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은 그 장면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혹은 보여주고자 하는 목적이 잘 드러나 있는가하는 문제다. 젊은 남녀가 처음 만나게 되는 장면이라고 한다면 그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그들의 관계가 어떻게 진행될지를 시사하는 그 장면에 있어서 전달하고자 하는 분명한 이야기가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바로 이야기 진행에 따라 장면에 담겨 있어야 하는 목적인 것이다.

'가문의 영광'을 보면 낯선 남녀가 한 침대에서 일어나 서로를 보고 놀라는 장면에서 영화가 시작된다. 이로써 이 영화의 이야기 시작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이 낯선 두 남녀가 한 침대에서 깨어나게 되는 비밀이 영화 후반에 가서야 에필로그로 보여준다.

등장인물은 나왔는데 아무런 사건도 없이 그 장면이 진행되고 있다면 이 장면은 불필요한 장면이다. 살아있는 장면을 만들려면 사건이 있어야 한다. 등장인물이 혼자 나오는 장면이라도 그 장면 안에는 사건이 담기게 된다. 등장인물의 내면이든 외부적 상황이든 부딪힘이 있어야 생명감이 깃들게 된다. 또한 그 사건이 구체적이고 섬세할수록 힘을 얻게 된다.

두 개의 신분을 지닌 림병호란 인물을 그린 '이중간첩'의 한 장면을 보자. 과거의 생활을 청산하고 제 3세계에서 어느날 우연히 자신을 찾은 낯선 남자의 총에 맞고 쓰러진 주인공. 아무도 모르게 그가 살아온 신분처럼 그렇게 또 조용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단순히 총에 맞아 쓰러지는 장면이지만 림병호의 죽음, 그 자체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영상은 죽음뿐이지만 복합적인 사건이 그 안에 담기게 되는 것이다.

장면에 주제도 있고 사건도 있는데 주인공의 감정 변화가 없다면 이것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똑같은 상황을 가지고도 캐릭터에 따라 서로 다른 감정의 변화와 행동을 보여주는 복잡미묘함이 거기에 있다. 생각과 감정의 혼란을 겪게 나면 주인공은 변화된다. 이때 감정의 변화 역시 캐릭터가 지닌 환경과 상황에 맞는 것이어야 한다. 모범생이 뜬금없는 터프가이가 된다면 캐릭터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분명 있어야 한다. 그것이 영화적 리얼리티를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이중간첩'에서 림병호가 이중간첩 노릇을 하면서 결국은 두 개의 조국을 외면하고 제3국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가 처한 상황속에서 감정의 변화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혼란을 통해 내면의 변화가 이루어졌다면 이것은 또한 반드시 행동으로 옮아가야 한다. 내면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행동의 변화가 없다면 이것도 시나리오가 늘어지는 한가지의 요소로 작용된다. 주인공의 행동의 변화는 전체 시나리오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품행제로'에서의 중필이 혼자서 수십명을 상대해 때려눕힐 정도의 주먹 솜씨를 지닌 캡짱임에도 안경 쓴 모범생의 소녀를 짝사랑하게 되었을 때는 수치심에 과장된 행동을 일삼는다. 그럼에도 소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기타를 손에 쥐는가 하면 껄렁하게 꺾어 신던 운동화를 바로 신는다. 이것이 바로 행동의 변화다. 운동화는 늘 꺾어 신고 나이어린 친구들의 삥이나 뜯으면서 츄리닝에 껄렁한 그의 일상이지만 범생이 소녀를 사랑하게 됨으로써 혼란을 겪는다.

수치심을 느껴 다른 친구들에게 비밀로 하거나 아닌척 한다. 혼란속에서 결국 소녀의 사랑을 얻게 되자 그의 행동에 변화가 생성된다. 주인공의 행동 변화는 이렇게 감정의 변화와 그에 따른 혼란 그리고 행동의 변화로 나타나게 된다.

주인공의 대사는 영상적인 장면에 포인트를 주는 것과 같다. 때로는 그 반대가 되기도 하지만 살피는 장면에서 은유나 상징된 핵심적인 대사가 있는지를 점검해 본다.

일상적인 대사라 할지라도 장면의 상황이나 캐릭터와 부딪혀 힘을 발휘하고 그런 대사는 또한 오래도록 남게 된다. 의미없이 던져지는 대사들은 장면은 물론 캐릭터의 존재조차 의문을 갖게 만든다. 이 장면이 혹은 이 캐릭터가 왜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면 역시나 과감하게 삭제되어야 할 장면이 된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대사보다는 감정이 묻어나는 정서적인 대사가 더욱 인간을 사로잡는다는 사실을 한번쯤 염두에 두고 점검하도록 한다. 어려운 대사를 일상적인 대사로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다.

앞서의 장면과 현재의 장면이 어떤 연계성을 갖고 움직이고 있는지를 살핀다. 장면과 장면들은 실핏줄처럼 연결되어 있어야만 한다. 이야기는 흐름이다. 흐름을 단절시키는 장면의 등장은 아무리 재밌는 장면이라도 불필요한 장면이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연계성을 지니지 않고 독단적으로 만들어지고 움직이는 장면이라면 과감하게 잘라내도록 한다. 또한 다음 장면으로 전환하기 위한 장치가 현재의 장면에 표현되어 있는지를 점검하도록 한다.

'번지 점프를 하다'를에서 남자 주인공은 비오는 어느날 자신의 우산 속으로 들어오는 그의 사랑과 만나게 된다. 그녀와 처음 만나게 되고 그후 영화는 조금은 우스꽝스럽지만 자신의 사랑을 향해 다가가는 그의 모습들을 점진적으로 보여주게 된다.

교정에 그녀가 나타나면 그녀 앞에 어느덧 가 있기도 하고 자신의 강의는 접어두고 그녀의 강의실에 나타나기도 한다. 이처럼 사랑을 향해 가는 점진적인 그의 행동에 관객은 젖어들게 되고 다음에는 어떤 방식으로 주인공이 등장할 것인지에 대해 흥미와 호기심을 갖게 된다.

영화는 영상의 예술이다. 그래서 한마디의 대사만큼이나 한 장면의 영상이 더욱 크게 자리할 때도 있다. 명대사와 명장면이 공존하는 건 영화예술의 백미라 할 것이다. 장면에서 대사가 적다면 사건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과연 영상은 어떠한가를 점검해 본다.

대사도 사건도 없는 장면이 단독으로 멋있기란 대체로 힘들다. 이야기 속에서 나오는 어울리는 영상이 주인공들의 감정이나 상황에 이입되었을 때만이 그 가치가 진정하다고 할 것이다.

시나리오 한 편을 완성하면서 영상적인 압권이 2∼3장면 정도 생성될 수 있다면 분명 잘 쓴 시나리오에 속한다. 아니 단 한 장면이라도 제대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동 시나리오의 향후 가능성은 농후하다.

'번지 점프를 하다'에서 남자 주인공이 제자를 향해 '난, 널 알아보는데 넌, 날 왜 몰라보냐'고 하던 장면이나 선생과 제자가 나란히 서로의 연인임을 깨닫고 다음 생의 사랑을 약속하던 라스트 장면 등은 그 영화의 압권이라 할 수 있다. '친구'에서 빗속에 칼부림을 당하면서도 '그만 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라며 스스로 죽음을 맞던 장면, 사형선고를 받을줄 알면서도 '쪽팔려서 인정했다'등의 장면은 그 영화의 압권으로 자리하기에 충분하다.

이렇듯 한 장면이 영화 전반의 힘을 모아 대변할 수 있을 때는 그 영화의 백미이자 압권으로 작용될 수 있다.

시나리오를 진행해 나가면서 제대로 그려지진 않은 설계도는 이야기적인 오류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초반에는 분명 악인이었는데 뜬금없이 인물이 객관성이나 변화의 전환점을 거치지 않고 선인이 되었다거나 그런 행동을 하지는 않는가, 덤벙대는 캐릭터가 어느 장면에서는 너무나 진중하게 행동하지는 않았는가 하는 등의 것이다.

캐릭터나 이야기에는 그 흐름을 이끌어가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그 일관성이 파괴되었다고 할 때는 분명 전환점(비하인드 스토리 구성이나 사건의 표출, 캐릭터의 비밀 누설 등)을 통한 혼란과 변화의 시기를 거치는 단계를 설정해야만 한다.

시나리오가 완성되었는데 오류를 발견하기 어렵지만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만을 감지한다면 이번에는 시나리오의 끝부분에서부터 역류하여 이야기의 동기까지 와보도록 한다. 쉽게 오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시나리오 전체의 주제는 분명 하나다. 간결하고 핵심적인 주제를 지녔을 때 더욱 힘있고 깔끔한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가 만들어질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주제, 서로 다른 많은 사건들이 등장한다면 지금 쓰는 시나리오는 산만해지기 쉽고 어느 하나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끝맺을 수 있다. 한 장면에 너무 많은 것을 담아서 그 장면의 목적이 무엇인지 혼동된다면 과감하게 하나의 목적만을 선택하여 다시 구성하도록 한다. 전체적인 스토리 역시도 마찬가지다.

'조폭 마누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 사람의 결혼만이 주변 인물들의 결혼도 함께 다루거나 다른 주제를 부합시킨다면 시나리오의 힘은 떨어지고 나중에는 이야기만 있고 주제가 사라지게 된다. 하나의 주제를 선택했으면 그 주제에 부합되는 사건들로 집약시키고 다른 주제들을 결부시키지 않는 것이 완성도를 높이는 지름길이다.

시나리오에는 주제가 있고 드라마가 있고 캐릭터가 있고 사건이 있고 구성이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적절한 시점에서 변화의 시점과 맞닥트리게 된다. 두 시간이라는 시간동안 적절한 시점에서 과연 이들의 요소가 변화를 시도하고 있고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가,라는 것을 점검해야 한다. 드라마에도 3막이 있고 캐릭터에도 3막이 적용되고 사건이나 구성에서도 3막은 적용된다. 이미 우리는 여기서 3막이라는 의미에 대해서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주제에 있어서의 3막이란 무엇일까? 주제에도 혼란과 변화의 시점에 분명 있어야 한다. 그것은 주제를 더욱 잘 표현해주기 위한 정반합(正反合)의 논리라고 보면 된다.

주인공이나 이야기의 프로타고니스트(Protagonist)가 있으면 안타고니스트(Antagonist)가 존재하는 것과 같다. 주제를 더욱 잘 부각시켜 주는 것들은 바로 주제에 반하는 바로 안티테제(Antithese)의 요소라는 것을 되새겨 볼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중간첩'에서 림병호가 인민북조선공화국을 위해 남파되어 간첩활동을 하지만 간첩활동을 하는 과정상에서 조국에 대한 충성과 개인의 행복 중 어느 것이 중요한가라는 혼란을 겪게 된다. 조국에 대한 충성이 확고부동하다고 해도 그가 처한 상황은 그를 결국 거대한 조직의 부품쯤으로 취급하게 된다. 그리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 제3국에서 살고 있는 그를 끝까지 쫓아가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조국에 대한 충성은 그렇게 그의 인간적인 삶과 맞물리지만 그가 죽음을 맞이하게 됨으로써 조국에 대한 충성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시사하게 된다.

인간의 행복에 대한 영위와 조국에 대한 충성은 서로 엇갈린 정(正)과 반(反)의 형태를 띤다. 그리고 그 둘의 관계를 보여주면서 결국 합(合)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작가는 이 합(合)의 부분을 관객에게 떠넘기기도 하고 열린 구조로 끝을 맺음으로써 두 시간 동안의 이야기를 통해 영화의 뒤나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을 짐작하게 만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