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같이 않은 관계에서 형성되는 가족보다 따뜻한 인간적 연대

<가족의 탄생>은 매우 수상쩍은, ‘콩가루 집안’ 이야기다

<첫번째 에피소드> 5년동안 소식 없다가 나타난 남동생(엄태웅), 엄마뻘 되는 20살연상의 남동생 애인(고두심), 이 여자의 전남편의 전처가 낳은 딸, 이들과 같이 살게된 누나(문소리). <두번째 에피소드> 유부남의 아이를 낳고 사는 엄마(김혜옥), 엄마에게 도망쳐 혼자사는 여자(공효진) <세번째 에피소드> 엄마가 낳은 배다른 이복동생(봉태규)와 같이 사는 누나, 피한방울 안섞인 두 여자를 엄마로 부르는 딸(정유미). 세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이 영화는 전혀 가족같지 않은 ‘콩가루 집안’ 이야기다.

<가족의 탄생>은 새로운 형태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바람난 가족>이 전통적인 가족의 해체를 그렸다면, <가족의 탄생>이나 <다섯은 너무 많아>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의 탄생을 보여준다. 기존의 가족이 혈연관계로부터 탄생했다면, 이 새로운 가족은 혈연관계가 전혀없이 탄생한다. 기존의 가족이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면, 새로운 가족은 여성 중심의 동등한 관계로 구성된다. 기존의 가족이 싫든 좋든 운명적 관계에 의해 이어지는 것이라면, 새로운 가족은 따뜻한 연민에 의해 이어진다.

<가족의 탄생>은 정상가족의 붕괴에 대한 긍정적 대안이다

친딸을 강간하는 아버지, 보험금을 노려 남편을 살해하는 아내, 늙은 부모를 내다버리는 자식들…. 더는 놀랍지도 않은 이런 뉴스들은 이미 전통적인 유교문화, 끈끈한 가족공동체를 자랑해온 우리사회에도 가족이 해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족의 탄생>이나 <다섯은 너무 많아>는 이러한 우리사회의 가족해체의 현실을 근거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영화가 가진 장점은 정상가족의 붕괴에 대한 심각한 시선 대신에, 대안가족에 대한 건강하고 따뜻한 긍정이다.

<가족의 탄생>은 관객을 몰입시키는 감독의 역량이 탁월하다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2시간 넘게 관객을 사로잡는 흡인력. 화려하지 않은 이야기에서 ‘인간관계와 사랑의 본질’을 포착해 내는 연출력. 캐릭터에 애정을 불어넣는 섬세한 솜씨. 거기에 관계를 다루는 자유분방함, 따뜻한 웃음과 잔잔한 감동, 극적 재미까지. 특히 기존의 장르로는 구분할 수 없는 상업영화와는 구별되는 독특함. 이 모든 것은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이후 6년만에 메가폰을 잡게된 김태용감독의 역량이 만들어낸 것이다.

<가족의 탄생>은 출연자가 모두 주인공인 영화다

특정한 인물이나 사건 없이 인물과 인물을 연결하는 ‘관계’와 그들의 존재가 주제인 이 영화에서 영화를 끌어가는 배우들의 연기력은 단연 독보적인 요소이다. 어느하나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가 보여주는 신선함과 사소한 갈등을 통해 사랑을 표현하는 내면의 풍경 등은 전적으로 고두심, 문소리, 공효진, 엄태웅, 정유미, 봉태규, 김혜옥, 류승범 등 자기가 맡은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낸 배우들 덕분이다. 이들의 연기력 덕분에 전혀 가족같지 않은 관계에서 가족보다 따뜻한 인간적 연대를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