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여성감독들' 주제로 '아주담담' 행사 열려

여성 감독이 드문 한국 영화계에서 올해 무려 6명의 여성 감독이 등장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부분의 초청작 20편 중 무려 6편이 여성 감독의 영화인 것. 이는 부산국제영화제뿐만 아니라 한국 영화계에서 아주 이례적인 현상이다.

올해 부산영화제에 초청된 여성감독 중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임순례 감독과 <미쓰 홍당무>의 이경미 감독,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의 부지영 감독, <그녀의 방>의 고태정 감독, <푸른 강은 흘러라>의 강미자 감독 등 5명의 여성 감독들은 4일 부산 해운대 피프빌리지 야외무대에서 열린 새로운 형식의 관객과의 대화인 '아주담담'에 참석해 한국 영화계에서 여성이 감독으로 데뷔하기 어려운 부분들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아쉽게도 재미동포 김소영 감독은 참석하지 못했다.

이날 가장 선배인 임순례 감독은 "내가 연출부 할 때만 해도 여성 스태프이 거의 없었지만 지금은 현장에 가면 50% 넘을 정도로 많아진 상태이다. 그리고 스태프로서 현장에서는 각자 명확한 역할이 있기 때문에 여성이라고 차별 받는 부분은 없다"면서도 "하지만 감독으로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 제작자나 투자자, 배우를 만나야 되는 과정에 있어서는 네트워킹이 좀 약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임순례 감독은 이어 "남성들은 아무래도 사적으로 가지고 있는 네트워킹이 강하다"며 "보통 영화라는 작업이 같이 술을 마시거나 운동을 하고 포커를 치면서 이뤄지는 일들이 많다"고 한국 영화 시스템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이경미 감독 역시 "스태프로 일하면서 내가 여자라서 불편하다는 느낀 적은 없었고 감독이 됐을 때 그런 경험이 유용하게 쓰였다. 그런데 감독을 하면서는 조금 달랐다"면서 "군대 문화로 인해 수직상하 체계에 익숙한 제작 현장에서 합리적인 내 방식 때문에 초반에 스태프들이 당황했었다. 그런 부분을 조율하는 게 조금 힘들었다"고 말했다.

고태정 감독도 "대학교나 단편 영화제에서는 여성 감독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는데 장편 영화에서는 왜 이렇게 보기 힘든 것인지 연유를 모르겠다"며 "현장에서는 특별히 차별을 받지 않는데 왜 이렇게 입봉하기가 힘든 이유가 분명 수의 열세는 있지만 아마도 정치력이 부족하다거나 장편 영화 같은 큰 판을 벌이는 일이 익숙하지 않을 것이라 선입견 때문인 것 같다"며 말했다.

여성 감독의 현장 장악력에 대해서는 부지영 감독은 "현장 장악력은 목소리가 크거나 체격이 좋아야 하는 문제는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라며 "내가 이번 영화를 찍을 때는 커뮤니케이션을 잘했다고 자부한다. 현장에서 한번도 큰 소리를 한번 지른 적도 없고 스태프들을 힘으로 누르려 하지 않고 솔직하게 요구하고 얘기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거부하는 스태프가 없었다. 여자 감독이라고 해서 현장 장악력 없다는 편견은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순례 감독 역시 "힘은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에게서 나오는데 영화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가장 많이 고민한 사람이 감독이기 때문에 현장에서 스태프들이 감독의 말을 잘 이해하고 따라주는 것"이라며 "감독이 자기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스태프한테 정확하게 지시하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대가 형성이 되는데 감독 자신이 헷갈려하고 자신 없어하면 남자가 됐든 여자가 됐든 불신이 생기는 것이다. 자기가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알고 있고 정확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하면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보탰다.

이날 참석한 5명의 작품들은 공교롭게도 강미자 감독의 <푸른 강은 흘러라>를 제외하고는 모두 여성이 주인공인 이야기이다. 데뷔작으로 여성들의 이야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느냐는 질문에 이경미 감독은 "솔직히 남자 마음을 잘 모르겠다. 이번 영화에서도 주인공이 남자 마음을 모르고 헤맨다"며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보이는 게 더 많다. 여자들의 한두마디 대화 속에서도 뉘앙스나 불꽃 뛰기는 느낌 같은 것들이 더 잘 보인다. 그런 부분에서 재미를 많이 느끼는 것 같다. 특히 여자들이 싸우는 것이 재밌다"고 말했다.

임순례 감독은 "나는 여자 마음도 남자 마음도 잘 모르겠다"며 "남자들은 자기가 모르는 이야기도 좀 허황되게 섞고 불려서 하는 반면 여자는 구체적이고 잘 아는 상황들은 얘기하기 때문에 자기가 경험하고 느낀 것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부지영 감독은 "여성 감독들이 만드는 영화가 너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은 불만"이라며 "남자 감독들이 도전하는 액션이나 스릴러 같은 규모가 있는 영화들을 여자 감독들도 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에 임순례 감독도 "이제는 장르 영화나 웰메이드 상업 영화들도 만드는 여성 감독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행사에 참석한 많은 여성 감독 지망생들에게 고태정 감독은 "내가 나온 영화아카데미도 전공자보다는 비전공자가 많다. 꼭 영화과를 나오지 않아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며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있게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경험하면 좋을 것 같다"고 충고했다.

임순례 감독은 "여성 감독 지망생들에게 "체력을 길러라"라며 "영화 감독은 3D 업종이고 굉장히 체력을 많이 요구한다. 특히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가 있기 때문에 체력을 많이 기르면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2008.10.04 / 코리아필름 김철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