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환 送還 (Repatriation)
 
2003, DV6mm, 다큐멘터리, 148분
12세 관람가


기획/제작 : 푸른영상
연출/편집 : 김동원
구 성 : 김동원, 류미례
촬 영 : 김태일, 정창영, 장영길..
음 악 : 이지은 l 미 술 : 이희용
공동배급 : 인디스토리, 아트플러스 ...more

2004년 5월 17일(금) 재개봉
2004년 3월 19일(금) 개봉
홈페이지 www.songhwan.com

2004년 한국영화 최초 선댄스영화제 수상

 

비전향장기수
조창손(72세/30년 복역)
김선명(76세/45년 복역)
김영식(72년 전향/88년 출감)
류한욱(90세/36년 복역)
김석형(87세/30년 복역)
신인영(72세/31년 복역)
안학섭(44년 복역)
함세환(69세/34년 복역)


= 시놉시스 =

- 간첩들과 함께 한 12년의 기록... [송환]


“다큐멘터리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을 믿었던 나도
어느새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생활의 유혹을 느끼던 무렵이었다...”

 

1992년 봄, 나(김동원)은 출소 후 갈 곳이 없던 비전향장기수 조창손, 김석형을 내가 살던 동네인 봉천동에 데려오는 일을 부탁받는다. 나는 그들이 북에서 내려온 간첩이라는 사실에 낯설음과 호기심을 갖고 첫 대면을 하게 된다.

한 동네에 살면서 난, 특히 정이 많은 조창손과 가까워지고 이들의 일상을 꾸준히 카메라에 담게 된다. 하지만, 내 아이들을 손자처럼 귀여워하는 모습에 정을 느끼는 한편 야유회에서 거침없이 ‘김일성 찬가’를 부르는 모습에선 여전한 거부감을 확인하기도 한다. 얼마 후 조창손은 고문에 못 이겨 먼저 전향한 동료 진태윤, 김영식을 만나게 되는데, 이들 전향자들에게는 떳떳치 못한 자괴감이 깊게 배어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난 이들의 송환 운동에 도움이 되고자 장기수들의 북쪽 가족을 촬영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입국 절차가 무산되고 되려 허가 없이 영화 제작을 했다는 이유로 체포되는데, 대신 이 사건을 계기로 장기수 할아버지들과 나의 친밀감은 두터워지게 된다.

1999년부터 본격적인 송환 운동이 시작되고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과 함께 송환 운동은 급물살을 탄다. 송환이 현실이 되자 남쪽이 고향인 장기수들, 옥중에서 전향을 하여 북으로 갈 요건이 안 되는 이들, 결혼을 발표하여 동료들의 비난을 받는 이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갈등 상황이 빚어진다. 송환을 앞두고 조창손은 30년 전 체포되었던 울산을 찾아가 죽은 동료의 넋을 달래고 그의 가족에게 전해 줄 흙 한 줌을 퍼 간다. 그리고, 비전향장기수 63명은 2000년 9월 2일 북으로 송환된다.

이제는 자료 화면들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그들.
나는 아직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그들을 만나러 갈 수 없고, 오랜 고문에 쇠하고 연세도 많은 그들 또한 더 이상 남측과 교류하지 못한 채 돌아가실지도 모른다.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감 독 - 김동원 Kim Dong-Won

"나는 이번 작업을 통해 장기수 선생들을 만나오면서 느껴왔던 그 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그 벽을 인정하고 직시하는 일은 진정한 통일로 가는 길목에서 피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통일은 단지 염원하거나 외치는 것만으론 이루어지지 않으며, 어느 날 갑자기 통일이 선언된다 해도 그 벽이 존재하는 한 통일은 여전히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이장호, 장선우, 하명중 등의 연출부 생활을 하며 영화일을 시작했다. 방송국 촬영 아르바이트를 하다 상계동 빈민촌 철거 현장의 모습에 충격을 받고 그들의 투쟁에 동참하면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의 삶을 선택했다. 상계동에서 주민들과 함께 한 3년의 기록을 담은 <상계동 올림픽>은 한국 다큐멘터리 역사에 있어 기념비적인 작품이자 실천적 다큐멘터리의 정수로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1991년 ‘푸른영상’을 설립하여 다큐멘터리를 통한 민중 운동을 지속하고 있으며, 독립영화협의회 의장, 한국민족예술총연합 영화위원장,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 다큐멘터리와 독립영화계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 잡고 있다.

[프로필]
1955년 2월 24일 서울 출생
1978년 2월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졸
1984년 2월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대학원 졸
1983∼1986년 <바보선언>, <서울 예수>, <태> 등에서 연출부로 참여
1987∼1990년 서강대학교 커뮤니케이션센터 상임연출
1990∼1992년 독립영화협의회 의장
1991∼2003년 푸른영상 설립 대표
1994∼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영화위원장
1998∼2003년 (사)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

[Filmography]
2001년 [한사람] 2003년 [송환]
1999년 [또 하나의 세상](행당동 사람들 2) 제작
1997년 [명성 그 6일의 기록]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 최우수독립영화상 운파상, 제28회 베를린영화제 뉴시네마 부문)
1995년 [하나가 되는 것은 더욱 커지는 일이다]
1993년 [미디어 숲 속의 사람들]
1991년 [하느님 보시니 참 좋았다]
1990년 [벼랑에 선 도시빈민]
1988년 [상계동 올림픽] (야마가타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특별초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