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아마조네스를 만나다. - 코요테 어글리

옛날 시나리오 공부를 할 때 과제로 20분짜리 극본을 써야할 때 였다. 다들 어떤 주제를 가지고 글을 써야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한 동기가 흥분하며 애기했다.
"왜 다들 영화는 예술적이어야 하고 심각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난 한 시간 동안 웃고 즐기고 기분 좋아지면 아주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해. 영화에서 뭘 바라는거야?"
그때, 난 그 말을 그저 흘려들으며 나름대로 진지한 주제를 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짰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극본에 한 동안은 자아도취되어 의기양양했지만, 이제 와서 다시 읽어보면 쑥스럽기 그지없다.
어설픈 메시지를 전달하려기 보다는 건강한 웃음을 추구하는 것이 어쩌면 더욱 값어치 있는 작업일지도 모르겠다. 또한 나이가 들어가면서 웃음 한 자락이 점점 절실해 지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간절해진다.

코요테 어글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따뜻한 심성을 가졌다. 그리고 모두 '의리'를 가장 큰 덕목으로 삼고 있는 듯 하다. 악당이라 불릴만한 인물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극적 긴장감이나 스릴은 떨어질 지 몰라도 편안함이 있다.
보통 주인공의 성공담을 다룬 작품에서는 가족의 이야기에 소흘해지기 쉽다. 스토리가 분살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요테 어글리의 주인공 바이올렛과 그녀의 아버지는 때로는 반목하면서도 끝까지 부녀간의 사랑을 연신 확인한다. 혼자 되신 아버지를 고향에 두고 무작정 뉴욕으로 상경한 바이올렛은 아버지의 식사와 빨래를 걱정하고 잔소리 하며, 아버지는 바이올렛이 뉴욕에서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을까 걱정을 놓지 못한다. 결국 바이올렛이 코요테 어글리에서 일하는 걸 알고는 잠시 갈등이 있기는 하지만, 아버지의 사고로 둘의 관계는 다시 회복되고 아버지는 딸의 적극적인 조력자로 변신한다.

코요테 어글리에서는 여성들의 관계도 무척 흥미롭다.
보통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들 하지 않는가. 여기서는 여자들의 날카로운 신경전도(아, 있긴 있다. 바이올렛이 손님들에게 인기를 끌자 글로리아가 잠시 질투를 하긴 하지만…) 음모도 없다. 오히려 가족처럼 따뜻하게 보살펴 주고 바이올렛이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자극하고 도움을 주는 관계들이다.
특히, 바이올렛의 친구는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결혼식날, 바이올렛의 아버지가 사고로 입원하게 되자 결혼피로연도 마다하고 병원으로 달려와서는 "남편은 지금 막 가족이 된 거지만, 너는 지금까지 나의 가족이지 않았느냐?"는 그 대사는…친구간의 우정이 남자들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을 삽시간에 떨치게 해준다.
코요테 어글리의 보스 역시 깐깐하고 규칙에 엄격하긴 하지만 보스다운 배짱과 넉살로 여장부다운 모습을 유지한다. 오히려 바이올렛의 남자 친구 캐빈은 그런 보스에 비하면 상당히 귀엽고 애교스럽다.

그러나 뭐니 뭐니해도 이 영화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은 음악이다.
영화에 삽입된 곡들은 모두 평균 이상의 수준이다. 이글즈의 멤버였던 돈 헨리의 1984년 히트곡 "All she wants to do is dace"나 EMF의 최고의 히트곡인 "Unbelieveable", 스냅의 "The Power" 등 다양한 장르의 개성있는 음악들이 포진되어 있다. 특히 극 중 바이올렛이 부른 "Can't fight the moonlight" 과 "please remember" 은 사실 리앤 라임스의 목소리. 1996년 14살의 나이로 혜성처럼 등장한 여성가수로 영화 말미에 직접 바에서 열창하는 까메오로도 등장하고 있다.

<코요테 어글리>는 <플래시 댄스> <탑건> <아마겟돈> 등의 히트작을 만든 제리 브룩하이머가 제작한 영화로, 춤과 음악을 통해 성공하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 <플래시 댄스>와 많이 닮아 있다. 그래서 <코요테 어글리>는 쉽게 <플래시 댄스>와 비교되기도 한다. <플래시 댄스>에 비해 등장인물들의 갈등이 단순하고 바이올렛이 무대 공포증을 해소하는 과정 또한 설득력이 떨어져 이 부분에선 실소까지 나온다. 헐리우드 상업영화의 전형성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현란한 춤과 8등신 미녀들, 경쾌한 음악을 보여주고, 즐기기 위해 만든 영화이니까 굳이 토를 달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관객 역시 웃고 즐겼을 테니까.

참고로 영화의 제목이자 극 중 바(bar) 이름인 '코요테 어글리'는 뉴욕에 실존하는 술집으로 미녀 바텐더들이 뇌쇄적인 춤을 추고 때로는 손님들에게 맥주와 얼음을 퍼부으며 짓궂은 장난도 치는 '쇼'도 보고 술도 마시는 곳이다. 그러나 이 곳에는 한 가지 규칙이 있다. 미녀 바텐더들의 쇼를 구경은 하되 절대 몸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것. 지금도 뉴욕에 저녁이 깔리면 젊은 남녀들이 '쇼'를 보기 위해 입구에서 긴 행렬로 늘어서 있다고 하니 그 인기를 짐작할 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