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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성애 영화, 변방에서 중심으로

영화는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며, 시대의 사고를 반영한다.
이에 비추어 보건대 이제껏 세상은 이성애자들의 것이었다. 영화의 중심에는 항상 이성애자들만 있었고, 이러한 상황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마찬가지였다

서양에서도 영화가 동성애자들을 포용하기 시작한 건 별로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가족중심적 가부장제도가 모든 사회의 가치관을 관통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동성애는 일종의 '죄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동성애가, 그리고 동성애자가 영화의 중심에 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뿐더러, 더욱이 충무로 주류 영화의 중심에 선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현실 안에서 한국영화는 동성애를 음란비디오의 선정적 소재로 흡수하거나 자본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비주류영화에서만 다루어 왔다.

그러나 이제 그 모든 금기를 깨는 영화가 나왔다.
<로드무비>는 동성애와 동성애자를 이야기의 중심에 놓는다. 주변에 머무르던 동성애라는 소재는 충무로 영화 안으로 흡수되고, 주변인이었던 그들은 주인공이 된다.
이제 세상은 이성애자만의 것은 아니다.

2. 동성 + 愛+ 이성, 이것은 러브스토리이다.

사람들은 동성애라는 단어를 들을 때, 철저하게 섹스만을 떠올린다.
그곳에는 섹스만 있을 뿐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감히 동성애자에게 '변태'라는 잔인한 단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지도 모른다.
동성애에 대한 완벽한 몰이해가 빚은 이 희극적 편견은 영화 속에서도 그들을 철저하게 왜곡시켰다. 성적인 코드로만 이용되어 일반인들의 편견을 공고히 했고 , 함부로 다루어져도 될 희화의 대상으로 묘사되곤 했다. 현실에서건, 영화에서건 '변태'인 그들에게 사랑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나 <로드무비>의 인물들은 또 한번 금기를 깨고 만다. 그들은 감히 사랑을 한다,
남자를 사랑한 남자, 그 특별한 남자를 사랑한 여자, 그리고 남자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는 남자. 이 세 사람이 그려가는 사랑의 풍경은 지금껏 우리가 가진 편견을 거스르는 낯선 풍경이다.

믿을 수 없겠지만, 동성애 영화 <로드무비>는 '러브스토리' 이다.

3. 세 남녀의 三色 러브스토리

첫번째 스토리 -남자 VS 남자 …………………………………'사랑은 불가항력이다.'

그는 이제 사랑이 지겹다, 아니 무섭다.
그는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
용납될 수 없을 뿐더러 사람들은 그를 경멸한다.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까지도….
벗어날 수 있다면 벗어나고 싶었지만,
사랑은 순식간에 그의 덜미를 잡고,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사랑은 불가항력이므로…

두번째 스토리- 남자 VS 여자…………………………………'금지된 사랑은 없다.'

'변태라서 징그러워?
그녀는 조금 특별한 남자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녀에게 그는 그저 사랑하는 사람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제서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녀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 슬플 뿐.
하지만 그녀는 다짐한다.
'반드시 나를, 좋아하게 만들꺼야…!'

세번째 스토리- 남자VS 남자 VS 여자 …………………….'사랑은 누구에게나 온다.'

그는 남자다.
그는 여자가 좋다.
그는 호모들은 변태라고 생각한다.
변태인 그들은 자신의 생활권 안에는 들어올 수 없는,
그와는 거리가 먼 부류의 비정상적 인간형이라고, 그는 항상 생각해왔다.
그러던 어느날, 누군가 그에게 사랑을 고백해왔다.
그런데 그는 남자다.
말하자면 호모다.
그는 순간 당황스럽다.
당신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하겠는가…?

<로드무비>는 이성애자를 사랑하는 동성애자, 동성애자를 사랑하는 이성애자의 엇갈린 사랑을 통해서, 사랑은 우리모두에게 똑같은 무게임을 말한다. 동성애라는 소재를 통해 오히려 사랑의 아픔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사랑할 수 있다면, 사랑해야 한다. 로맨틱한 사랑을 꿈꿀 자유가 없다 해도, 평범한 해피엔딩을 꿈꿀 희망이 없다 해도,심지어 경멸을 당할 지라도 사랑할 수 있다면, 사랑해야 한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므로…

4. '로드무비', <로드무비>

<로드무비>는 '로드무비'이다.
장르의 이름을 영화의 제목으로 선택했을 만큼 영화<로드무비>는 길이라는 이미지에 강한 애착을 가진다. 언제든 오분 안에 인생을 정리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는 김인식 감독. 프랑스 유학을 비롯해 그 스스로 정착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그의 말에는 남다른 공명이 있다. 배우와 상황의 감정을 전경화 시키는 데에 특별한 안목을 가진 그는, 배우들의 감정상태를 배우의 얼굴을 보여주기 보다는 그들의 시야에 걸리는 길의 풍경 안에 하나하나 녹여낸다.

이른바 '감성의 로드무비'. 우리는 우리에게 슬픔과 기쁨과 절망의 얼굴을 하고 말을 걸어오는 길의 풍경을 영화<로드무비>에서 만날 수가 있다.

5. 색채를 가진 공간- 프레임 편집 기법

<로드무비>에서 공간은 또 한명의 배우이다. 인물들과 함께 감정의 변화를 겪는 제 3의 배우. 앞에서도 언급한 , 이른바 '감성의 로드무비'.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감정의 흐름을 따라, 공간은 색채를 바꾼다. 사랑이 밀려올 땐 사랑의 색채로, 자유로 충만할 땐 자유의 색채로, 절망 속에 빠져 있을 때는 절망의 색채로, 공간은 관객에게 말을 걸어온다.

이를 위해 <로드무비>의 제작팀은 실험적인 후반작업의 과정을 진행했다. 이것이 바로 프레임 편집기법. 한 프레임, 한 프레임, 색채를 따로 만지면서 한 프레임 안에서도 부분부분 색채를 조정해가는 프레임 편집기법은 수공예품을 만드는 것만큼 손이 많이 가는 쉽지 않은 공정이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탄생한 감정의 색채를 가진 <로드무비>의 공간은 배우의 감정과 공간의 감정이 맞닿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한 새로운 대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