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엔 사람이 있어야합니다...나의 작품관은 휴머니즘입니다! ”

소나무를 사랑하는 내츄럴리스트! ‘마로 픽쳐스’란 이름도 자신이 지어....!
어느 건축가는 그 사람이 있는 방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이정황 감독의 방은 바닥은 마루로, 모든 벽은 회칠이 되어 있다. 그는 인테리어를 담당한 후배에게 간단한 요구를 했다고 한다. 그냥 편히 생각할 수 있는 공간, 천장은 뭉개 구름이 흘러가는 느낌이 나게 회칠을 했으면 좋겠고, 작은 창이 여러 개 있으니까, 유럽의 어느 건물처럼 테라스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편히 밖을 내다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덕분에 후배는 천장 회칠 때 구름 효과를 내느라 목이 삘 지경이었다고. 방 중간에 덩그러니 놓여 천장까지 닿아 있는 진짜 나무는 후배의 선물이라는데, 공간 자체를 여유롭게 만드는 훌륭한 배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창가 쪽 벽에 큰 소나무 사진이 붙어 있었다. “소나무를 좋아해요. 그래서 아들 이름이 ‘솔마로’예요, ‘이 솔마로’. ‘마로’는 옛말인데 지금 말로 하면, ‘마루’죠. 밑에 대는 판. 또는, 밑이 되는 판을 의미해요. 거기 소나무가 있으니 나름대로 일송정을 뜻한거죠. 여기 영화사 이름도 그래서 ‘마로’로 지어봤어요.

한석규가 84년 강변가요제에서 장려상 탄 ‘길 잃은 친구’에게를 작사한 멀티재능꾼!
강변가요제 출신이라는 특이한 이력의 이정황 감독. 그가 만든 노래는 현재 인터넷으로 두 곡 정도들을 수 있다. 79년 제1회 강변가요제 입상곡이었던 ‘바다’, 그리고 배우 한석규가 84년 강변가요제에서 장려상을 받았던 ‘길 잃은 친구에게’가 바로 그것. “두 곡 다 지금과는 다른 정서가 있는 것 같아요. 뭔지 모르겠지만 뉘앙스 차이랄까요?” “그 당시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시대에 대한 강박 관념이 있었어요. 현실이 어지러우니까.. 모두 잘살자는 취지로 유토피아에 대한 고민들이 캠퍼스에 팽배했어요. 보수적이고 부패한 사회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수용하지 못했고, 우린 문화를 통해서 그런 얘기들을 했던 것 같아요. 서로를 위로했던 것도 같고...”

CF에서 영화로 진출하기까지 박계옥 작가와의 진한 우정!
“시나리오를 쓴 박계옥 작가와는 어떻게 같이 일하게 되셨어요?” “CF만 했으면 못 만났을 거예요. 그는 충무로에서 잘 나가는 상업 작가이기도 했고 동문이기도 했고... 그래서 아이디어를 주고 써보라고 했죠. 같이 술을 먹다가 동문 선배 중에 존경하는 분이 있대요. 시인이신데 나와는 친한 사이거든요. 근데 박작가가 그 분이라면 꼼짝을 못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술 먹다가 일산 가자 그랬어요. 자기는 집에 데려다 주는 걸로 생각했나봐요. 내가 미쳤어요. 집까지 데려다주게? 일산 가서 밤 12시에 그 시인 선배를 불러냈죠. 그랬더니 이 친구, 깜짝 놀래는 거예요. 자기가 그렇게 존경하는 분하고 나하고 허물없이 지내니까... 그 후부터 나를 마치 큰형 대하듯이 하더군요...” “‘아생 연유 살타’라는 바둑에서 하는 말이 있어요. 말의 뉘앙스 때문에 이기적이고 공격적이라 생각할 수 있는데 실은 정반대라고 생각해요. 열심히 노력해서 나의 입지를 최대한 다진 다음 경쟁을 하자는 얘기니까요. 사람한테는 기회란게 있다고 믿어요.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뿐입니다. 나는 준비되어 있으려고 노력하고 기회가 오면 놓치지 말라고 나를 다그치고, 또한 후배들에게도 그렇게 말하고 싶어요.

<휘파람공주>는 남북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도 절대 무거운 영화가 아니다!
누구나 가끔 추진력이 지나쳐서 정도를 넘어서면 실수를 하게 마련인데, 그때마다 조율해주는 것은 자신만의 작품관이나 작가관일 듯. 이정황 감독의 작품관 혹은 작가관은 과연 무엇일까? “음.. 아마 이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거 같아요. ‘휴머니즘’. 영상물에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CF는 거의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임했던 것 같아요. ‘자유시간’이란 제품 CF는 장애인을 데리고 “남에게 자유를 줄 때 더 큰 자유를 느낍니다”란 카피를 써서 찍었어요. 인간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중점을 뒀었죠. 참 기억에 남는 작품예요. 개인적으로 잊지 못하는 영화는 ‘사운드 오브 뮤직’과 ‘러브스토리’인데 그런 영화는 꼭 해보고 싶어요. 따뜻하잖아요. 그런 걸 저는 휴머니즘으로 봐요. “<휘파람공주>에도 적용되는 건가요?” “그럼요. 늘상 했던 얘기지만 <휘파람공주>란 영화에는 분명 ‘이데올로기’라는 화두가 있어요. 직접 언급되진 않지만, 보는 사람들은 충분히 인식할 수 있죠. 남북 사람들의 얘기란게 그랬잖아요. 늘 어렵고 무겁고 때론 무섭고. 하지만 그 안의 사람만 본다면 그렇지 않죠. 사람 산다는 게 뭐 틀리나요? 다 똑같지. 일하고 사랑하고 웃고 울고..... 그런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남북한 사람들이 만나 보여주는 자연스런 모습, 사람 사는 모습, 사랑하는 모습... 반대로 그들을 어둡고 무겁게 만들고 있는 정치나 주변 열강 같은 경직된 것들은 마음껏 조롱하고...”

촬영중인 휴먼코미디 <휘파람공주> 중간점검, “이렇게 만들고 있습니다!”
- 이정황 감독과의 풀타임 인터뷰!

Q. CF를 굉장히 많이 했고 능력도 입증받았다. 영화를 하게 된 계기는?
이정황: 연출자로서 당연히 언젠가는 영화를 하겠다는 생각은 늘 갖고 있었다. 직접적인 계기는 98년 에 찾아온 IMF여파가 광고계에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또한 광고계 현실에 대한 고민도 있었고.... CF 프로덕션에서 영화 기획을 하면서 영화를 해볼까 하다가, 광고 회사에서 영화 한다는 게 무리가 있는 것 같아서 보류를 했었다. 암튼 나이도 있고 해서 뭔가 안정적인 수 입원이 필요했고, 처음엔 중국집을 할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 하겠더라. 그래서 가족을 설득했다. 다행히 가족은 지지를 보내주었고 특히 아내의 전폭적인 지지가 아니었으면 영화를 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아내가 너무 고맙다.

Q. 음악 얘기를 해보자. 곡도 쓰고 노래도 했다는데..
이정황: 제1회 강변 가요제에 솔로로 나가서 입상했다. 당시는 내가 유일한 솔로였다. 후에 노래를 계 속한다는 건 벅차기도 해서, ‘덧마루’라는 통기타 중창단을 만들어 활동했다. 그때 후배로 한 석규가 멤버였는데 강변 가요제에 출전하라고 곡을 써줬다. 그 노래가 장려상을 받은 ‘길 잃 은 친구에게’란 노래이다. 어쩌면 대상을 탔을 지도 모르는데 한석규가 고음에서 삑사리를 냈 다. 돌아와서 빳따로 기합을 줬다.(웃음) 그때 대상은 ‘J에게’가 받았다.

Q. 록 페스티벌 총격전 장면에서 가수가 아닌 영화감독으로 무대에 다시 서보니 어떻던가?
이정황: 감회가 새로웠다. 무대는 당시 강변가요제에 비하면 초가삼간하고 호텔 차이였다. 지금 은 노래를 하지 않으니까 무대를 영상에 잘 담아봐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지금은 영화 감 독이니까, 본분에 충실한다. 후후.

Q. 록 페스티벌 총격전씬 리허설 때, 무대에 올라가 일일이 뭔가 지시를 하곤 하던데...
이정황: 아... 그건 밴드가 가져야 할 무대 장악력에 대한 얘기였다. 일단 무대에 올랐으면 관객을 휘 어 잡을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 뭐 그런 얘기를 했다. 그래서 오버도 좀 하고 길길 이 날뛰기도 하고 흔들기도 하라고 그랬다. 연주 소리야 입히면 되지만 몸짓은 따로 입힐 수 없으니까... 근데 이 친구들 처음 이런 무대에 서보니까 잘 안되나 보더라. 연기라서 그런 지... 나는 지금도 무대에 서면 한시간 정도는 관객을 확 휘어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하하.

Q. 음악을 한 사람으로서 록 페스티벌이란 영화 속 공간은 의도된 것인가?
이정황: 맞다. 좀 개인적인 취향이 작용한게 사실이다. 이들 밴드 이름이 ‘노펜스’인데 영어로 NOFENCE이다. 울타리를 벗어나자... 뭐 그런 의미가 있다. 요즘 애들, 아니 거의 모든 사람 들이 다들 울타리에 갇혀 살지 않는가. 집, 회사, 사회, 분단현실도 그렇고... 이 영화 속에도 ‘노펜스’가 살고 있는 옥탑방, 연습실, 캬바레...등등, ‘노펜스’는 늘 어떤 울타리 속에 있다. 하지만 록 페스티벌이란 공간은 뻥 뚫린, 트여있는 공간이다. 해방과 자유의 의미를 주고 싶 어서 이런 공간을 생각하게 되었다.

Q. 왜 록인가?
이정황: 록은 저항을 의미한다. 그래서 주류에의 저항, 즉,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입관들, 안고 있는 문제들에서 해방되자는 의미를 두었다. 영화 속에서 ‘노펜스’는 해방의 공간-록 페스티벌에서 조차 노래를 다 부르지 못한다. 1절 정도만 불렀을 때, 총격전에 휩싸이고 만다. 현실은 그렇다. 통일은 왜 안될까? 너무 어려운게 현실이다. 그런 현실에 대한 저항에의 의미를 주고 싶 었다.

Q. 연출 방향은? 그리고 가장 힘들었던 점은....
이정황: 이 영화는 음악 영화가 아니니까, 시간이 많이 없었다는 것 빼고는 딱히 연출에 힘든 점은 없었던 것 같고, 자유, 해방, 그리고 따뜻함의 의미가 들어 있는 영화가 되었으면 한다.

코리아필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