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한 거짓말쟁이들의 뻔뻔한 자화상

- 냉소적 시선으로 현실을 관통하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솔직히 말하겠다. 홍상수의 영화는 잘 모르겠다.
이 감독에 대한 관객과 비평의 여론도 각양각색이다. 칸 영화제에 번번이 진출하는 것으로 봐서는 이미 독보적인 영화세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고, 그럼에도 크게 흥행에 성공한 작품은 없고, 항상 비평의 관심이 되었지만 딱 부러지는 결론은 없는 작품으로 세간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 정도가 객관적인 내용이 될 것이다.

홍상수 영화는 차갑다. 화면에, 줄거리에, 결말에, 냉기가 흐른다. 냉소적인 시선으로 사람들의 가식과 허울을 관통하면서 발가벗긴 단순하고 초라한 욕망을 보여준다.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이 즐겁고 유쾌한 기분으로 극장 문을 나서기 힘든 이유가 여기 있다.

사랑이란 사실 이런 거야라는 식으로 다가오는 이번 영화는 그 원색적인 표현에 거부감이 들지만 누구도 아니야라고 부인하기 힘들다는 묘한 구석이 있다. 어찌 보면 사실은 그런 거다. 유쾌하지 않는 내용들이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사실 인생에서 행복했던 순간들이 얼마나 되나? 그 얼마 되지 않는 순간들도 사실은 다 환상이거나 기억의 조작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한 여자를 거쳐간 두 남자가 동시에 옛날 사랑했던 그녀를 찾아서 떠난다'는 소재는 모든 남자의 환상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 환상은 '홍상수식'의 시선으로 조롱당하고 현실을 바라보라는 충고를 듣게 된다.

욕망 앞에서는 모두가 솔직한 거짓말쟁이들

7년 만에 유학에서 돌아온 현준은 대학 강사가 되어 있는 후배 문호를 만난다. 두 사람은 낮술을 먹던 중에 헤어졌던 선화의 소식을 듣게 되고 두 사람은 부천에 있다는 선화를 찾아가기로 한다. 두 사람은 선화에 대해서 사랑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 서로 만난 세 사람은 술을 마시면서 욕망을 감추며 퍼즐같은 거짓말 게임을 시작한다.

솔직한 거짓말쟁이는 모순 명제가 아닌가?

솔직한 거짓말쟁이는 가능하지 않은 명제다. 그러나 현실에서, 특히 남녀의 연애와 사랑에 있어서는 이런 경우가 많다. 솔직한 성격이라는 문호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만 솔직하고 그나마 욕망을 위해서는 능청스런 거짓말도 서슴치 않는다. 애인을 위로한답시고 자신의 욕망에 집착하고는 떠나고 다시 찾아와서 욕망에 눈뜨는 헌준도 역시 욕망 앞에서는 뻔뻔하다. 이리저리 남자들의 욕망의 대상이 되는 선화도 진실한 사랑을 하고 싶겠지만 현실에는 욕망만이 기다리고 있다.

홍상수 영화에는 행복한 사람이 없다. 결말이 황당하게 느껴지면서도 공감하는 데에는 무의식 중에 스스로 원하지 않아도 욕망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들은 조금씩 다 나쁘다. 진실한 척하지만 다 거짓말을 한다. 남편 몰래 담배를 피우는 아내처럼, 조금씩 속이고, 조금씩 속는다. 나는 솔직하다는 말이 정확히 따져보면 거짓말이라는 사실처럼, 거짓말을 하고 있는 솔직함이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사랑은 사실 섹스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남녀가 만나서 원하는 것이 솔직히 뭐냐? 라는 것의 답을 홍상수는 여과 없이 보여준다. 어떤 때는 뻔뻔하게, 어떤 때는 치사하게,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고, 계산기를 두드리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힘은 욕망이고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그 순간까지 자본주의에서 형성된 욕망의 본능 앞에서 이리저리 휘말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영혼에 순수하고 순결한 사랑이 깃들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꿈이라는 것을 노련한 솜씨로, 냉정하게, 가끔 조롱도 섞어서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유쾌하지 않지만, 정말 세상이 다 저럴까? 싶지만 눈에 보이는 현실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홍상수 영화가 기분 나쁜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노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기분이 나쁜 것이다. 기대하지 않는 현실을 알려주는 사람을 좋아하기는 힘들다. 못 생겼는데 못 생겼다고 말하고, 머리 나쁜데 머리 나쁘다고 말하는데 좋아할 사람 누가 있겠나?
홍상수 영화를 가볍게 보는 사람들은 농담의 원칙에 충실한 사람들이다. 사실 농담의 가치는 잔인한 현실에서 더욱 더 가치를 발하는 것이 아닌가. 가볍게 보라.

홍상수의 영화에 대한 이미지는 각양각색이지만 특이하게도 그의 영화는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자꾸 되씹어보는 묘한 마력이 있다. 정신 없이 재미있게 본 영화도 금방 잊어버리는 세상에 그럭저럭 본 영화 속의 장면과 내용이 오래 오래 기억되는 것은 분명 홍상수의 힘이다.

그가 분명 뛰어난 영화 감독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겠다. 음악과 화면에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고, 별것도 아닌 이야기를 이렇게 오랫동안 기억나게 하는 것은 분명 힘이다.

그의 힘을 느끼고 싶거나 이 글이 좀처럼 이해가 안 되는 분들은 영화를 보시기 바란다. 별로 유쾌하지 않지만 조각난 기억의 파편들이 연주하는 전주곡을 오랫동안 듣고 싶다면 말이다.

가깝지만 낯선 현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오랜만에 만난 대학 선후배 문호(유지태 분)와 헌준(김태우 분)이 낮술에 취해 둘 사이의 옛 연인이었던 선화(성현아 분)를 추억하며 7년 만에 찾아 나선 두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영화는, 우연히 찾아간 첫사랑 '선화'를 두고 벌이는 두 남자의 묘한 신경전과 심리가 흡사 일상의 모습처럼 솔직하게 펼쳐진다. 한 여자를 두고 두 남자의 각기 다른 추억들이 밝혀지면서 영화는 극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다시 재회한 그들의 미래가 무엇일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두 남자의 숨겨진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을 제외하곤 감독은 영화적인 장치와 일반적인 영화의 내러티브와 틀을 깨고 낯설게 하여 현실에 가장 근접한 모습을 보여준다. 일상생활의 단면들을 자연스럽게 포착해내는 홍상수 감독의 특유의 색깔은 여전히 느껴지며 전작과 달리 끝맺지 않은 엔딩은 관객들에게 또 다른 낯선 느낌과 상상을 자극한다.

칸 영화제 경쟁부문 진출과 함께 프랑스 내 높은 관심으로 수상 여부까지도 조심스레 점쳐지고 있는 홍상수 감독의 5번째 작품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CJ엔터테인먼트의 배급을 통해 오는 5월 5일 개봉한다. 또한, 향후 프랑스 유명 배급사이자 이 영화의 공동투자사인 MK2를 통해 프랑스 내 극장 뿐 아니라 전 유럽의 개봉을 계획하고 있다.

코리아필름 김철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