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가 있다. 그는 집과 밖을 들락날락하며 산다.
그는 집에서는 무척 세심해 보이지만, 밖에서는 벙어리나 장님처럼 행동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를 기다리던 여인이 떠나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아침,
돌연 그는 흐느끼기 시작한다.

변승현 감독의 <스토리 블라인드>는 일상적인 행동들을 끊임없이 반복되어 보여준다. 아침마다 젯밥을 올리고, 머리를 감고, 화분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사진을 찍으러 매일같이 돌아다니면서 여러 모습들을 엿본다. 변함없던 그의 일상에 화분이 떨어져 깨지는 듯 어느덧 분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영화속에 반복하여 들리던 "어제는 비가 내렸어. 그리고 나는 너를 기다렸어."라는 말이 "오늘도 비가 내린다. 이제 다시는 널 기다리지 않을거야."로 바뀌면서 시작된 분열은 결국 아침에 머리를 감던 사진작가를 흐느끼게 만든다. 지극히 추상화된 이미지 속에서 보여지는 <스토리 블라인드>는 스토리가 역사라는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역사에 눈감기'라는 암울한 이미지를 숨겨놓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