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생이 텔레비전 쇼라고 생각해. 나는 윌 쇼의 주인공이고 윌 쇼는 앙상블 드라마가 아니야.” 38살의 노총각 윌(휴 그랜트)은 타인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기피한다. 기대하기도 싫고, 기대 받기도 싫은 것이다. 아버지가 남겨준 단 하나의 히트곡을 유산으로 각종 전자제품과 어울려 지내며 짧은 연애만을 반복하고 있다. 윌은 스스로를 이렇게 말한다. 섬 중에서도 매일같이 파티가 열리는 이비자섬 이라고..

인간은 섬이 아니다!?

찰떡 궁합을 자랑하던 그와의 만남이 짜증스러워질 때,
하나밖에 없던 친구녀석이 말끝마다 태클을 걸어올 때,
회식자리에선 똘똘 뭉치던 동료들이 잔업 때문에 서로 눈치볼 때,
역시 가족 밖에 없지..하고 현관문을 여니 엄마 아빠 싸우는 소리가 나를 반길 때...

아아 역시 인간은 섬이로구나! 감탄사를 연거푸 쏟아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내가 혼자 즐거워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면...

새로 산 핸드폰도 걸려와야 제 맛이고, 수 십개의 스팸 속에 파묻힌 하나의 카드 메일!
그걸 보고 외치는 '심봤다'를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윌의 경우는 조금 심각하다. 섬에서 혼자 만의 삶을 꾸려 나가는 방법을 완벽하게 터득했으니 말이다.

CD를 고르고 샤워를 하고 퀴즈쇼를 보고.. 그는 그 모든 일상에 정확히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시간을 안배한다. 한계비용체감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을 만큼 적당히 말이다. 그리고 연애에 있어서도 그는 정확하다. 결혼이라는 지옥에 들어가지 않으면서도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 수 있도록 말이다. 하지만 철들지 못하는 그 서른중반의 소년을 미워할 수 없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소년, 소년을 만나다.

싱글 맘과 가벼운 연애를 하기 위해 윌은 '혼자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모임'에 참가하게 된다. (참으로 힘든 조건의 여자를 만나기 위해 노력하는 그는 결코 세상을 쉽게 살려고 하는 소년이 아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12살짜리 왕따 소년 마커스를 만나게 된다.

윌은 단지 레이첼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 마커스를 아들로 위장한다. 하지만 마커스는 다르다. 엄마의 자살 소동을 겪은 후, 둘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셋은 되어야 한다고 느껴버린 것이다. 마커스는 <씨애틀의 잠 못이루는 밤> 혹은 <제리맥과이어> 에서 처럼 자신을 매개로 두 사람을 이어주기로 결심한다. 물론 제멋대로 나만의 섬에 흘러들어 온 꼴통이 윌에게 달가울 리는 없다.

수업 중에 자기도 모르게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친구들에게 초콜릿 폭탄을 맞으면서도 초콜릿은 처음이라고 말하는.. 우울증 걸린 엄마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어려움도 감수해내려고 하는 아이의 탈을 쓴 어른, 마커스.

외롭고 소극적인 마커스에게 마치 아빠와 같은 책임감으로 '멋진 남자가 되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마커스를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점차 성숙한 어른이 되어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라고 영화는 설명해준다.

하지만 윌이 멋진 남성으로 성장해 버렸다면 이 영화는 <어바웃어 보이>가 될 수 없다. 그가 진실한 사랑을 깨닫고 삐딱한 아들까지 딸린 그녀와 결혼을 하기로 결심해 버렸다면, 너무 철이 들어서 마커스에게 흔해 빠진 잔소리 따위만 하게 되었다면, 내내 웃음 달고 지켜보던 소년과 소년의 만남이 얼마나 허무했을까....말이다.

인간은 섬이다, 체인망으로 연결된!

윌은 섬에서 나가는 방법을 알지 못했던 것이 아니다. 성장통이 두려워 피터팬 증후군을 가장했던 것도 아니다. 다만, 섬에서 바라보던 육지의 삶이 그에게는 매력적이지 않았을 뿐이며, 그들과 같은 성장 속도를 유지하지 않았을 뿐이다.

마커스는 엄마를 웃게 만들기 위해 교내 록 콘서트에서 엄마의 18번인 '킬링미 소프틀리'를 부르기로 결심한다. 엄마가 웃을 수 만 있다면 친구들에게 매장당하는 것 쯤이야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윌은 마커스를 구하기 위해 학교로 달려간다. 또래의 아이들이 힙합과 랩으로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와중에, 반주도 없이 30년전의 흘러간 팝 노래를 부르고 있는 마커스. 이 아이를 위해 윌은 아버지가 아닌 친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관중의 야유를 한 몸에 받으며 노래를 부르는 소년과 소년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억지로 먹어버린 혹은 뱉어버린 나이는 벗어 던지고, 자신의 발육속도에 맞게 제대로 된 나이를 되찾은 것이다.

영화 <어바웃 어 보이>의 매력은 분명 거기에 있다.
인간은 섬이 아니라고 일목요연하게 영화를 정리해주는 마커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섬이 되어 떠돌고 싶은 여지를 남겨두었다는 것.. 그것이 소년들에 관하여 들어줄 만한 이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