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 26개국 265편(장편 총 60편)…거장들의 신작 및 신진감독들의 작품 상영

오는 15일 개막하는 제5회 서울필름페스티벌(세네프 SeNef 2004)이 프로그래머 추천작 12편을 소개했다.

올해 영화제에는 "집중과 확장 Digital Convergence & Artistic Expansion"이라는 주제로 9월 15일부터 22일까지 7일간 서울 종로 일대의 허리우드극장 3개관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개막작인 영국 피터 그리너웨이의 <털스 루퍼의 가방 제2부>를 시작으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라울 루이즈와 같은 거장들의 신작 및 신진감독들의 작품 등 총 26개국 265편(장편 총 60편)의 작품이 상영될 예정이다.

디지털 시대의 첨단 영화들과 과거의 무성영화가 공존하는 이 독특한 영화제를 찾을 관객들이 놓쳐서는 안 될 12작품을, 영화평론가이기도 한 김지훈 프로그래머가 추천했다.

* 섹션-[디지털익스프레스-디지털 장편 극영화 대상 국제경쟁부문]

1. 반액요금(Demi-Tarif, 프랑스, 이질드 르 베스코(Islid le Besco), 2004)
엄마에게 버려진 세 남매, 측은하게만 보일 법한 이 아이들은 학교와 사회로부터 고립된 채 자신들만의 유토피아를 꾸며 간다. 공포를 쫓기 위해 잠을 안 자고 TV를 보는 아이들의 눈망울, 어둠을 피해 발가벗고 밤거리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놀이에 빠져들다 보면 시간은 멈춰지고 그들의 얼굴만이 빛을 낸다. 프랑스 에세이 다큐멘터리의 거물인 크리스 마르케(Chris Marker)의 작품에 출연했던 어머니를 둔 영화 집안의 딸이자 촉망받는 배우인 이질드 르 베스코는 데뷔작에서 직접 각본을 쓰고 카메라를 잡았다. 디지털 카메라 특유의 다큐멘터리적인 현장성과 친밀성을 갖고 상황에 따른 아이들의 감성을 포착한 아프고도 천진한 유년기.

2. 밤의 여로(Night Passage, 미국, 트린 T. 민하(Trinh T. Minh-Ha), 2004)
얼마 전 EBS 다큐멘터리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내한한 베트남계 여류감독이자 영화이론가인 트린 T. 민하의 신작. 7년 전 어머니의 가출 이후 병든 아버지를 간호하며 고단한 삶을 사는 한 베트남계 소녀가 친구들과 함께 밤 기차를 타고 겪는 몽환적인 모험담이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감성적인 이야기가 만난 화려한 오감의 향연이자 축제로,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이론가를 넘어 다방면에 출중한 재능을 가진 트린 T. 민하를 만날 수 있다.

* 섹션-[오버더시네마 - 국제비경쟁부문]

3. 프로세스(Process, 영국/프랑스, C. S. 리(C. S. Leigh), 2004)
"어느 여배우, 죽기로 결심하다." 그녀는 무대 위에서 대사를 말할 능력을 상실한 채 무기력한 실어증에 빠진다. 이것은 그녀가 바깥 세계와의 접촉을 점차 상실하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대화와 편집을 거의 배제한 채 단 29개의 쇼트로 구축된 독특한 형식의 잔혹극. 베아트리스 달과 기욤 드 파르디유(제라르 드 파르디유의 아들)의 연기가 어우러진 이 작품은 2004년 베를린국제영화제 출품작 중 가장 도전적인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다소 폭력적이고 성적인 장면 때문에 관람 전에 주의가 요망되는 이 작품에는 <나쁜 피>, <퐁네프의 연인들>의 감독 레오 카락스가 단역으로 출연한다.

4. 우리가 죽인 시간(The Time We Killed, 미국, 제니퍼 토드 리브즈(Jennifer Todd Reeves, 2004)
여기 뉴욕의 한 아파트를 떠날 수 없는 로빈 테일러(Robyn Taylor)라는 여류작가가 있다. 그녀는 자신을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 괴롭혀 온 광장공포증과 싸우면서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의 사건과 마주한다. 죽음과 테러, 폭력과 재난에 대한 파편적인 단상 속에서 그녀의 의식은 개인적이고도 내밀한 세계로 옮아간다. 실험영화의 전통을 거친 흑백 이미지와 새로운 이야기 화법 속에서 조명하는 '올해의 발견'으로 2004년 베를린영화제 국제비평가상 수상작.

5. 죄수일기(A Prisoner's Diary, 스위스/프랑스, 피에르-이브 보르고(Pierre-Yves Borgeaud, 2003)
컴퓨터 전문가인 에릭 슈게(Eric Suger)는 컴퓨터 범죄에 연루되어 가택감금을 당한다. 그에게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고 감시할 수 있는 전자 칩이 장착되어 있다. 디지털/비디오 미디어에 대한 탁월한 탐구정신과 명민한 아이디어로 충전된 이 작품은 2003년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비디오경쟁부문 황금곰상 수상작으로 유머와 감성이 곁들여진 탁월한 '가짜 다큐멘터리'다

6. 원거리 전쟁(Wat at a Distance, 하룬 파로키(Harun Farocki), 독일, 2003)
이 작품은 비디오 매체와 전자매체 이후의 현대전이 인간의 제어를 멀찌감치 벗어나고 있다고 경고한다. 관객은 2차 세계대전부터 본격화된 미사일 유도 시스템, 전쟁 및 비행 시뮬레이션의 발달이 걸프전 당시의 미사일 조정화면으로 수렴되는 것을 목격한다. 2004년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상영작으로 장 뤽 고다르와 더불어 이미지에 가장 정통한 감독으로 평가받는 하룬 파로키의 최근작.

7. 겁쟁이는 무릎을 꿇는다(Cowards Bend the Knee, 가이 매딘(Guy Maddin), 캐나다, 2003)
핸섬하고 매력적인 하키 스타인 가이는 지역 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가 머리에 충격을 입는다. 이때부터 판단력이 혼미해진 그는 지역의 잘 나가는 살롱에 갔다가 그곳의 주연인 릴리옴과 메타 모녀에게 이끌린다. 무성영화의 저장고를 부활시켜 인간의 유약한 심리와 내밀한 욕망을 그로테스크하게 상연해 온 '추운 나라에서 온 감독' 가이 매딘의 근작으로, 작년도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 회고전 이후 급격히 늘어난 그의 추종자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 섹션-[백투더오리진 - 1920년대 유럽영화 : 영화와 미술의 만남]

8. <기계적 발레>, <빈혈증 영화>, <리듬 21> 외
페르낭 레제, 마르셀 뒤샹, 한스 리히터, 라즐로 모홀리-나기 등 현대미술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화가들은 영화에 손을 댔다. <기계적 발레(레제)>, <빈혈증 영화(뒤샹)>, <리듬 21(리히터)> 등 영화교과서와 현대미술사에서 스틸 사진으로만 접할 수 있었던 이 작품들을 필름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드디어 마련되었다. 1920년대에는 이 작은 영화들과 더불어 스펙터클 대작 SF영화가 나란히 경합했다. <비인간>, <아엘리따 - 화성의 여왕> 등 이 시기 블록버스터들을 함께 관람한다면 '무성영화의 황금기'라 불리는 이 시기 영화사의 중요성을 서울필름페스티벌에서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 섹션-[영화, 그 현재와 미래]

9. <레고가 영화를 만났을 때>
커다란 극장화면에서 작지만 화려한 세트를 무대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귀여운 레고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여기 있다. 더구나 이들 중 다수는 으리으리한 블록버스터를 과감하게 인용하고 재연한다! 특별프로그램 《레고가 영화를 만났을 때》에서는 레고로 만들어진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인 브릭필름(brickfilm)의 대표작 19편을 선보인다. 패러디가 무엇인지 보여줄 <레고매트릭스>, <레고매트릭스 레볼루션> <스파이더맨>, <베른의 기적> 등 총 19편이 관객들을 요절복통하게 만들 채비를 갖추고 있다.

[마스터비전 : 스트로브-위예 vs. 알 라주티스]

10. 루브르 방문(Un Visite au Louvre, 2003, 프랑스, 장-마리 스트로브 & 다니엘 위예)
전통적인 필름영화를 고수하면서 영화의 기본적인 요소들을 30년 넘게 정제하고 가공해 온 장-마리 스트로브 & 다니엘 위예(Jean Marie Straub-Daniele Huillet)의 혜안을 서울필름페스티벌 이후에는 다시 만나기 힘들 것이다. 그들의 최신작인 <루브르 방문(2003)>은 세잔이 만년에 루브르 박물관에서 겪은 체험을, 보편적인 미술 다큐멘터리와 판이한 방식으로 영화화했다. 영화와 현대음악(쇤베르크)과의 관계를 들려주는 <오늘부터 내일까지>와 <아놀드 쇤베르크의 영화음악 입문>, 영화와 문학/역사 텍스트를 기이하게 접목시켜 기억과 풍경의 의미를 탐구하는 <포르티니/카니>, <구름에서 저항까지>, <로트링겐>도 놓쳐서는 안 되는 대표작들.

11. <알 라주티스 - 3차원 입체영상 비디오>(캐나다, 알 라주티스)
캐나다의 감독?미디어 아티스트 알 라주티스(Al Razutis)는 60년대 후반 미국 언더그라운드 실험영화계에서 경력을 시작한 이후 비디오아트와 홀로그래피, 3차원 입체영상과 가상현실로 활동영역을 넓히면서 영화의 정의와 형태를 '확장'시킨 인물이다. 5편의 단편 비디오 모음인 이 프로그램에서 관람자는 현장에서 제공 예정인 특수 안경을 착용한다. 2차원 평면의 극장에서는 체험할 수 없는 입체감과 현실감 속에서 낯선 육체와 세계가 당신들의 눈앞에 황홀하게 살아 움직일 것이다.

* 섹션-[시네트래픽 : 영국]

12. <원닷제로 8 - 샤이놀라>
영국의 페스티벌 투어 프로그램인 원닷제로(Onedotzero :www.onedotzero.com)는 '동영상의 새로운 모험'을 화두로 내걸고 전 세계에서 가장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오디오비주얼 이미지들을 선별해 왔다. 시각디자이너와 광고기획자, 음악 마니아 모두에게 어필하는 원닷제로의 프로그램 중 굳이 하나를 고르라면 영국의 가장 잘 나가는 애니메이션 창작집단인 '샤이놀라(Shynola)'의 대표작 22편이다. 애니메이션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상상력과 크로스오버를 구현하는 이들의 작품을 보면 왜 블러(Blur)와 라디오헤드(Radiohead) 등의 거물 밴드들이 앞다투어 그들에게 뮤직비디오를 의뢰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샤이놀라의 대표작을 보고 발동 걸린 관객들은 100편의 최신 뮤직비디오를 장장 6시간 동안 논스톱으로 심야상영하는 '주크박스 미드나잇'에도 동참해 보자!

2004.09.03 / 코리아필름 김철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