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영화 '부산을 담고 싶다'

부산이 아시아 영화의 ‘무대 배경’이 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PIFF)가 홍콩과 도쿄 국제영화제를 제치고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부상했다고 외신들이 앞다투어 평가한 것이 지난해의 풍경이었다면, 올해는 부산이 외국영화의 촬영 명소로 각광받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부산영상위원회가 지난해 출범후 60여편의 영화 촬영 신청을 받은 것에 자극 받아 이웃 일본에선 지난 한 해 동안 도쿄 고베 등 전국 6개 대도시에 필름커미션(영상위원회)이 생겼다. 말레이시아도 국가가 운영하는 필름커미션을 만들어 영화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아시아 각국이 부산을 벤치마킹하고 있는 한편으로는 아시아 영화 제작자들도 부산을 촬영지로 삼기 위해 저마다 부산으로 몰려들고 있다. 아시아 영화를 부산으로 끌어당기는 일을 하는 곳은 부산영상위원회. 현재 1편의 외국영화가 촬영을 완료했으며, 4편의 영화 촬영 신청이 접수됐다. 영화를 제외한 영상물로는 일본 뮤직비디오 1편이 촬영을 끝냈다.

‘메이드 인 홍콩’, ‘리틀청’ 등으로 주목받은 홍콩 프루트 챈 감독의 ‘공중화장실’이 지난해 11월 촬영을 마친 상태다. 홍콩, 부산, 뉴욕 등 4개국 7개 도시의 색다른 화장실 풍경을 담아내는 디지털 영화 ‘공중화장실’에는 가수 겸 탤런트 장혁이 주연배우로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외국영화로는 처음으로 부산에 로케이션 지원신청서를 낸 홍콩 왕가위 감독의 ‘2046’은 현재 사전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중국 배우 장진이 출연하는 뮤직비디오 ‘브라운 아이즈’ 촬영 일정에 맞춰 22일 부산에 온 왕가위 감독은 로케이션 헌팅 작업을 벌이느라 부산 곳곳을 답사했다.

또 이와이 순지 감독의 ‘러브레터’, SF 대작 ‘쥬브나일’ 등을 제작한 일본영화사 ‘로봇커뮤니케이션’은 액션영화 ‘버디’를 부산에서 찍는다. 로케이션 자료 제공을 의뢰한 영화사측은 이 영화가 아시아의 경계를 넘어선 캐스팅을 바탕으로한 ‘아시아 영화’라고 밝혔다.

인도 영화 한편도 신청 접수됐다. ‘맛살라 영화’(인도의 상업영화)로 제목은 미정. 인도 국민배우 고빈다와 라비나 탠든, 소날리 밴드르 등이 출연한다. 한국 무용수와 요리사 등 배우 섭외도 영상위원회에 의뢰했으며 오는 9월께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인도와 한국이 물가 차이가 많이 나는 점을 감안해 영상위는 장비 무료 대여 등 최대한 지원할 계획이다. 일본 영화 ‘터치볼 고고’의 제작사인 ‘알타미라 픽쳐스’ 관계자들도 지난 3월 1차 로케이션 헌팅을 끝내고 돌아갔다. 일본 최고의 인기 댄스그룹으로 10년째 대중 가요계의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드림스 컴 트루(DCT)’는 영상물 뮤직비디오를 3월 부산에서 촬영하고 돌아갔다.

지난해 ‘해바라기’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던 일본의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도 차기작 ‘고(Go)’(제작 토에이)를 부산에서 촬영하고 싶다는 뜻을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에 밝혔다. 한 재일 동포 학생이 자신의 뿌리를 찾아나선다는 내용의 일본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부산에서 촬영할 계획도 세우고 있으며, PIFF에서 월드프리미어(세계 최초 상영)하기를 바란다는 말을 전했다.

지난해 부산프로모션플랜(PPP)에서 대상을 수상한 홍콩 유릭와이 감독의 ‘부산이야기’도 6, 7월께 부산에서 촬영된다. 5살때 미국으로 입양된 한 여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양부모가 준 입양서류를 들고 부산으로 온다는 내용으로, 제목까지 ‘부산이야기’가 돼 버렸다.

이처럼 아시아 영화가 국경을 넘어 부산으로 몰리고 있다. 이들은 △전폭적 지원으로 영화 제작에 전념할 수 있고 △제작비 절감 효과를 거두며 △공급 판로를 개척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부산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우선 각종 영화 작업시설의 낙후가 큰 걸림돌. ‘쇄골아래 내 사랑’의 료코 아라마키감독, ‘100번째 원숭이’의 요시히로 이토 감독, ‘태엽 인형’의 야스노리 코야마 감독은 2000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를 통해 처음으로 만난 사이. 영화제가 끝난 후 일본에서 다시 만나 영화 한편을 공동으로 만들자는데 의기투합했다. 촬영을 끝낸후 부산에서 후반작업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들은 부산에 후반작업 시설이 없다는 사실에 놀라며, 발길을 서울로 옮겨야 했다.

부산은 이제 촬영지에서 한차원 발전해 영화 산업의 중심기지로 도약할 단계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영화제로 영화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후, 외국영화들을 적극 유치한 것이 지금의 단계라면, 이제부터는 현상소 등 양질의 후반작업 시설을 설치해 영화 산업 발전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또 아시아 영화뿐 아니라 할리우드, 유럽 영화 등의 촬영을 유치하는데도 나서야 할 때라는 것.

김은영(동서대 영상매스컴 학부)교수는 이제는 ‘서비스’가 아니라 ‘영업’에 들어가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로케이션 서비스나 홍보 차원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마케팅’이라는 개념을 도입해야 하며, 그 영업을 맡을 인적 자원 확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