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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한대수 Documentary Hahn Dae-Soo


2001, DV cam., Color, 90분
12세 관람가


제 작 : DG LabI&Cosmos
감 독 : 장지욱, 이천우
프로듀서 : 홍지용
촬 영 : 장지욱
미 술 : 이천우
편 집 : 이천우
출 연 : 한대수
문 의 : 시네와이즈필름

2002년 10월 18일(금) 개봉
개봉관 : 하이퍼텍 나다

 

- 제6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상영(2001)


2000년 여름 부산, 단발머리의 중년 남자가 무심히 흘러가 버린 세월을 되뇌이기라도 하듯 해운대 바닷가를 거닐고 있다. 우리 나라 최초의 싱어송 라이터이자 모던 포크의 창시자였던 한대수... 어린 시절, 유학간 아버지의 실종으로 이 땅에 어머니를 남겨둔 채 조부모의 손에 이끌려 미국으로 떠나야만 했던 그가 어느새 53세의 백전노장이 되어 40년만에 그의 고향인 부산을 찾은 것이다.

그리 평범하지만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낸 탓이었을까? 그의 결혼 생활 또한 그러했다. 다른 사람들은 한대수의 독특한 음악 세계와 삶의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던 1974년 그의 첫 번째 부인인 김명신만이 그를 이해하고 감싸 안았다. 그리고 그해 첫 번째 앨범 '멀고 먼 길'을, 그 다음 해엔 두 번째 앨범 '고무신'을 제작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사람들의 여전한 냉대 속에 한대수와 김명신은 뉴욕으로 터를 옮긴다. 결국 그렇게 시작된 결혼 생활도 20여년 동안의 세월을 뒤로한 채 막을 내리고 말았다.

김명신과의 이혼은 한대수에게 있어 커다란 충격이었다. 홀로 사막을 걷고 있는 듯한 그의 외로움은 음악으로 승화되어 1989년부터 3년에 걸쳐 세 개의 앨범 제작을 이루어 내는데 그것이 바로 세 번째 앨범인 '무한대'와 네 번째 앨범 '기억 상실' 그리고 이우창과 함께 한 다섯 번째 앨범 '천사들의 담화'다. 그러는 사이 스물 두 살의 몽골계 러시아인 옥산나를 만나 재혼을 하기에 이른다.

뉴욕에서 그는 사진 작가로 활동을 하기도 하고 시집을 발간해 작가상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을 몰라 꾸준한 작곡 활동으로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날 일본에서 초청장이 하나 날아들었다. 일본의 롹스타인 '칼멘 마키'와 함께 공연을 하고 싶다는 초청이었다. 공연을 성공리에 마친 한대수는 그의 자서전과 함께 '1997년 후쿠오카 라이브' 앨범을 비롯해 일곱 번째 앨범인 '이성의 시대 반역의 시대'를 제작하기에 이른다.

그제서야 국내에서도 한대수라는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여덟 번째 엘범인 '영원한 고독'을 제작하고 여러 TV 프로그램의 초청을 받아, 2001년 한국 포크 30주년 기념 콘서트 '행복의 나라로'에 초청을 받아 성황리에 공연을 마친다. 하지만 십대 반짝 가수들이 판치는 요즘의 우리 나라 가요계에서 그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였을 리가 만무하다. 결국 새 음반 제작의 꿈은 실현되지 못하고 다시 멍든 마음만을 손에 든 채 그는 뉴욕으로 돌아가고 만다. 그러나 그러한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쓸쓸함보다는 또 다른 시작을 이야기하고 싶다. 'Life's a Mirage!'라고 외치는 그의 말처럼...


암울했던 70년대 ‘물좀 주소’라는 노래로 자유에 대한 갈증을 노래한 한대수는 서구적인 포크 음악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 사람이자, 한국 모던 포크 음악의 창시자로 평가받는 전설적인 가수다. 시대의 자유를 노래한 그는 정치적인 압력 때문에 고국을 떠날 수 밖에 없었고, 그 후 20여 년간 공식적인 음악생활을 중단했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2001년 5월, ‘행복의 나라로’ 공연을 위해 일시 귀국한 한대수의 여정을 담은 기록이다.

한대수의 음악은 7집 ‘이성의 시대, 반역의 시대’나 8집 ‘영원한 고독’과 같은 음반에서 알 수 있듯이 시대의 갈증과 자유, 이상에 대한 의지를 담고 있다. 그의 노래를 배경으로 하면서 한 인간의 인생 여정을 더듬고 있는 이 다큐멘터리는 그가 추구한 보헤미언적인 삶과 고독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보여 준다. 계획중이던 새로운 앨범 작업이 무산되지만, 한대수는 “삶이란 부서지기 쉬운 것이므로,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고 말한다. (자료협조 : 부산국제영화제 김성욱)


왜 한대수 인가?
1960,70년대 한국 대중음악사를 정리하면서 빠지지 않는 이름, 한대수.
신화가 결국 전설이 되어버린 인물 한대수는 밥딜런 풍의 서구형 포크를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하고 국내 모던 포크의 창시자로 70년대 대중음악을 대표해야 할 아티스트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역량과 결과물에 대해 과소평가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철학적 정서와 시대의 갈등과 자유와 이상을 대변하는 아무도 따라갈 수 없는 상징적 표현과 거부할 수 없는 아웃사이더의 자유로움. 한대수, 그는 암울한 시대에 자유를 노래하는 자유인이었다. 그 자유로움의 철학이 이제 4반세기를 뛰어넘어 다시 재조명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어떻게 한대수를 바라볼 것인가?
기존의 방송과 매체들이 한대수를 바라보던 시각은 1960,70년대 그의 노래가 가졌던 상징성, 저항성들에 국한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2000년 여름부터 2001년까지 53세의 그를 만나면서 그러한 과거의 물음들과 평가들에 연연할 이유가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지나간 시간과는 별개로 그때부터 지금까지 노래를 부르며 바로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한 인간, 한대수.
한대수라는 바람 같은 자연인이 쉰셋이라는 인생의 잔상 속에 숨겨둔 자유와 그 자신만의 일상과 세계를 다룸으로 다시 한번 그의 음악과 인생을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시대를 뛰어넘어 또 다시 일상에 갇힌 사람들에게 그의 자유로운 철학과 삶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신선한 자극을 전할 수 있길 바란다.

다큐멘터리와 디지털이 만나다.
근래들어 영화계에 있어서 디지털의 바람은 예사롭지 않다. 유명감독들의 영화 속에서 부분적으로 차용되는 경우외에도 <다찌마와 리>, <커밍아웃>, <극단적 하루>뿐 아니라 <나비> 등 다양한 디지털 방식의 영화들이 관객들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디지털 영화는 바로 영화제작이 좀 더 대중적으로 확산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으며, 또한 제작과 배급에 있어서 영화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디지털 영화 <다큐멘터리 한대수>는 단순한 대안 영화나 디지털 테크닉이 아닌 새로운 개념의 영화제작으로 디지털 매체의 특성에 가장 부합되는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또한 일반적인 보존으로서의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더 많은 관객들에게 재미와 관심을 충족시켜주며, 나아가 새로운 다큐멘터리의 장으로서 관객들과의 만남을 시작하려 한다.





 

감 독 - 장지욱 / 이천우

장지욱은 2001년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대학원 과정에서 촬영을 전공하고 있다. 실험영화 (1996), 다큐멘터리 (1999)를 연출했다.

이천우는 2001년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현재 디지랩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다. 단편영화 <아이>(1995), <종이비행기> (1999), <천국의 문>(2000)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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