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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다.
신들의 이야기로부터 출발해서, 공주를 구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왕자 이야기를 거쳐, 드디어 테러리스트가
숨겨놓은 폭탄을 싣고 가는 버스에 올라탄 백인 허우대 영웅에 대한 이야기까지. 물론 그 사이엔 밤중에 몰래
대나무숲에 기어들어가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고 속삭이던 이발사에 욕망도 끼어있을 것이다.
욕망에 대해서 말하건데,
나는 언제나 "보물섬"에 나오는 악당들에 환호했다. 배를 모아 대대적으로 보물을 찾으러 가는 귀족들. 변호사보다
식량을 운반하고 뱃일을 하는 척하면서 삼삼오오 모인 실버 일당들이 나에겐 주인공처럼 느껴진다.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하건데,
김정희의 "세한도"에서 느끼는 양반들의 고결한 미학보다 일지매가 던진 붉은 매화가 더 아름답다. 다산 정약용이
녹차를 마시며 느꼈던 안빈낙도의 즐거움보다,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물을 팔아먹기 전날 지었을 미소가 그립다.
사기는 범죄다. 그것도 꽤나 질 나쁜 범죄다.
왜냐하면 인간의 믿음을 배반하는 것이기 때문이고, 그렇기 때문에 사기를 당한 사람들은 상처를 받는다. 그러므로
나 역시 사기를 미워한다. 당연히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비열한이고 불한당들이다. 그렇지만 불한당들의 세계사라는
것도 있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렇다. 60년대에 런던에서 육백만불이 실린 우편행랑 열차가 털렸다. 그 중에 주모자는
30년 동안 브라질에서 목수 일을 하면서 살다가 작년에 고국으로 돌아가 자수했다. 사람들은 모두 그 주모자를
보고 싶어했다.
가끔씩. 아주 가끔씩 범죄자는 세인의 관심을 끌거나 추종자를 만든다. 절대적인 선과 악이 불분명한 현대에서
범죄자는 일반인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내가 짐작컨대 범죄는 부풀려서 이야기되고 꾸며진 채로 이해된다.
여기에 불한당들의 세계사라는 시간과 공간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보다. 새벽에
나간 농부가 잡초를 뽑고 샛거리로 막걸리를 마시는 동안 마누라에게 잡초 이야기를 해주듯이.
<범죄의 재구성>을 재구성하는데 2년이 걸렸다.
그 동안 만났던 사기꾼들, 포커꾼들, 건달들은 이 영화안에서 이야기로서 존재할 것이다. 혹자는 그들을
미워할 것이고 혹자는 그들을 즐길 것이고
영민한 사람들은 이 영화에 나온 사기를 알기 때문에 당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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