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생존성은 테마에 있다. 이야기만 있는 시나리오는 널리 사랑받지 못하며 쉽게 잊혀진다. 그렇다고 테마만 있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시나리오도 아니다. 어느 정도의 성찰이 가능한 테마를 바탕으로 그에 따른 이야기의 구성이 치밀하고 풍성해야 한다.

어떤 테마를 선택할 것인가는 결국 어떤 이야기를 쓸 것인가와 맞물리기도 한다.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봤을 만한 테마지만 이야기로 풀어내지 못했던 것들을 이야기화하도록 한다.

몽정을 처음 시작한 청소년의 성을 담은 '몽정기', 스무살 여자들의 우정과 삶을 그린 '고양이를 부탁해', 남북분단의 비극을 공동경비구역을 통해 그려낸 '공동경비구역 JSA', 예술가의 삶고 고뇌를 그린 '오원 장승업', 사회적으로 소외된 남자와 장애인의 사랑을 담은 '오아시스', 동성애를 다룬 '로드무비', 한반도의 아이러니를 상징한 '해안선', 무식한 집안의 엘리트 사위 맞아들이기인 '가문의 영광' 등등 모두가 한번쯤은 생각해 봤음직한 이야기들이 아닌가.

그럼에도 어떤 것들은 영화가 되고 어떤 것은 영화가 되지 못하는가? 그것은 오로지 작가의 통찰력과 그 이야기를 표현내고자 하는 은근과 끈기가 아닐까 싶다. 보편적인 생각들을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테마를 관객들에게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야기 방식으로 전환시켜야 하는데 이때 과연 얼마만큼 쉽고 재미있게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시나리오를 쓰는가가 관건이다.

시나리오가 영화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공유되어야 하는 감정이 누구에게나 이뤄질 수 있도록 타당성의 근거가 마련되어야 한다. 혼자만 이해하고 생각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써놓고 자신의 능력과 세계를 이해 못한다고 관객이나 기획자를 수준이하로 내려놓거나 어깃장을 놓아서는 절대 좋은 시나리오를 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중적인 관객이 시나리오나 영화의 의도나 상징성을 분석하진 못한다하더라도 그들은 가장 냉정한 통찰력을 갖춘 비평가들이다. 관객을 무시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상위에 올려놓지도 말 것이다. 테마는 그들이 문득 스치는 생각에서 캐치할 것이며 이야기는 그들의 생각보다 한발짝 앞서가서 꾸미도록 할 것이다.

단순한 이야기라도 구성방식을 통해 복잡하게 만들 수 있고 복잡한 이야기라도 구성을 통해 아주 단순하게 조화시킬 수 있다.

테마를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배경, 상황, 인물, 에피소드 등을 만들고 스토리를 구축했다면 과연 이 스토리를 어떤 방식으로 구성할 것인가를 고민해 본다. 어떤 방식으로 진행시키는 것이 지루하지 않거나 혹은 보다 생생하게 재미를 전달하면서 새로운 스토리 전개가 이뤄질 것인가를 점검해 보도록 한다.

영화의 스토리 구성은 주로 이야기의 시간 변형과 전달 방식을 통해 이뤄진다. 즉, 등장인물들의 시간대를 바꿔가며 새로운 구성을 연출하는 방식이 있는가 하면 이야기하는 방법에 의한 구성도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야기 전달 방식의 구성에는 내레이션, 대사, 셔레이드, 타이틀, 몽타주, 연상, 판토마임 등등의 전개방법을 시나리오의 내용 혹은 장면에 따라 취사선택하여 사용하면 된다.

구성의 예를 몇가지 들어보면 'YMCA 야구단', '오아시스', '나쁜 남자', '가문의 영광', '집으로...', '굳세어라 금순아' 등처럼 시간 순서에 의한 진행방법이 있다. 위의 작품들은 스트레이트식의 구성 진행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현재에서 출발해 과거의 일정시점부터 이야기가 시간순으로 다시 진행되고, 현재로 돌아와 현재부터 이야기가 다시 진행되는 구성방식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 예로 선을 보라는 연락을 받은 장면에서 시작해 과거속 그녀와의 만남, 사랑, 헤어짐 등을 순차적으로 진행시키면서 처음의 시퀀스로 다시 돌아가 이야기가 진행되고 끝나는 '엽기적인 그녀', '오원 장승업' 역시 이 같은 구성방식을 차용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혹은 현재와 미래가 교차 편집되며 이야기가 두 줄기를 기둥으로 하여 진행되는 구성도 있다. 영화 '아이리스'는 현재와 과거를 처음부터 교차하여 진행되는 방식이며 '박하사탕'은 현재에서 과거로 점철되어가는 시간의 역순 구성이라 할 것이다.

시간순으로 진행하면서 전달방식을 혼용하여 구성되어지는 영화도 많이 있으므로 보다 다양한 영화를 보고 효과적인 구성방식의 몇가지 예를 익혀두는 것이 좋다. 그것을 바탕으로 더 이야기 전달에 있어 보다 효과적인 구성방식을 창조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캐릭터는 이야기(혹은 구성)의 중심이기 때문에 구성과 캐릭터는 불가분의 관계다. 구성에 적합한 캐릭터를 창조해냈을 때 구성과 인물이 맞물려 이야기의 진행은 저절로 굴러가기도 한다. 스토리의 전개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면 캐릭터를 고민해 볼 것이며 캐릭터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사건을 통해 캐릭터의 모습을 형상화시킬 수도 있다. 주연, 조연의 캐릭터 만들기는 '시나리오 맛보기'에서 다룬바 있으므로 참고하기 바란다. 등장인물들의 개인사를 구성하면서 그들의 기쁨, 증오, 사상, 공포, 사랑, 슬픔, 경이 등을 순차적으로 정리해 본다면 캐릭터가 더욱 분명하고 확연하게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무조건 독특한 캐릭터라고 무조건 만들기보다는 특화와 진실성이 동시에 갖춰진 캐릭터 만들기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캐릭터가 형성되고 나면 시나리오 전편을 이끌어나가는 데에 있어 캐릭터와 맞물린 구성은 충분한 역량을 발휘하게 된다. 등장인물 전부에게 서로 다른 개성을 부여하고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다면 그 시나리오는 분명 생생하게 살아서 이야기를 전달하게 될 것이다.

'오아시스'의 '종두'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인물이면서 그 만이 갖는 시각으로 자신의 캐릭터 형성에 성공한 인물이다. 여기에 '공주'의 캐릭터와 덧붙여서 사건이 진행되고 두 인물이 부딪히면서 또다른 이야기를 엮어간다. 캐릭터와 구성은 이렇게 서로 밀접한 유대관계를 맺고 시나리오의 끝까지 주도해 갈 수 있을 때 매력을 발산한다.

여기서 '종두'의 캐릭터를 분석해 보면 캐릭터 만들기는 더욱 수월해질 것이다. 우선 종두의 기쁨이자 사랑은 바로 공주다. 가족들의 외면이 종두의 공포로 작용할 것이며 형대신 종두가 감방에 간 일은 놀라움에 해당된다. 만들고자 하는 캐릭터의 내면을 하나씩 형성해 나가다보면 입체적인 캐릭터가 완성될 것이다.

카리스마를 유지해야 하는 조폭의 우두머리이면서 여자이어야 하는 '조폭 마누라'의 '은진'이나 보통의 여성들이 잘 드러낼 수 없는 행동을 거침없이 해대는 솔직하고 당찬 여자, '그녀'는 '엽기적인 그녀'가 만들어낸 신세대 유형의 당찬 캐릭터다. '조폭 마누라'의 '은진'이 끝까지 자신의 캐릭터를 유지해 카리스마를 형성했다면 '엽기적인 그녀'의 '그녀'는 이야기의 후반부로 갈수록 당찬 캐릭터의 개성이 살지 못하고 보통의 여자 캐릭터로 전락한 것이 아쉽다할 것이다. 이처럼 영화속 캐릭터들을 분석해 보는 것도 캐릭터 만들기 방법의 지름길이다.

간결하고 압축미 있는 대사, 인간의 감정이 담긴 인간적인 대사, 이야기를 한 방향으로 끌고 가는 대사, 미학이 담긴 대사, 쉽고 명쾌한 대사 등등. 이는 모두 시나리오 상의 대사가 어떤 작용을 하고 어떻게 다뤄져야 하는지를 하는지 설명하고 있는 것들이다.

영화 속의 대사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일상적인 말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게 작용되는 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등장이라면 독백이나 나래이션으로 처리할 것이니 2인 이상의 대사보다는 쉽게 쓸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 이상이 등장하게 되면 서로의 대사가 교류되어야 함으로 보다 재치있는 대사의 주고받음이 필요하다.

대사는 스토리를 진전시키고 상황을 전달하며 인물의 심리나 감정까지 표출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다. 대사가 이런 기본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어떻게 비범함을 지니게 되는지를 한번 살펴본다면 더욱 확연하게 다가올 것이다.

다음은 '박하사탕'에서 영호(설경구)가 첫사랑 순임과 오랜만에 만나 식당에서 나누게 되는 대화다.

영호 : 나 여기 있는지 어떻게 알았어?
순임 : 집에... 영호씨 고향집에 찾아 갔더랬어요.
영호 : 왜?
순임 : 영호씨 식구들이요, 영호씨가 왜 경찰이 됐는지 모르겠대요.
영호 : (홍자쪽을 돌아보고)여기 마실 것 좀 줘요!
순임 : 손. 영호 : 응? 순임 : 영호씨 손이요.
영호 : (자기 손을 보며)내 손이 왜?
순임 : (억지로 웃으며)아까부터 영호씨가 아니라 꼭 딴 사람 같았어요. 그런데 손을 보니까 영호씨 맞네요. 영호씨 손 독특하잖아요. 손가락 끝이 뭉특하고 못생겼는데 참 착하게 보이는 손. 난 맨처음 영호씨 만났을 때 영호씨 손보고 이런 손 가진 사람이니까 마음이 참 착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영호 : 맞아. (시니컬하게)내 손 참 착해요.(홍자의 엉덩이와 허벅지를 만지는 손)
홍자 : 왜, 왜 이래요? 오빠....
영호 : (태연하게 웃으며)전부터 한번 만져보고 싶었어.(순임앞에 손을 까불거리며)착하지?

다음은 '여인의 향기'에서 프랭크(알파치노)가 레스토랑에 여인 도나와 나누는 대화다.

프랭크 : 누가 마시고 있지? 좋은 비누향기가 저쪽에서 나는 것 같은데....
찰리 : 여성이요.
프랭크 : 여성? 여성이라고 하는 걸 보니 그녀를 좋아한다는 뜻이군.... 혼자 있니?
찰리 : 네 혼자에요.
프랭크 : 기분이 고조되는군. 밤색 머리냐?
찰리 : 갈색. 옅은 갈색이요.
프랭크 : 스물둘?
찰리 : 여자에겐 관심없어요.
프랭크 : 관심이 없다면 우리는 죽은 거야. 가자.
찰리 : 어딜요?
프랭크 : 어딘지 알잖아. 부끄러워마. 그 여자는 네게 어울릴 것처럼 느껴져. 아주 아름답지. 안그래?
찰리 : (프랭크와 함께 도나에게로 향하며)쓸만해요.
프랭크 : 빙고. 이 얘가 살아있군.... 가보자구. 답사야. (도나의 테이블 앞에 서서)실례합니다. 아가씨. 합석해도 되겠어요. 대접이 소홀한 것 같아서요.
도나 : 전 누굴 기다리고 있어요.
프랭크 : 즉시 와요?
도나 : 몇 분내로 올거예요.
프랭크 : 몇 분이라... 그 몇 분이 어떤 사람에겐 일생이죠.... 지금 뭘하고 계시죠?
도나 : 그를 기다리죠.
프랭크 : 함께 앉아서 기다려도 될까요? 바람둥이들이 모여들지 않게 말이에요.
도나 : 네 앉으세요.
프랭크 : 고마워요.(의자에 앉으며)내가 공기속에서 향기를 맡았댔지. 뭔지 내가 말할게. 오길비 시스터스 비누야.
찰리 : (의자에 앉는)
도나 : 놀랍군요.
프랭크 : 하는 일도 놀라울 거죠?
도나 : 오길비 시스터스 비누 맞아요. 할머니께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셨어요.
프랭크 : 그 분이 맘에 드네요. 그 분은 찰리도 좋아하시리라 믿어요.
찰리 : 이분 말에 신경쓰지 마세요.
프랭크 : 이름이 뭐죠?
도나 : 도나.
프랭크 : 도나요. 난 프랭크. 이 친구는...
도나 : 찰리.
프랭크 : 찰리는 힘든 주말을 보내고 있죠. 위기를 맞고 있어요. 지금 그의 인상이 어떤 것 같나요?
도나 : 아주 좋은 것 같은데요.
프랭크 : 그녀가 널 좋아해. 찰리. (도나 향해)도나, 탱고 알아요?
도나 : 아뇨, 한때 배우고 싶었지만...
프랭크 : 그래서요?
도나 : 마이클이 싫어했어요.
프랭크 : 마이클? 지금 기다리는 사람?
도나 : 마이클은 탱고가 우스꽝스럽대요.
프랭크 : 그러는 마이클이 우스꽝스럽지요.
찰리 : 그 말에 신경쓰지 마세요. 이미 말씀 드렸죠.
프랭크 : 웃음도 아름답군요.
도나 : 감사합니다.
프랭크 : 탱고를 배우고 싶지 않나요?
도나 : 지금이요?
프랭크 : 내가 가르쳐 드리지요. 무료로요. 어때요?
도나 : 조금 걱정이 되네요.
프랭크 : 뭐가요?
도나 : 제가 실수를 할까봐요.
프랭크 : 탱고는 실수할 게 없어요. 인생과는 달리 단순하죠. 탱고는 정말 멋진 거예요. 만일 실수를 하면 스텝이 엉키고 그게 바로 탱고죠. 한번 해봅시다. 출까요?

영화에서의 재미란 단순히 오락적인 재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공포면 공포, 스릴이면 스릴, 폭소면 폭소, 감동이면 감동, 교훈이면 교훈, 기쁨이면 기쁨, 오락이면 오락 등 한 편의 영화가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을 이루었고 관객이 그것에 공감했다면 그 영화는 분명히 관객에게 재미를 선사한 것이다. 즉, 시나리오 요소로서의 '재미'란 한 편의 장르 영화가 추구하는 영화적 재미를 일컬음이다.

관객이 장르 영화들을 통해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하려면 영화적 장르의 재미를 최대한 추구하여야 한다. 혼자 쓰고 마는 습작이라면 경우가 달라지겠지만 아무리 관객이 적은 소위 작가주의적 예술영화라 할지라도 똑같은 주제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보다 많은 관객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가 관객에게 주는 재미는 영화를 보는 리얼타임이 끝나고 나서도 5분 동안의 감흥이나 여흥을 관객이 더 즐길 수 있다면 영화는 재미라는 것에 있어서 그 목적 달성과 함께 영화의 흥행 성공도 어느 정도는 보장받을 수 있지 않을까. 리얼타임이 끝나자마자 관객들이 분연히 일어나 나가버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막이 다 오르더라도 엉덩이 들기를 조금은 주저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