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니와 준하>라는 영화는 와니(김희선 분)와 준하(주진모 분) 그리고 영민(조승우 분)과
소양(최강희 분)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와니와 준하의 동거, 그리고
와니의 머리 속에 데자뷰로 남아 있는 첫사랑인 이복 동생 영민 그리고 영민을 사랑한 소양….
영화는 그들의 꿈, 사랑, 상처 그리고 성장의 이야기를 따사롭게 담고 있습니다.

-from 영민 to 소양

소양에게

잘 지내지?
서울의 공기가 어색해. 친구네 집이긴 하지만 잠자리도 어색하고, 그럭저럭 견딜 만 하지만. 친구네 집 앞에 작은 초등학교가 하나 있어. 이따금 저녁 먹고 학교 운동장에 나가보곤 해. 산책하러 말이야. 운동장 사방팔방으로 뛰어 노는 아이들을 보면 어릴 적이 생각나. 기억나지? 소양이, 너 체력장 연습한다고 와니 누나랑 나까지 고생했던 거. 매달리기 2초를 못 넘기고, 던지기는 8미터에, 윗몸 일으키기도 엉망이고, 게다가 오래 달리기까지 못하고, 와니 누나랑 나랑 널 보면서 한편으로 가엽고 한편으로 얼마나 귀여웠는지 아니? 그 때가 참 아련하게 느껴진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오래 지난 일도 아닌데 무척 오래된 일처럼 느껴져! 왜일까? 가끔씩은 그 때도 돌아가고 싶어, 그래서 많은 것들은 새로 시작하고 싶어져. 다시 모든 것을 원위치에 놓고, 다시 자리 매김하고 싶어지곤 해. 그만큼 세상을 잘 살지 못했나봐.

소양아! 넌 요즘 뭐하고 지내니? 참, 휴학했다면서 휴학하고 딱히 할 일은 있는 거야? 아니면 도피성 휴학이야. 사진기 둘러매고 사진 기행이라도 떠날 계획인지 모르겠네. 함께 자전거 타고 이곳 저곳 돌아다니는 일도 참 괜찮을 것 같은데, 안그래? 자전거 탈 곳 많은 남춘천이 그립네. 거긴 유럽보다, 서울보다 덜 답답할 텐데. 그래도 왠지 돌아가기는 싫어져. 넌 얼마전 춘천에 내려갔었다면서. 가서 와니 누나도 만나고, 와니 누나랑 같이 산다던 준하인가 하는 사람도 만났겠네. 누나는 잘있지? 통화는 했는지 한국 와서 아직 얼굴은 못 봤거든. 요즘에도 달팽이 보면 무서워하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이제 눈화장은 제대로 할 줄 아는지? 준하라는 사람은 어때? 전화 목소리로 얼핏 들었을 때는 참 명랑하고 예의바른 사람인 것 같던데. 어쩌면 매형 될 사람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느낌이 참 묘해져.

우리 한번 봐야지! 소양이 얼굴 못 본지도 2년이 넘었다. 아니 2년이 뭐야 3년이 다되어가네. 얼굴보고 옛날 얘기도 많이 하고, 그 동안 다른 하늘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 나눴으면 좋겠다. 와니 누나도 함께 봤으면 좋겠는데, 준하씨도 있으면 좋고. 환절기야. 감기 조심하고, 늘 행복하고, 두서 없는 글 이만 줄일게!

- 2001년 어느 날 한국에 온 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