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성근·추자현 주연 스릴러 <실종> 기자시사회 열려

영화 <실종>(제작 활동사진)의 김성홍 감독이 자신의 영화가 최근 발생한 강호순 연쇄살인사건과 엮여서 이야기되고 있는 것에 대해 곤혹스럽다고 밝혔다.

김성홍 감독은 12일 오후 서울극장에서 열린 스릴러 영화 '실종' 기자시사회에 앞서 "우리가 만들어낸 인물과 강호순이 비슷해서 생기는 문제인 것 같다. 괜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조심스럽고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손톱><올가미><세이 예스> 등 스릴러에 집중해왔던 김성홍 감독의 8년만의 복귀작 <실종>은 지난 2007년 발생한 전남 보성 70대 어부 연쇄살인사건을 모티프로 삼아 제작된 영화로, 극중 주인공인 연쇄살인마 캐릭터가 강호순과 유사한 부분이 많아 화제를 모았다. 극중 연쇄살인마 판곤은 홀로 노모를 모시고 양계장을 운영하며 생계를 꾸려가는 순박한 외모의 60대 촌부로, 동네 사람들에게는 성실한 효자라는 평을 듣는 사람이지만, 우연히 찾아온 사람들을 무참히 살해하거나 자신의 양계장에 여자를 가두고 사육하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잔인하게 죽여 닭의 모이로 만드는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마이자 사이코패스다.

김성홍 감독은 "살인마를 굉장히 지적이고 매력적으로 그린 '양들의 침묵'을 보면서 굉장한 분노와 반감을 느꼈다"며 "그래서 '실종'은 일부러 그 반대로 찍었고, 영화에서의 살인마인 판곤은 철학이 있을 수 없고, 비열하고 아무 것도 본받을 수 없는 사람으로 그렸다"며 '모방범죄'에 대한 우려를 일축했다. 김 감독은 또 "문성근씨에게 설정이나 덧칠을 철저히 빼고 철저하게 리얼하게 가보자고 주문했다"고 말했다.

연쇄살인마 판곤 역을 연기한 문성근도 "이 시나리오가 나온 것은 2~3년 전쯤이고, 처음 본 것은 작년 2월이라 강호순 사건과 무관하다"며 "다만 사이코패스의 공통적인 특성을 뽑아서 만들어낸 인물이라 현실 사건과 유사한 점은 당연히 발견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성근은 이어 "상업배우로서 욕심을 내려면 역할이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가능한 한 멋있으면 좋지만 이 영화를 만들면서 감독과 일치했던 부분은 '범죄인이 멋있게 보이는 것은 절대 피하자'는 것이었다"며 "역할이 멋지지 않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사실적으로 얼마나 접근할 수 있느냐가 배우로서 도전해 볼만한 일이어서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이번 영화에 출연한 배경에 대해 문성근은 "영화에 대한 갈증이 만들어낸 영화"라며 "김 감독도 오랫동안 작품을 못하고 있었고, 연기자로서 나도 갈증이 있어 갈증이 목이 찬 사람들이 '한번 일 좀 저질러 보자'라는 마음으로 의기투합했다"면서 "그 동안 연쇄살인범이나 사이코패스 같은 인물들을 대해서 고발하는 게 내 전문이었는데 한번 당사자가 되어보면 어떨까 싶었다. 연기하는 동안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발견하면서 흥미롭게 작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자신이 맡은 배역에 대해 문성근은 "판곤은 자기의 욕망과 달리 쾌락을 위해서는 자기 자신 이외에는 아무 것에도 관심을 갖지 않는 인물"이라며 "오로지 '나의 즐거움을 위해서 나는 살인을 할 수 있다. 나는 살인을 해야한다'는 것이 이 인물이 핵심이라고 생각하고 살을 붙여나가는 식의 접근을 했다"고 설명했다. 또 "영화에서 판곤이 스스로를 음악가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데 판곤에게 사사로운 생활이나 취미가 있었으면 좋겠고 그것이 음악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감독도 괜찮은 생각이라고 생각해서 새로 추가한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힘들었던 부분에 대해서는 문성근은 "거의 맨몸으로 연기한 두 여자 배우가 크게 다칠 수 있는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시늉만 하면 사실성이 떨어지고, 연기하는 순간에는 그런 걱정을 할 수가 없는지라 부상 위험에 대한 걱정이 힘들었다"며 "특히 2박 3일 내내 꼬박 밤을 새고 촬영장을 벗어날 때면 지옥에서 벗어나는 것 같았다"며 토로했다.

실종된 여동생을 찾기 위해 추적에 나선 언니 현정 역의 추자현은 "드라마를 통해 데뷔하다 보니 드라마에서는 스릴러 장르에 맞는 연기를 하기가 쉽지 않아 생소했지만 도전해 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동안 영화 <사생결단>, <미인도> 등에서 강한 역할을 선보여왔던 추자현은 "이제까지 해왔던 역할들이 보통 여배우들이 하는 역할보다는 임팩트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런 역할만 골라서 하는 것 아니냐 하는데 일부러 의도한 것은 아니다"라며 "단지 약간 녹록치 않은 역할에 도전해 보는 것에 많이 욕심을 냈을 뿐이다. 이번 영화에선 캐릭터 자체가 센 것은 아닌데 장르가 스릴러다 보니 상황이 세져서 연기도 그렇게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추자현은 이어 "예전에는 이런 불미스런 사건을 보면 남일 같고 무섭다는 정도였는데 영화를 찍고 난 후에는 그 가족들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며 "유가족의 마음을 온전히 대변할 수 없지만 최대한 그들의 대변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문성근과의 호흡에 대해서는 추자현은 "문성근 선배님은 내가 여태까지 만난 상대배우 중에 가장 연배가 높았지만 오히려 가장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 또 후배 연기자에게 조언이나 충고를 하기 전에 직접 몸으로 먼저 보여주는 대단한 배우"라며 "현장에서 거의 말씀이 없었는데 오히려 그 상황에 빠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게 최고의 배려였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연쇄살인범의 덫에 걸린 미모의 여대생, 현아 역의 신예 전세홍은 "개인적으로 스릴러 영화를 좋아하는데 이렇게 김 감독님과 작업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고, 훌륭한 두 선배님과 호흡을 맞출 수 있어서 더 없는 연기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전세홍은 이어 "보통 연기는 경험을 바탕으로 감정을 끌어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경우에는 전혀 그런 것을 할 수가 없었다"면서 "갇혀 있다는 공포감과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다는 원초적인 감정에만 충실해서 캐릭터를 표현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전세홍은 또 "다행히 문 선배님이 촬영만 들어가면 눈빛이 바뀌면서 나를 정말 잡아먹을 듯이 연기를 해서 실제 그런 상황에 처해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고 본능적으로 연기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지난 2007년 발생한 전남 보성 70대 어부 연쇄살인사건을 모티프로 삼은 <실종>는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끊긴 동생 '현아'(전세홍)를 홀로 찾아 나선 언니 '현정'(추자현)이 동생의 마지막 발신자를 따라 찾아간 어느 외딴 시골마을에서 양계장을 운영하며 효자로 소문난 순박한 외모의 60대 촌부 '판곤'(문성근)을 만나게 되고, 그가 동생의 실종과 관련이 있음을 직감하게 되면서 벌이게 되는 사투를 그린다. 온 국민을 경악케 한 연쇄살인마 '강호순'의 연상케 하는 영화는 오로지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는 일 외에는 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연쇄살인마의 끔찍한 본성과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그들에게 무방비 상태로 당하고 마는 피해자들의 공포와 분노에 집중한다. 니퍼(뺀찌)로 이빨을 뽑고, 산채로 분쇄기에 집어넣어 죽이는 연쇄살인마의 잔인한 살인행각은 공포와 분노를 자아내게 한다. 무엇보다 '강호순'처럼 순박하고 착해 보이는 평범한 사람이 납치, 성폭행, 연쇄살인을 저지를 수도 있다는 사실과 더욱이 젊은 사람도 아닌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는 노인이라는 설정이 끔찍한 공포로 다가온다. 결말이 다소 극단적일 수도 있겠지만 법과 사회를 대신해 똑같이 응징하는 주인공의 심정을 십분 이해하고 남는다. 기존의 젠틀한 이미지를 벗고 연쇄살인마로 변신한 문성근의 소름끼치는 살인마의 연기가 돋보이며, 연쇄살인마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며 육탄전을 방불케 하는 액션연기까지 직접 소화한 추자현과 신인 여배우로서는 쉽지 않은 노출연기와 극한의 공포에 떠는 잔혹한 장면들을 대담하게 소화해내 전세홍의 열연도 칭찬할 만하다. 반면 범인의 진인한 살인행각에 집중하다 보니 이야기가 촘촘하게 전개되지 못하는 단점을 보인다. 후반부 현정이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하는 장면은 너무 작위적인 티가 나며, 아무리 영화의 모티브이고 심각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라지만 엔딩의 70대 어부의 등장은 자칫 노인을 이상하게 바라보게 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다소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무차별 범행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마들이 속출하는 현대 사회에 경종을 울릴 <실종>은 청소년 관람불가로 3월 19일 개봉한다. [실종]

2009.03.12 / 코리아필름 김철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