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 "한국영화 개성 보편화, 지금 고민해야 할 때”

- 김기덕 감독 신작 <비몽> 언론시사회 열려

김기덕 감독이 최근 한국 영화의 해외 주요 영화제에서의 부진과 관련해 "지금이 한국 영화계가 고민을 해야할 때"라고 말했다.

김기덕 감독은 23일 오후 용산CGV에서 열린 <비몽>(제작 김기덕필름·스폰지) 언론시사회 후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2~3년간 해외 영화제가 한국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방향이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유럽 10대 영화제는 한국 영화를 초청을 하는데 몇 개 주요 영화제들은 약간 주저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김기덕 감독은 이어 "예전에는 유럽의 웬만한 영화들이 한국에서 많이 개봉했는데 최근에는 오히려 그 반대가 돼 버렸다. 유럽에 웬만한 길거리에 가면 한국 영화 개봉 포스터를 볼 수 있는데 반대로 한국에서는 옛날처럼 유럽영화를 좋아하는 매니아가 있지 않는 것 같다. 또한 한국 영화들이 보여질만큼 보여져 그 개성이 보편화됐다는 생각이 든다"며 "그런 점들이 해외 영화제 프로그래머들에게 영향을 준 것 같고, 균형 면에서 재고를 해야되는 상태라고 진단하고 있는 것 같다"며 덧붙였다.

김기덕 감독은 또 "지금부터 잘 해야 되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나나 한국 영화계에서 고민을 해야될 때인 것 같다"고 조언했다.

김기덕 감독은 영화에 대해 "2년 전에 우연히 꿈을 꾸고 그 자리에서 시놉시스를 바로 썼던 작품"이라며 "내 차를 조감독이 운전하고 나는 조수석에서 자고 있었는데 사고가 나서 깼다. 그때 그 사고를 내가 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꿈속의 과거, 현재, 미래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또 "이 영화에는 꿈 장면도 있고 여러 가지 이미지가 있지만 가장 큰 주제는 사랑"이라며 "사랑은 무엇인가, 사랑은 어디까지인가…사랑의 한계에 관한 영화"라고 덧붙였다.

장첸에 이어 일본인 배우 오다기리 죠를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서는 "내가 전면으로 나서면 거부감이 들기 때문에 '빈 집' 이후로 파트너로 일해온 스폰지의 조성규 대표가 대부분 주변 인맥을 통해서 부드럽게 접근해서 일을 성사시키는 편"이라며 "오늘 보니 좋은 그림이 돼 있어 고맙다"고 말했다. 이에 조성규 대표는 "장첸이나 오다기리 죠도 김기덕 감독님과 작품을 하고 싶어했고 감독님을 보고 출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덕 감독은 아무런 통역 없이 다룬 국적의 인물들이 서로의 모국어로 대화하고 이해하는 설정에 대해서는 "중간 통역자를 넣지 않고 그냥 서로 각자의 모국어로 하는 것이 나도 반신반의했지만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실제 대본 연습할 때 몇 차례 배우들에게 물었는데 별 문제가 없다고 동의를 받았고, 또 어쩌면 두 인물이 각자 언어로 하지만 또 상대 언어도 한다는 시대가 언젠가는 오지 않겠냐는 생각도 했다. 그런 방법적인 문제는 그동안 내 영화를 통해서 범위들을 넘어섰기 때문에 나로서는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김기덕 감독은 한옥이나 절 등 한국적인 풍경을 주된 배경으로 삼은 이유에 대해 "내가 한국 사람이고 어릴 때 내 삶의 환경들이 그래왔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특히 이번 영화에서 정말 마음 먹었던 것은 100% 한옥에서 찍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회동 한옥은 물론이고 평소 눈여겨봤던 한옥에서 촬영을 했다. 이동신 빼고는 거의 대부분이 한옥에서 이뤄졌다"며 "이유는 모르겠지만 한옥이라는 느낌들이 영화에 표현하는데 심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번 영화로 2년만에 스크린에 컴백한 이나영은 "시나리오를 보고 굉장히 깜짝 놀랐다.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이건 너무 좋다'라고 마음속으로 결정을 해버릴 만큼 너무 재밌게 읽었다"고 말한 뒤, "김기덕 감독님의 작품을 많이 접하지 못해서 감독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센 이미지가 내게는 전혀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다가가기 쉬웠다"며 "시나리오 자체와 감독님의 색깔이 묻어난다는 것, 상대 배우의 느낌 등 모든 면들이 너무 좋아서 그냥 무작정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나영은 또 "시나리오 자체가 현실에서 잘 이뤄질 수 있는 스토리이기 때문에 공감대보다는 이 사람들이 처한 상황들이 재미있었다"며 "장르적으로도 보통 여자 캐릭터에는 한계들이 많이 지어지기 때문에 이 시나리오를 더욱 재밌게 읽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일본 배우 오다기리 죠와의 호흡에 대해서는 이나영은 "마음과 마음이고 눈빛과 눈빛의 교환이기 때문에 언어 소통이나 대화를 하는데 있어서는 문제가 전혀 없었다"며 "오히려 각자의 언어로 하는 것 자체도 굉장히 좋았다. 일본어가 우리 어순과 똑같아 억양이 그렇게 많이 다르지 않았다. 정말 디테일 한 부분에서는 안 되는 부분들이 있지만 그런 것도 사전에 서로 상의를 했다"고 말했다.

또 배우 오다기리 죠에 대해 "다른 작품을 통해 좋아하던 배우였고, 외국 배우인데도 전혀 경계의 벽이 없었다"며 "촬영하기 전에는 감독님과 얘기도 많이 하는 등 오히려 여유로와 보였고, 촬영에 임할 때면 굉장히 달라지더라. 그래서 오히려 내가 연기를 하면서 긴장했던 부분들도 많고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배우로서 굉장히 나에게 자극을 많이 줬다. 배울 점도 많았고, 좋은 연기호흡을 가졌던 것 같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슬플 비(悲)자에 꿈 몽(夢)자를 써서 ‘슬픈 꿈’이라는 뜻을 가진 영화 <비몽>은 헤어진 여자를 잊지 못해 꿈에서라도 그녀를 만나려고 하는 남자 ‘진’(오다기리 죠)과 몽유병 상태에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의 꿈대로 행동하며 그와는 반대로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은 옛 애인을 찾아가게 되는 여자 ‘란’(이나영), 꿈으로 이어진 두 사람의 불가사의한 인연과 비극적인 운명을 그린다. 자신이 교통사고를 내는 꿈을 너무도 생생하게 꾼 ‘진’은 직접 현장을 찾아가게 되고 실제로 똑같은 사고가 나있는 상황을 발견하게 된다. 그곳에서 몽유병상태에서 진의 꿈대로 행동한 ‘란’이라는 여자를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이 꿈으로 이어져 있음을 깨닫는다. 과거의 애인을 잊지 못하고 계속 꿈을 꾸는 ‘진’과 그 꿈에 의해 그토록 증오하던 옛 애인을 찾아가게 되는 ‘란’. 더 이상 옛 애인을 만나고 싶지 않은 ‘란’은 진에게 더 이상의 꿈도 꾸지 말라고 부탁하지만 스스로의 꿈을 컨트롤할 수 없는 ‘진’은 또다시 꿈을 꾸고 만다.

"사랑의 한계에 관한 영화"라는 감독의 말처럼 <비몽>은 헤어진 여자를 잊지 못하는 남자의 고통과 한계에 관한 영화다. 또한 "당신이 행복하면 이분은 불행합니다. 두 사람은 한 사람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면 꿈도 사라지고 몽유병도 사라집니다"라는 극중 심리 치료사의 대사처럼 사랑과 증오가 결국 같은 것이며 그것을 받아들일 때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기덕 작품답게 여전히 추상적이고 극단적이지만,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꿈으로 이어져 있다는 독특한 설정 속에서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스토리텔링은 나름 흥미롭다. 또한 국적이 다른 인물들이 각기 다른 언어로 말하지만 소통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는 과감한 설정도 새롭다. 이나영과 오다기리 죠, 두 한일 스타의 흥미로운 조합과 열연, 그리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화면도 영화의 매력을 더한다. 특히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주인공 두 남녀와 그들의 헤어진 연인들이 모두 등장해 서로 뒤죽박죽 교차되면서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갈대밭 신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앞서 <비몽>은 올해 칸 영화제 필름마켓에서 프랑스 등 8개국에 선판매되는 쾌거를 올리기도 했으며, 최근 체코 카를로비바리국제영화제와 스페인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돼 상영 중이다. 한편 이날 언론시사회에서는 국내 상영될 버전과 다른 영혼을 상징하는 나비가 보이지 않는 버전이 상영됐다.

김기덕 감독의 15번째 영화 <비몽>은 청소년 관람불가로 10월 9일 국내 개봉한다. [비몽]


2008.9.23 / 코리아필름 김철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