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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혼이 깃든 분홍신, 그 속의 공포와 탐욕

영화 <분홍신>은 남편의 외도로 결별한 선재(김혜수 분)가 어느 날 우연히 지하철 연결통로에서 주운 분홍신에 집착하면서 악몽과 환상에 시달리게 되고 이후 딸 태수(박연아 분)에게까지 원혼의 기운이 엄습하자 인철과 함께 분홍신의 실체를 파헤친다는 내용의 공포물로, ‘분홍신을 신고 끝없이 춤추다가 결국 발목을 자른 소녀의 이야기’인 안델센의 고전 동화에 ‘원혼에 의해 끊임없이 전염되는 공포’라는 한국적 소재를 결합시켰다.

남편의 외도로 인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선재의 집착과 욕망을 원혼의 저주가 깃든 '분홍신'이라는 사물을 통해 환상과 공포의 모습으로 끄집어낸다. 지하철, 집이라는 일상적인 공간을 갑자기 자신을 위협하는 공간으로, 가장 친밀한 사이였던 모녀의 관계를 적대적인 관계로 탈바꿈함으로써 공포감을 극대화한다. 또, 공포의 극단으로 몰리는 김혜수의 다중인격적 연기도 뛰어나 공포감을 배가시킨다. 하지만 자연스럽지 못한 상황설정과 허술한 이야기의 이음새는 영화의 집중과 긴장감을 떨어뜨리고 만다. 특히 과거의 분홍신에 얽힌 치정극이 선재의 악몽과 환상을 통해 드러나는 과정에서는 이미 뻔히 들여다보임에도 불구하고 길게 늘어뜨리고 있어 지루함을 느끼게한다.

<와니와 준하><질투는 나의 힘> 등을 만든 청년필름이 제작한 <분홍신>는 쇼박스의 배급을 통해 오는 6월 30일 개봉한다. 6월 27일

2005.6.27 / 코리아필름 김철연 기자

새로운 공포의 소재 하지만 식상한 영화

인간의 탐욕이 부른 저주 ‘분홍신’

과거의 사건이 현재에 같은 방식으로 벌어지는 ‘분홍신’은 빼앗은 자의 탐욕과 뺏긴 자의 복수에 관한 이야기다. 분홍신을 본 사람은 자신의 욕망에 빠져든다. 분홍신을 갖고 싶다는. 비록 남의 물건이라도 빼앗아 갖고 싶은 일차원적 욕망이 분홍신에는 존재한다. 분홍신을 발견하거나 주운 사람은 멀쩡해도 빼앗은 자는 목숨을 잃는다. 자신의 욕망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죽음으로 이끄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에 있어 상징적이고 철학적인 이해보다 관객이 우선시 하는 것은 공포영화로서 색다른 공포를 선사하는 공포영화가 주는 재미다. 그 다음, 이야기의 상징성이나 철학적인 면모로 풀어볼 수 있다면 영화는 보다 예술에 가까운 모습을 갖게 된다.

공포로 승화되지 못한 ‘구두’라는 소재

지하철에서 분홍신을 주워오게 된 주인공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분홍신의 스토리는 구두라는 소재를 빼고 나면 흔한 치정 드라마의 뻔한 설정들이 이어진다. 구두가 주는 공포. 하지만 구두가 두려움의 존재로 부각하기에는 더구나 공포의 소재로 사용되기에는 역부족 같다. 죽을 때까지 춤을 춰야만 했던 동화속의 공포가 더 잔혹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영화의 참신함이 살아나기에 어려운 소재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익숙한 공포는 관객에게 이미 공포가 아니다. 더구나 이미 보아왔던 지하철, 엘리베이터 등 공포를 조성하는 공간 역시 낯설지 않다. 낯설지 않다는 것은 결국 그 어떤 공포도 공포로 작용되기에는 부족하다는 의미다.

반전만으로 공포를 완성할 수 있을까

섬세하게 표현되어야 하는 공포임에도 심리적 공포를 잘 살리지 못했다. 스토리의 개연성이 거칠다. 그 거침으로 인해 전체적인 스토리를 이해할 수는 있어도 의문은 남는다. 관객의 심리는 답보한 채 이야기는 껑충껑충 뛴다.

심리적 공포는 점층적이고 치밀해야 한다. 결국 스토리의 구조와 진행방법이다. 영화의 반전만으로 공포를 완성할 수는 없다. 반전은 점층적 공포의 백미임은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로 공포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작가와 감독이 미처 준비하지 못한 혹은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영화를 보고 나면 떠오른다. 공포를 증폭시켜감에 있어 과거의 사건이 공포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지 못할 바에야 프롤로그쯤으로 과거의 사건을 풀어도 좋았을 듯싶다.

아까운 배우의 연기

주인공 역을 맡은 김혜수의 연기는 칭찬받을 만하다. 그녀의 강도 높은 연기만큼 시나리오의 강도 역시 밑받침 되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영화다. 혹자는 말할지도 모른다. 배우의 연기가 너무 오버라고. 하지만 배우의 열연만큼 좋은 시나리오는 아니었다는 게 필자의 생각. 좋은 시나리오는 배우의 열연으로 더욱 살아나고 나쁜 시나리오는 좋은 배우를 오버배우로 만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