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진영 "영화 자체의 존재도 모르고 묻혀진다면 굉장히 억울할 것 같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 광기 어린 카리스마를 보여줬던 '연산군' 정진영이 작은 동네의 치킨집을 운영하며 홀로 지능이 조금 낮은 아들을 키우는 자상한 아빠로 변신했다. 정진영, 최우혁 주연의 가족영화 <날아라 허동구>(감독 박규태, 제작 타이거픽쳐스)가 13일 오후 서울 신촌 메가박스에서 기자시사회를 가졌다. 대만의 동화 <나는 백치다>를 원작으로 한 <날아라 허동구>는 <달마야 놀자>의 시나리오를 쓴 박규태 감독의 데뷔작으로 <왕의 남자>의 정진영과 <안녕, 형아>, <파랑주의보>의 아역배우 최우혁, <김관장 대 김관장 대 김관장>의 권오중 등이 출연한다.

이날 박규태 감독은 "성인연기자 못지 않게 꿋꿋하게 촬영에 임해준 아역배우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며 "히딩크 감독이 명예시민증을 받을 때의 한국이름이 허동구이다. 월드컵 때 많은 국민들에게 희망을 줬던 히딩크 감독처럼 <날아라 허동구>도 관객들에게 희망과 웃음을 줄 수 있는 작품이 됐으면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영화에 대해 박 감독은 "이 영화가 장애아를 그리고는 있지만 장애아의 성공이야기나 장애를 극복하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며 "발달장애 아동이나 학습지진 아동들도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연출의도를 밝혔다. 또 감독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드라마틱한 긴장감이라든지 영화적인 설정을 철저하게 배제하려고 노력했다"며 "누가 봐도 저럴 수도 있구나, 아이를 키우는 아빠라면 누구나 저렇게 생각할 수 있게끔 그려봤다"고 말하고, "아빠라는 캐릭터도 특이한 직업을 가진 아빠가 아니라 치킨집을 운영하며 먹고 살기 위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아빠로 설정했고, 동구 역시 발달장애를 갖고 있지만 특이한 행동을 하는 것이 아이가 아니라 누구나 어렸을 때 따돌림당하고, 학업을 잘 못 따라가고, 놀림당했던 친구가 하나씩을 있기 마련인데 그런 아이로 설정했다. 또 동구의 꿈은 홈런을 치거나 사회의 톱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첫 발걸음을 내딛는, 최소한의 공격행위인 번트인 것이고, 아빠 또한 아들의 쾌유를 위해 적극적으로 공부를 가르치려고 애를 쓰기보다는 그냥 그대로 아이를 사랑하려는 아빠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배우 정진영에 대해선 박 감독은 "평상시에도 소탈하고, 스타의식이 없는 배우다. <달마야 놀자> 때 만났는데 <왕의 남자>가 끝나고도 그때나 지금이나 늘 한결 같은 사람"이라며 깊은 신뢰감을 표하고, "사실 처음 시나리오에는 아빠가 아닌 엄마였는데 정진영 씨가 사무실에 놀러와 농담으로 '아빠로 바꾸면 내가 할께'라고 한 것이 계기가 돼 어쩔 수 없게 하게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자신의 아들을 함께 참석한 정진영은 "나의 아들이 최초로 아빠가 하는 연기를 극장에서 보는 영화다. 그동안 등급 때문에 못 봤다"며 "처음으로 아들에게 보여주는 영화라 자랑스러운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그런 것 같아 만족하고, 그래서 오늘 아들 녀석을 학교 조퇴시키면서까지 데려왔다. 그만큼 이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날로 먹었다고 할 정도로 정말 편하게 연기한 작품이다. 실제 10살 짜리 아이를 키우고 있는 터라 우혁이를 그냥 아들로 생각하면서 연기했다"며 "아역배우라서 따로 연기지도를 하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연기를 안 하길 바랬다. 연기보다 진짜 아버지와 아들처럼 서로를 느끼는 것 중요했고 우혁이가 나를 아버지로 바라볼 수 있도록 거리감을 없애는 것이 급선무였다"고 말했다. 이례적으로 최근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과 아침토크쇼 '아침마당'에 출연하며 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사고 있는 그는 "이 영화를 너무 좋아했는데 오늘 보고 나니 굉장히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인지도가 낮고, 화려한 스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시간도 오래 지나고 해서 걱정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관객들의 반응이 좋질 않아 안 본다면 할말이 없지만, 영화 자체의 존재도 모르고 그냥 묻혀진다면 굉장히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며 "그래서 방송에 나와 홍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같은 심정으로는 <날아라 허동구>를 알릴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발이 닿는 한 얘기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또 그는 "심지어는 다음 주에 길거리에서 닭도 팔 생각이다. 그만큼 이 영화를 좋아한다"며 작품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시했다.

IQ60의 소년 동구 역을 소화해낸 아역배우 최우혁 군은 "무더운 여름날 촬영을 했는데 모든 분들이 잘해줘서 힘들기보다는 즐겁게 촬영했다"며 "정진영 아빠가 잘해줬다. 또 오히려 진짜 아빠보다 안 무서웠다"며 말했다.

영화 <날아라 허동구>는 발달장애로 IQ가 낮아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하지만 학교 가기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아들과 그런 아들을 위해서 어떻게든 초등학교만이라도 졸업시켜 주고 싶어하는 아빠의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장애아를 정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이전의 영화들처럼 장애아가 겪는 차별이나 고통, 극복과정을 그리기보다는 동구가 느끼는 행복과 자신만의 사랑방식, 그리고 자신의 행복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방법을 터득하게 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와 살아있는 캐릭터로 기대 이상의 웃음과 감동을 주는 작품. 정진영의 호연도 볼 만하지만, 그보다 IQ60의 천진난만한 동구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낸 아역배우 최우혁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단연 돋보인다. 장애아가 아닌 단지 남들보다 조금 학업능력이 떨어진 아이로 느껴지게 하는 데는 장애아를 바라보는 감독의 애정 어린 시선도 있지만 최우혁의 자연스러운 연기로 큰 몫을 한다. 야구부 권코치로 분한 권오중의 맛깔스러운 코믹연기가 솔솔한 재미를 선사한다.

영화 <날아라 허동구>는 전체 관람가로 4월 26일 개봉한다. [날아라 허동구]

2007.4.13 / 코리아필름 김철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