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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분홍 리본이 있다. 거기에는 "기대하지 못했던 곳에서 기회를 만나 갑자기 모든 일이 가능해질 것입니다"라는, 마치 행운을 암시하는 듯한 문구가 적혀 있다. 부적 같기도 한 이 징표는 어느 순간 공포의 대상으로 돌변한다. 주인을 알 수 없는 물건에 어떤 사연이 담겨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소원을 이루듯,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려면 뭔가 거대한 대가를 치러야만 할 것 같다.

영화 <분홍신>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했다. 제작사 청년필름의 대표가 어느 날 길에서 주운 행운의 문구가 적힌 리본. 그 리본을 줍고 마음이 설레던 그와는 반대로, 그 얘기를 듣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히려 '무섭다'는 반응을 보였다. 누구에 의해 버려져 어떤 사연이 담겼는지도 모를 물건을 함부로 줍는다는 것은, 일종의 금기와도 같은 것이다.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물건을 줍게 되는 욕망에 대해 생각하던 그는, '분홍신을 신고 싶은 욕망 때문에 스스로 발목을 자르게 되는 소녀의 끔직하고 슬픈 이야기'를 담은 안델센 동화 '분홍신'을 떠올렸고, 아름다운 동화 뒤에 숨겨진 섬뜩한 이야기에서 공포를 발견했다.

안델센의 동화 '분홍신'이 2005년 가장 무섭고 섬뜩한 공포영화로 재탄생 된다. 잔혹동화를 표방한 영화 <분홍신>이 '발목이 잘린 소녀의 이야기'에 원혼드라마를 결합, 안델센의 동화를 재해석한 것이다. 타인의 욕망에 의해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죽어야 했던 소녀는, 분홍신에 담긴 원혼이 되어 분홍신을 탐내는 자들에게 발목이 잘리는 저주를 내린다. 한을 품은 원혼, 원혼을 담은 물건, 그 물건을 통해 전염되는 저주. 이렇게 서구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동화는 한국적 원혼드라마로 탈바꿈 되었다.

'욕망을 자극하는 매혹의 분홍신, 그리고 그 분홍신이 가져올 저주'를 담은 영화 <분홍신>은, 아름다운 공포를 표방한다. 공포영화를 무섭게 만드는 것은 기본이지만, 아름답고 슬픈 정서까지 담아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여성의 욕망'을 테마로 한 이상, <분홍신>의 공포는 아름다운 공포여야 했다. 이를 위해 촬영, 미술, 음악, 여기에 원혼드라마를 형상화 한 춤까지, 제작팀은 최고의 퀄리티를 낼 수 있는 스탭들을 모았다. 물론, 아름다운 공포를 완성시킨 것은 <와니와 준하>에서 극도의 섬세한 감성을 보여주었던 김용균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