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 The way
 


2008,다큐멘터리,96분,전체 관람가

제작/배급 : 싸이더스FNH ...more
제 작 : 김두태 l 프로듀서 : 차승재
감 독 : 김석우
촬 영 : 김석우, 이형모, 이상준
미 술 : 미상 l 편 집 : 김석우
음 악 : 박남예 l 동시녹음 : 미상

2008년 11월 6일(목) 개봉
blog.naver.com/road_2008

 

출 연
박영석, 오희준, 이현조

개봉관
CGV 무비꼴라쥬 (압구정, 대학로, 인천, 서면, 제주)
광주극장, 대전 아트시네마
대구 동성아트홀
홍대 상상마당, 스폰지중앙


= 시놉시스 =

- 죽음을 살아내고자 한 사람들의 이야기... [길]

등반은 발로 오르는게 아니라 하나된 가슴으로 오르는 것이다…
이제부터, 그들의 휴먼스토리가 시작된다!

2007년 4월 18일, 도전의 시작!
 

77대원들은 먼저 베이스캠프로 출발했다. 그들은 텡보체의 추모탑과 20주년 기념비에 들렀다가 남서벽 원정대와 합류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20~30대가 주축인 남서벽 원정대는 비행기가 회항을 하고 짐을 나를 야크와 포터가 없어 쩔쩔매는 등 초반부터 애를 먹는 가운데 77대원들과 합류, 에베레스트에 오르기 전 가슴 따뜻한 시간을 나눈다.

드디어 등반이 시작된 4월 18일, 전쟁은 시작됐다. 남서벽은 역시 험난한 거벽이었다. 체력과 경험에 관한 대원 한 명 한 명 뛰어난 클라이머였지만 등반을 마치고 캠프로 내려설 때면 하루 사이에 몇 년 늙은 것처럼 피폐해졌다. 그래도 이들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한 발 한 발 오른다는 데에서 희열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겁을 먹은 셰르파들이 등반을 거부하고, 이로 인해 식량과 장비수송에 차질이 생기면서 정찬일 대원이 고소증을 겪는 등 하나 둘씩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런 가운데 5월 8일 어버이날이 밝았다. 박영석 대장은 대원들이 부모님들과 통화할 수 있도록 인공위성전화기를 건네주고, 대원들은 무표정이지만 금세 눈물이 터져나올 듯한 분위기로 자신들의 안부를 전한다.

등반 27일째 5월 15일, "오늘 몇 시간 걸은거냐?" "10시간"
 

셰르파들이 오르지 못하자 20kg에 육박하는 짐을 지고 해발 8,000m를 등반해야 하는 대원들은 한걸음 내딛는 것조차 힘들게 된다. 설상가상 기상악화로 강풍이 몰아치고 텐트들이 날아가는 비상사태가 발생된다. 다행이 남은 한 개의 텐트에서 재정비를 마친 원정대는, 드디어 정상공격의 15일 아침을 맞는다.

어스름한 새벽녘, 전기도 끊긴 텐트 안에서 헤드랜턴 불빛에 식사를 마친 오희준, 이현조 대원은 칠흑 같은 어둠을 헤치고 남서벽으로 출발한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길을 쫓는 그들은 코스 중간, 마지막 등반을 앞두고 좁은 텐트 안에서 짧은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이것이 두 사람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목소리이자 마지막 모습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감 독 : 김석우

자신의 꿈 쫓는 산꾼의 모습 보여주고 싶었는데…

김석우 감독은 다큐멘터리 산악영화 <길>을 에베레스트 한국 초등 30주년에 많은 의미를 두며 만들고 싶었다. 77 원정대원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우리가 산악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 역시 이와 같은 선배 산악인들의 피와 땀의 결과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후반부에 들어가 박진감 넘치는 남서벽 등반을 통해 신루트 등반의 가치를 부각시킬 계획이었다. 그러나 두 대원의 갑작스런 죽음 때문에 많은 것이 달라졌다.

"갑작스런 죽음이 주제가 되고 말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너무 좋고 그렇게 쉽게 죽을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들은 분명 산악 영웅이되 영웅으로 다루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자신의 꿈, 자신만의 길을 추구하는 클라이머로 보여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김감독은 촬영을 위해 이 원정에 참가했으나 촬영 외적인 일 때문에 많은 고생을 겪어야했다. 원정 초 셰르파들이 보너스를 무리하게 요구하다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8명 중 4명이 빠져나가는 바람에 촬영장비뿐 아니라 자신의 등반장비도 직접 C2까지 올려야했다. 그리고, 또한 남서벽 7,300m까지 오르면서 클라이머들의 생생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오희준, 이현조는 정말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제가 힘들어하면 슬쩍 다가와 짐을 덜어주곤 했으니까요. 저는 해발 7,300m까지 밖에 촬영하지 못했어요. 제가 오를 수 있는 능력이 거기까지였으니까요. 이형모 대원이 남서벽 등반의 많은 부분을 촬영해 주었어요. 사고 직전 C4까지 오르고 텐트 안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오희준 부대장이 찍은 거랍니다. 사고 직후 설원에서 캠코더를 발견했을 때 많이 망가져 있었지만 다행히 복원시킬 수 있었던 겁니다."

사고 당시 C2에 홀로 머물다 1,300m 아래 빙하지대로 떨어진 시신을 찾아나서야 했던 김 감독은 "사고 당시 어찌나 힘들고 슬펐던지 너무 많이 울었다"며, "편집하느라 깜깜한 밀실에 갇혀 죽은 이들을 몇 달간 쳐다보다 보니 우울증이 걸릴 지경"이라고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길>에 대한 김 감독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이 영화는 기존의 필름 방식도 DVD 방식도 아니다. 500기가가 넘는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영화를 그대로 방영하기에 원본의 손상이 거의 없이 고화질을 그대로 살릴 수 있다고 한다.

"한국 최초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전국에 동시 개봉하고, 하드디스크를 통한 첫 번째 방영입니다. 디지털 개봉은 가장 친환경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필름으로 촬영하다 보면 필름작업 시 폐수가 많이 발생하고, 필름 또한 나중에는 폐기물로 환경을 오염시키기 때문이다."

영화 <길>에서 내레이션도 직접 해낸 김석우 감독은 사고로 주제가 뒤바뀌면서 77 대원들과 나눈 많은 인터뷰를 영화에 담지 못한 데 대해 아쉬움이 많다고 말한다.

"흥행에 성공한다면 77 선배님들의 얘기를 많이 넣은 DVD를 따로 제작할 생각입니다. 오희준, 이현조 대원들의 인터뷰 내용도 들어갈 거고요. 등산사료로서 가치있는 DVD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98년 코오롱등산학교 정규반을 나온 뒤 2000년 울산대 탈레이사가르 원정에 참가, 해발 6,500m까지 직접 등반하면서 촬영한 영상물을 '우리는 그곳에 갔다'는 타이틀로 선보이기도 했던 김석우 감독은 백두대간을 두 차례나 완주하고 최근 세 번째 도전에 나섰다.

"원래 연출이 전공인데 고산등반을 촬영할 만한 사람이 없다보니 제가 캠코더를 들게 된 거랍니다. 솔직히 지난 1년은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특히 밀실에 갇혀 지내는 게 너무도 지겨웠습니다. 죽은 이들의 모습을 다시 볼 때마다 너무도 가슴 아팠어요. 너무도 좋은 사람들이었으니까요. 대간을 걸으면서 악몽을 훌훌 떨쳐버리고 싶습니다."

- 미상

[FILMOGRAPHY]

1993년 단편 [지하생활자] 조감독
1994년 단편 [백색인] 조감독
1995년 [런어웨이] 연출부
1997년 [비트] 조감독
1998년 [태양은 없다] 조감독
2008년 [길] 감독

2005 '2006년 문경 산악 영화제' 집행위원장
시나리오 '산', '두 주먹 불끈 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