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urrection of
the Little Match Girl
 


2002, 액션/판타지/SF, 125분
15세 관람가


제 작 : 유인택/기획시대㈜
각 본 : 장선우, 인진미
감 독 : 장선우
촬 영 : 김우형 l 조 명 : 고영광
미 술 : 최정화 l 편 집 : 김현, 한승룡
음 악 : 달파란 l 의 상 : 채경화
배 급 : CJ 엔터테인먼트㈜ ..more

2002년 9월 13일 개봉
홈페이지 www.sung-so.co.kr

 

출 연
성냥팔이 소녀(성소) : 임은경
주 : 김현성
이 : 김진표
라라 : 진싱
추풍낙엽 _ 명계남
가준오 : 강타
오비련 : 정두홍
친위대장, 오인조, 시스템


영화리뷰

- 현실과 가상세계를 넘나드는 게임을 소재를 한 인터랙티브 액션영화!
...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금강경의 한 구절보다는 인물 한 구절에 의미가 있다...

[화엄경]은 차라리 좋았다.
[화엄경]의 직설법은 영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했다. 하지만 [성냥팔이소녀의 재림]의 은유법은 영화를 불편하게 한다. 장선우 감독의 화두가 게임이라는 은유를 통해서 희석되고 혼란스러워진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게임이라는 영화의 배경은 생명력을 갖지 못한다.

영화의 말미에 찰나적으로 나오는 '若見諸相非相 則見如來 무릇 형상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하느니라 모든 형상이 실체가 없다고 보면 곧 여래를 보느니라'라는 금강경의 한 구절이 감독의 말대로 이 영화의 '힌트'일까. 아니다. 이 구절은 오히려 주제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주제를 알려주는 것이고, 이 것마저도 지나치기가(어려워서 혹은 순간적으로 지나가서) 쉽다.
화두 던지기에 익숙하던 장선우 감독은, 이 영화에서는 화두의 해답마저 보여주려 한다. 무엇 때문일까. 영화가 주제를 스스로 깨우쳐주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직감한 것일까. 화두를 던지기 위한 영화가 스스로에게 혹은 관객에게 더 지난한 질문으로 되돌아옴을 느꼈기 때문일까.

단순하게 '보여지는 이미지의 허구성'만을 표현하기 위해서 게임에 빠져든 것은 아닐 것이다. 그 너머에 무언가(여래를 보느니라)를 추구하는 영화임에는 틀림없겠지만, 영화는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한다. 바로 영화적인 매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게임이라는 영화적으로 생소한 공간에서 무차별 액션과 이미지로 스크린을 점령하지만, 스크린만 점령할 뿐 보는 이의 마음은 사로잡지 못한다.

우선 성냥팔이소녀(이하 성소)의 되풀이되는 대사와 몸짓은 설득력을 갖기에 부족하도록 그려진다. 한 인물의 당위성은 그만큼 충분한 설명 혹은 드라마가 갖추어져야 비로소 생명을 지니는 것인데, 영화시작의 프리퀄에 가까운 성소의 뮤직비디오형식의 등장은 그녀에게 생명력을 준다는 입장보다는 오히려 그녀를 더욱 담담하게 받아들이도록(영화 안에서 뮤직비디오의 형태는 인물을 더욱 가상의 인물로 느껴지게 만들어서 감정이입을 차단하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만들고 이는 성소에게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3인칭이라는 타이틀만을 제공할 뿐이다. 즉 주인공 성소의 아픔은 화면에서만 맴돌 뿐 어떠한 감정의 전이 혹은 감정의 확대를 일으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서 성소 때문에 발생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생명력을 지니지 못하고 지루하게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아무리 화려한 액션과 CG로 치장을 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가장 신비하고 매력적이어야 할 인물 성소가 아무런 감정을 일으키지 못하는 3인칭으로 보인다면, 그것은 이미 게임오버와 다르지 않은 것이다. 혹시라도 장선우 감독이 3인칭으로 보이게끔 의도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면 이미 실패한 것이다. 실제게임의 묘미는 바로 자연스럽게 젖어드는 감정이입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게임의 인물과 전투는 바로 자신의 손끝과 머리에서 혼연일체가 된다는 가장 기본 말이다.

성소가 이미 생명을 잃었다면, 그녀를 구해내려는 '주'는 어떠한가. 혹시 그는 매력이 넘치는가. 이 또한 성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성소를 구하려는 주의 기본적인 문제는, 성소와 주의 관계가 불투명하다는 사실이다. 목숨을 걸고 구하려는 주의 몸부림은 미진한 관계의 틀에서 생명력을 잃고 무의미하고 무료하게 비취질 뿐이다. 화려한 액션과 CG에서 벌어지는 주의 성소 구하기는 기본적인 당위성도 지니지 못한 채, 울림 없는 행동만을 뿌려놓을 뿐이다.

생명력 없는 캐릭터들이 빚어내는 사건과 상황들은, 게임이라는 공간에서 별 의미가 없다. 비단 게임이 아니라 어떠한 배경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게임이라는 공간은 현실과 가상현실에 대한 모호함을 말하기에는 더없이 적절한 배경일지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게임을 채우는 인물과 사건이 매력적이지 못하다면, 생명력이 없다면 이미 공간의 의미는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심오한 화두 혹은 판타지액션은 죽은 인물이 만들어내는 죽은 사건과 상황에서 모두 의미를 잃은 채 화면을 헤매고 있는 것이다.

[성냥팔이소녀의 재림]은 가장 기본을 놓치고 있다. 막대한 제작비, 화려한 액션과 다양한 CG, 금강경의 한 구절이 던져주는 심오한 화두가 아닌 바로 시나리오의 완성도 말이다. 금강경 한 구절보다는 차라리 시나리오가 그려 가는 인물 한 구절에, 상황 한 구절에 더욱 의미를 두어야하지 않았을까. 말하고자하는 바가 아무리 심오하다고 할지라도 그 그릇이 턱없이 작다면 화두를 고스란히 담아낼 수 없는 것이다. 생명이 없는 인물과 상황이 그려내는 이야기는, 마찬가지로 죽어있는 것이다. 기본에 충실했다면 이렇게 거대한 실패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거대한 영화나 심오한 화두가 아닌 바로 인물이 살아있고 사건과 상황이 살아있는 생명력 있는 영화인 것이다.


코리아필름 정조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