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부학 수업이 시작되면서 선생님과 소녀들이 있는 과학실에, 실험용으로 선발된 군인들이 들어와 스스로 목숨을 끊고 학생들을 위한 해부용 시료가 된다.

실험을 준바하던 중 선생님이 자리를 비우게 되고 남은 학생들은 시료를 가지고 장난치다가 실수로 시료 하나를 손상시킨다.

소녀들은 자신들의 성적을 유지하려면 누군가 한 명이 대신 시료가 되어 실험을 끝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반에서 모두가 가장 싫어하는 한 사람을 뽑기 위한 투표를 실시하는데...

인간성 말살이 극한에 이르고 개인이 조직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시대를 배경으로 :
1. 우리 사회의 대부분 조직에 잔재하는 군사문화의 폭력성과
2. 고득점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학교 교육, 사제간 불신풍조
3. 흔히 보여지는 성폭력의 남녀 역할 뒤집어 보기

날 선 메스로 대한민국의 병폐를 해부하다!

평화로워 보이는 여학교 해부학 실습실에서 끔찍한 일이 발생했다. 세 명의 군인이 실험을 위해 학생들 앞에서 자살했고, 그나마 시체 한 구는 불에 타 형체를 잃어 버렸다. 학생들 사이에 혼란이 일고, 그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서 또 한 명의 목숨이 요구된다…

영화 <해부학 시간>은 한 여학교 실험실에서 벌어진 현실 불가능한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사회적 문제, 즉 무조건적 순응을 강요하는 군사주의 문화와 '왕따'로 대변되는 이기주의와 비인간주의를 날렵하게 해부한다.

어느 여학교의 해부학 실습시간. 학생들에게 실습의 전권을 위임한 교사가 자리를 뜨자 기다렸던 학생들은 해부대 위에 놓여있는 시체를 가지고 장난을 친다. 그러던 중 누군가의 실수로 그만 시체 한 구가 훼손된다. 학점을 받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대신 시료가 되어 수업을 예정대로 진행시켜야 한다. 학생들은 모두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시료가 되어야 한다며 투표를 실시한다. 이렇게 해서 선택된 학생은 71번. (학생들은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린다) 모두를 위한 희생을 강요 당하던 71번은 교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나 교사마저 ‘집단의 이익’이라는 명목 하에 71번에게 자발적 희생을 강요한다.

짧지만 섬뜩하도록 냉정한 이 에피소드에는 놀랍게도 많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학생들의 시료가 되기 위해 해부실에 들어온 세 명의 군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명령에 망설임 없이 자신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긴다. 아이들은 학점을 위해서! 누군가를 대신 시료로 삼아 실험을 계속해야 한다는 결론에 자연스럽게 도달한다. 그 ‘누군가’는 또한 당연하게 학생들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 소위 말하는 ‘왕따’로 결정된다. 이 개인은 또다시 ‘사회의 안녕’을 위해 마땅히 희생된다.

영화는 아무런 비판이나 저항 없이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군사주의 문화와 사회 전체에 팽배해 있는 이기주의를 유머러스하게 보여준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학생들이 즐겁게 춤추는 마지막 장면은 웃음을 자아내지만, 그 평화와 행복이 개인에게 강요된 희생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떠올린다면 마음 편히 웃을 수만은 없다. (2002년 4월 7일. 코리아필름 명예기자 조영주)

철저한 경쟁논리에 기반한 입시위주의 교육체계, 무조건적인 순응을 강요하는 군사주의 문화, '왕따'문화로 대변되는 이기심과 비인간주의. 어느 여학교의 한 수업, 즉 해부학 과목의 수업 시간에 벌어지는 살벌하고 끔찍한 해프닝을 통해서 <해부학시간>은 지금 우리가 앓고 있는 이러한 총체적 문제들을 되돌아보도록 한다.

현대식 건물에 개량 한복을 입은 학생과 낡은 스타일의 전화기를 등장시키는 등 고의적으로 정확한 시대를 인지하지 못하도록 시간성을 흐려놓음으로써 하나의 알레고리적 공간을 획득하는 <해부학시간>은 여고괴담의 상상력을 한계까지 급진적으로 밀어붙인 작품이다.

Q : <해부학 시간> 왜 굳이 군인이 해부의 대상인가?
A : 어떤 명령에 의해서 목숨을 버릴 수 있는 대표적인 존재가 군인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아직도 잔재하는 군사문화의 폭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Q : <해부학 시간> 어린 아이들의 연기가 돋보이던데 어떻게 연출을 하셨는지?
A : 6차례 16시간 동안 리허설을 준비했다.

Q : <해부학 시간> 등장인물들의 의상이 북한을 연상시키는데 어떤 사회주의 사상이 내포되어 있는 것인가?
A : 사상 같은 것은 없다. 영화에 가장 어울리고 시대를 초월한 의미를 두고 싶어서 개량한복이 적당하다고 판단해서 선택했다. 내 생각에는 참 예쁘다고 생각한다.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 감독과의 대화 중에서 필자가)

단편 <해부학시간>, 해외 영화제 잇단 초청! ...2001.9.28

한국단편영화 <해부학시간>(감독 정소연, 배급 미로비젼)이 프랑스 에뜨랑제 영화제(2001)에서 단편부문 대상을 수상한데 이어, 오는 10월에 열리는 스페인의 시체스 국제영화제에 김지운 감독의 디지털 영화 '커밍아웃'과 함께 공식 초청된 것을 비롯하여 많은 해외영화제 순례를 앞두고 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인 정소연 감독의 <해부학시간>(2000/16mm/12min/color)은 작년(2000년) 제1회 전주국제영화를 시작으로 북미 최대의 단편영화제 팜스프링스영화제, 밴쿠버 국제 영화제 등 인지도 높은 영화제에 소개되어 왔으며 2001년도에도 시드니 국제영화제, 후쿠오카 아시아 영화제 등 그 인기를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영화 <해부학시간>은 해부학 시간이 시작되면서 선생님과 소녀들이 있는 과학실에 실험용으로 선발된 군인들이 들어와 스스로 목숨을 끊고 학생들을 위한 해부용 시료가 된다는 설정의 다분히 엽기적인 발상에서 시작한 영화지만, 한복스타일의 분홍색 교복을 입고 볼을 발갛게 분장한 소녀들의 표현 방식이 재기발랄하고 유쾌한 보기 드문 단편이다.

국내에서는 제1회 전주 국제영화제 단편 부문 상영 이후 '독립영화 관객을 만나다' 등에서 소개되어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은 바 있고, 특히 '공포영화제'에서 상영되어 호러 매니아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으나, 심의가 엄격한 국내 방송에서는 방영이 거의 불가능해 국내에서의 상영기회가 해외보다 적은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앞으로 영화 <해부학 시간>은 10월 시체스국제영화제를 거쳐 11월에 열리는 산 세바스찬 호러 & 판타지 영화제(아르헨티나), 스톡홀름 국제영화제(스웨덴) 등등에 초청, 상영될 예정이다.

코리아필름 김철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