활을 하고 있다. 수없이 많은 별들을 보는 너무 행복한 순간이라 시간이 빨리 간다. 불편한 만큼 너무 아름다운 풍광을 가진 섬이다.

Q. 카를로비 바리 국제영화제에서 관객과 대화를 하셨을 텐데 기억에 남는 관객도 있으셨는지? A. 어머니 한 분이 자기 목걸이를 보여주시는데 자식의 유골을 지니고 산다며 영화를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하시더라. 죽음을 가까이 두고 살면서 이 영화를 보고 마음이 공감됐다고 하였다. 제가 죽음을 기쁘게 묘사를 했는데 그게 그분에게 위로가 됐던 것 같다.

Q. 공동묘지와 큰 형님이 돌아가신 장소의 의미는 무엇인가?
A. 이 영화는 가볍게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공동묘지는 20살 때부터 극단에서 밤에 담력훈련을 하려고 갔던 곳인데 그 풍광에 너무 감동 받았다. 스무 살 때부터 연극을 했었다. 거기서 담력수련을 딱 한 번 묘지를 갔었는데 그 다음 해부터는 혼자 계속 가서 책도 읽고 작품 구상 할 때마다 갔었다. 그 공간이 감사한 점은 서 있으면 제주시와 바다, 바다 위에 오징어배가 바다에 떠있는 모습이 보인다. 20대 시절 어려운 선택을 해야 될 때 선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도움을 주었다. 이 묘터는 우리도 마찬가지로 들어갈 자리인데 이 죽음 앞에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해야지라는 마음을 먹는 순간에 모든 게 다 해결됐다. 그래서 그 터가 나한테는 스승과도 같다. 큰형님 돌아가신 폐허는 저수지 옆에 있는 관광지였다가 폐허가 된 곳이다. 시나리오를 작업하면서 선명하게 가지고 있던 이미지가 있었는데 큰 형님이 돌아가셨을 때 창문밖에 큰 나무가 울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옆에서 우는 게 아닌 자연, 큰 세상이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영화는 사전 헌팅을 안하고 매일매일 캠핑을 하며 바로 장소를 결정했다. 초반에 그 폐허를 보고 여기는 나중에 마무리로 찍어서 돌아와야지 결심하고 다시 돌아와 결정했다. 촬영 다니다가 '바다의 꿈'이란 노래는 그 쪽(묘지)에 계신 분들에게 먼저 들려주고 이승에 계신 분들께 전달이 되면 좋겠다 싶었다. 노래 내용은 뜨거운 여름을 신나게 즐기자는 건데, 그 공간에 있다고 해서 심각해 하지 않고 살아있는 사람의 향기를 퍼트리고 싶었다. 영화를 새로 찍으려고 했다가 그게 너무 죄송스러웠다. 20년 넘게 그 공간에 빚 진 것을 갚을 수 있는데 포기하는 것 같아서 그냥 찍었다.

Q. 특정 배우이름이 반복되어서 사용되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A. 나는 배우와 영화 속 캐릭터를 동일하게 여긴다. 같이 나이 들어가면서 작업이 이어져나가는 게 원하는 바이다. 작업 때마다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서 의미를 부여하는 것보다 캐릭터는 <뽕똘>에 있었던 사람이 <지슬>로 돌아와 그 모습으로 사는 식으로 내 배우들이 새로운 삶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를 바램이 있다.

Q. 이 영화 제작을 중단하려고 했다는데?
A. 작년 8월에 끝내려고 마음을 먹었던 영화인데 편집을 하다 보니 뭔가가 빠져있었지만 무엇인지 도저히 못 찾았었다. 마무리를 한 것 같은데 뭔가 속은 빠져있고 고민의 시간이 있었다. 2월도 부분촬영을 하고 영화와는 상관없는 지인을 불러 영화를 보게 했다. 큰 형님하고 막둥이하고 뭔가 아쉬운 것 같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내 인생에서 형제간의 우애를 전혀 인식하지 않고 살아 왔다. 남동생이 있지만 장가가자마자 10년 넘는 동안 전화통화 한번 안 해본 동생이다. 부모님을 모시는 게 온전히 내 책임이 된 점이 야속했는지 밥 한끼 같이 안 먹어봤다. 근데 이 영화를 보니깐 형제간의 우애가 없었다. 감독이라는 게 모든걸 선명하게 살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내 인생이 부족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가족한테 얼마나 소홀하게 하는지도 뼈저리게 느꼈다. 영화가 나한테는 인생을 깨닫게 해주는 큰 공부를 시켜줬다.

Q. 동양화를 전공했는데 특별히 영화를 하는 이유와 본인에게 죽음의 의미는 무엇인가
A. 20대는 그림을 그렸고 30대는 축제와 연극을 만들었고 나머지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고민을 하다 40대 때부터는 영화를 해보자 결정을 했다. 그 약속을 혼자 지키고 있다. 내가 예술가로서의 삶을 선택했기 때문에 각 장르에 맡는 걸 해보고 싶은 욕구가 있다. 예술은 나를 표현하는 도구이기 때문에 한 도구를 선택하면 10년 정도는 공부를 하면서 같이 나이 들어가고 싶고 나이에 맡는 작업을 풀고 싶다. 연극을 하다 보니 카메라가 들어오면 영화가 되지 않겠나 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그러다 장편 5편을 찍게 됐다. 죽음은 20대 때 많은 사람이 하는 고민이다. 제주도라는 문화적인 풍습 속에서는 선조들의 묘터가 밭에 있다. 제일 자주 가는 공간에 묘가 있다. 매일 가서 조상들의 묘를 추슬러야 한다. 지역의 문화에서 죽음은 항상 삶에 가까이에 있는 존재로 배웠다. 동생이랑 어렸을 때 큰 묘가 다섯 개 붙어 있는걸 큰 산 이라고 불렀었는데 축구도 하고 묘에서 잠도 자고 한 기억이 있다. <지슬>이라는 영화도 그렇지만 죽음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항상 있고 그것을 인정하면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지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