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2002 양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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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를 쓰다보면 처음엔 좋은 아이템 같아서 썼는데 쓰고 보니 그저 그런 시나리오가 되는 경우가 많다. 참신한 아이템이었는데 왜 쓰고나니 밋밋한 시나리오가 되었을까? 시나리오를 몇 번 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다.

처음 장편을 완성한 사람은 아마도 시나리오의 문제점이나 감상을 지적하기 보다는 자신이 끝냈다는 그 감격 하나만으로도 벅차 누가 자신의 시나리오를 도용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경우도 있다. 어느 정도 시나리오를 접해본 영화판의 사람들이라면 왠만해서는 눈도 꿈쩍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도둑맞을까 걱정하다보면 발전은 없고 점점 소심해져 상처받기 쉽다. 도둑맞을 만큼 가치가 있는 거라면 저작권에라도 등록해 놓으면 된다. 그리고 천천히 여유롭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발상의 작업에 들어가면 될 것이다.

처음엔 참신한 아이템인줄 알았는데 걸작이 나올 거라고 믿었는데 막상 완성하고 보니 싱겁고 재미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평이한 시나리오와 마주칠 때가 많다. 분명 너무나 재밌고 멋있는 내용이었는데. 그렇다고 괜히 썼다고 생각하는 것은 섣부르다.

그동안 헛고생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망연자실해 하거나 그동안의 시간을 다른 곳에 활용했더라면 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에게 시나리오가 시원찮다해도 라스트까지 썼다는 것은 분명 초보자에겐 크나큰 업적(?)이며 재산이다. 또한 시점에서 시나리오 쓰는 능력이 숙련되거나 아니면 보다 업그레이드된 시나리오 얻을 수 있는 밑바탕이 된다.

때문에 좋은 아이템 혹은 괜찮은 아이템이라고 생각했을 때 본인 스스로 끓어오르는 열정과 감정이 있을 때 몰입하여 써나가는 편이 훨씬 낫다. 나중에 써야겠다고 하다가 아이템 자체를 날리거나 소홀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아이템 자체가 담긴 시나리오를 써놓고 나면 그것이 별볼일 없고 마음에 안들더라도 나중에 발전시킬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일단 한번 쓰고 나면 같은 아이템이라도 새롭게 재구성할 수 있고 더 획기적인 시나리오를 구상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열정이 있을 때 써놓고 후에 시각의 재조명을 통해 재구성하게 되면 보다 발전된 시나리오 한 편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고 썼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지속적인 사유가 뒤따라야만 한다. 이것이 잘 실행되지 않을 때는 과감하게 처음의 아이템이나 시나리오를 백지화시켜 본다. 기본이 잘못된 아이템이라면 그것을 씨앗 삼아 성장시키는 것이 힘들 것이다. 오히려 기존의 발상이나 시나리오에 매달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어려운 경우가 있다. 특히 작가 스스로가 처음 아이템에 빠져 있거나 좋다고 생각했을 때 특히 더 그렇다.

조금만 처음의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처음의 아이템을 기반으로 다양한 발전을 시도할 수 있고 그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아이템과 스토리를 선택하여 발전시킬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하면서도 막상 멋진 스토리나 구성이 떠오르지 않고 지지부진하다면 시나리오의 출발은 처음부터 빗나가기 시작한다. 머릿속에서 왔다갔다만 하고 생각 같아서는 아주 멋진 시나리오가 될 것도 같은데 왜 구체화가 되지 않을까?

그렇다고 한다면 지금까지의 그 생각들을 아낌없이 버리길 바란다. 고여 있는 샘물을 퍼내면 새로운 샘물이 그곳에 차오르듯 생각을 버리면 그곳에 새로운 생각이 고이기 마련이다. 그 샘물은 전보다 깊은 곳에서 올라와 그만큼 깊이와 맑은 모양을 지니게 된다. 이처럼 가치있는 시나리오로의 변신은 그저 새로운 시각으로의 발상전환이 필요할 뿐이다. 발상의 맥을 끄집어내기만 한다면 전보다 나은 발상과 숙성된 시나리오를 꾸릴 수 있게 되고 설익은 주제 역시 저절로 익어서 떨어지는 과일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제 더 이상 시나리오를 쓰는 일이 버겁지만도 싱겁지만도 않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