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먼저보면 숲의 모양이 보이지 않으므로 꼭 초고가 아니더라도 시나리오를 수정내지는 각색 차원에서 보는 단계라면 시나리오의 장면만을 보지 말고 우선은 전체의 그림인 숲을 보도록 한다.

한그루 한그루의 튼실한 나무들로 이뤄져 아름다운 경관을 이룬 숲이라면 그 시나리오는 분명 성공적인 작품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시나리오도 그러하길 어려우니 우선은 침착하게 전체의 그림을 그려본다. 영화적인 그림이 되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하나의 숲을 이루고 있다면 나무를 보는 단계로 넘어가도록 한다.

숲이란 간단하게 'YMCA야구단'인지 '몽정기'인지 '공동경비구역'인지 시나리오 전체를 하나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나 문장이다.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면 다음으로 넘어가도록 한다.

숲을 보았다면 그 숲 전반에 숨어있는 생명수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명확하게 다시 규명해 보도록 한다. 어떤 나무가 곳곳에 심어져 있었는가? 혹, 사과나무 숲을 만든다고 곳곳에 사과나무를 심었는데 반은 사과나무고 반은 또다른 나무가 자라고 있지는 않는지를 살핀다.

자신도 모르게 여러 가지의 나무가 혼합되어 자라고 있다면 그 나무의 이름들 즉, 소재들을 내용별로 정리해 본다.

예를 들어 '연애소설'을 보면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고학생 지환의 사랑이 있고 수인과 경희라는 여자들만의 사랑과 우정 이야기가 혼합되어 있다. 남자의 사랑과 여자의 사랑 그리고 그들의 사랑, 이렇게 서로 다르게 작용되는 부분들을 내용별로 구분해 보는 것이다.

'YMCA 야구단'에도 단순히 야구단의 이야기만 담겨 있지는 않다. 역사적인 사건과 그 속의 야구단 그리고 민정림의 개인사 등등 내용별로 분류를 하자면 야구단과 벗어나는 것도 있다.

그 각각의 내용들이 서로 다른 나무라면 서로 이름은 다르지만 서로 어울려 잘 자라고 있는지 아니면 서로 독립적으로 자라면서 다른 나무들을 배척하고 있는지를 살핀다. 서로 다른 이 나무들을 어떻게 배치해야 잘 가꾸어진 정원이나 창창한 숲이 될 수 있는지를 떠올려 본다.

전체를 보면서 혹은 부분을 보면서 한 편의 시나리오에 담긴 내용중 가장 영화적인 요소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추려본다.

보통 우리가 시나리오 한편을 읽었을 때 전체를 표현하는 제각각의 나무가 한가지로 이뤄져 있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곁가지로 심어놓은 단 한 그루의 나무가 더 생생하게 들어올 때가 있다. 전체의 요소에서 벗어남에도 또하나의 작품 컨셉으로 작용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런 부분들이 있는지를 염두에 두고 영화적 요소들을 잘 찾아내도록 한다.

어느 부분이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었던가? 본인의 시나리오여서 스스로 찾아내기 어렵다면 제3자에게 한번 읽혀 보라. 그리고 어떤 점이 가장 흥미를 끌었는지 그 요소를 질문해 보도록 한다. 전체가 아니라도 좋다. 가장 흥미롭던 장면이나 대사, 사건 등의 부분이라도 좋다. 그곳에서 전혀 새로운 영화적 요소의 컨셉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과정을 통해 영화적 요소를 발견해냈다면 그 부분을 그 시나리오의 중심 이야기로 옮겨 놓아본다. 이때 초고의 시나리오는 그야말로 한 알의 밀알이 되는 것이다. 썩어도 아까워하지 말기를 바란다. 껍질이 썩어 파릇한 새순이 돋을 것이며 진흙속에서 진주된 진주처럼 반짝거릴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감옥을 탈출했다가 다시 돌아가야 하는 설정의 '광복절 특사'를 만약 이렇게 그렸다면 어떻게 됐을까? 처음부터 감옥의 탈출만이 목적이고 전반부부터 후반부까지 탈출의 다양한 방법과 시도 끝에 결국 감옥을 탈출하는 과정만으로 시나리오를 완성했다고 치자. 감옥을 탈출하기 위한 방법의 나열만으로 시나리오가 진행될 것이다.

'광복절 특사'가 위의 설정처럼 탈출까지로 끝나는 이야기였다면 이 이야기에서 가장 재미있는 요소는 무엇이 될까? 가상의 시나리오에서 가장 큰 사건은 바로 탈출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탈출전까지 탈출하기 위한 방법들의 나열들로 이야기가 채워질 것이니 큰 반전이나 심도 깊은 이야기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탈출'이라는 가장 큰 사건을 영화의 중심에 놓는다면 가상의 시나리오는 라스트에서부터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스토리를 다시 구성해야됨은 물론이다. 하지만 처음보다 더 강력하고 그럴듯한 시나리오가 탄생될 것이 분명하다.

영양분을 골고루 갖춘 나무가 튼튼하게 자라듯이 영화의 영양분이 시나리오 속에 잘 배어있는지를 점검한다.

과연, 이 시나리오가 영상화되어야할 이유나 목적이 한가지라도 있는가?
과연, 새로운 이야기의 시각이 담겨 있는가?
과연, 캐릭터는 매력적인가, 더 매력적일 수는 없을까?
과연, 복선과 반전은 적적한 곳에 배치되어 있는가?
과연, 스토리의 긴장과 이완은 적당한 간격으로 이뤄져 있는가?
과연, 영화가 끝나고 관객에게 무엇을 선사할 것인가?
과연, 영화를 본 시간과 비용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을만한 요소는 있을 것인가?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다. 캐릭터 역시 정형화된 캐릭터라면 식상하다. 반대적으로 표현해도 처음의 캐릭터 본질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강한 부정이 강한 긍정과 통하듯이 대사역시 일차원적인 대사보다는 압축되고 상징화된 대사가 더욱 힘을 발휘한다.

이는 대사뿐 아니라 인물이나 사건 등에도 작용된다. 똑같은 사건을 앞에 놓고 두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보여줄 수 있고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음을 보여줄 수도 있다. 그러나 전혀 다른 사건을 통해서도 두 사람이 같은 생각과 행동을 보일 수 있다. 혹은 하나의 사건을 두고 한 사람이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할 수도 있다.

결국 정형화된 인물, 사건, 대사 등을 비틀어보거나 뒤집어보기를 통해 보다 영화적인 장면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제3자가 이해할 수 없는 압축이나 상징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절대 작가 혼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장면이나 대사, 유추할 수 없는 비하인드 스토리는 좋은 것이 못된다는 걸 말이다.

시나리오를 볼 때마다 그곳에서 단점보다는 장점을 발견하고 그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에 열을 올려라. 어떤 시나리오도 완벽하지 않고 단점만으로 일관한다면 시나리오를 발전시키지 못하고 매번 쓰레기통에 버리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장단점 모두를 통찰할 수 있는 심미안을 통해 되도록 장점을 끄집어내고 그 장점을 부각시켜 줄 수 있는 패러다임을 갖는 것이 더 득이 될 것이다. 장점을 발견했다면 그 장점을 살려 리라이팅이나 각색을 해보라. 그것이 자신의 작품이어서 직접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남의 작품이라도 일단 읽었다면 그 작품의 영화적 요소와 장점을 발견하여 상상속에서라도 리라이팅과 각색을 즐겨보도록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