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녀
 


1960, 서스펜스 스릴러, 111분
15세 관라가

제 공 : 한국영상자료원
제 작 : 미상 l 프로듀서 : 미상
감 독 : 故 김기영
촬 영 : 미상 l 조 명 : 미상
미 술 : 미상 l 편 집 : 미상
음 악 : 미상 l 동시녹음 : 미상
배 급 : 미로비젼 ...more

2010년 6월 3일(목) 개봉
홈페이지 미정

 

출 연
동식 :: 김진규
부인 :: 주증녀
하녀 :: 이은심


= About Movie =


탄생 50주년 <하녀>는 대한민국 영화계의 화두가 되다!
 

1960년 개봉 당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그 해 22만 관객 동원으로 최고 흥행 작이 된 <하녀>는 故 김기영 감독 작품들의 모태와도 같은 작품이다. 시골에서 상 경한 여성노동자, 중산층 대열에 합류하고픈 가장 등 근대화가 진행 중인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는 캐릭터들, 복층 구조의 현대식 가옥 내부에서 벌어지는 밀실 공포 라는 독특한 공간적 설정, 보는 이의 신경을 자극하는 극적 서스펜스 구조 등은 영 화를 차별화된, 보다 세련된 작품으로 올려놓는 데에 일조했다. 이후 <화녀>, <화녀 82>, <충녀>, <육식동물> 등 리메이크를 거듭하면서도 1960년 <하녀>에서 보여준 시대를 뛰어넘는 작가적인 성찰과 표현은 진화와 함께 맥을 이어갔다.

1990년대 말부터 故 김기영 감독의 영화들은 ‘재발견’이라 일컬어지며 세계 영화계 를 놀래키기 시작했다. 특히 그 중에서도 <하녀>는 그의 대표작답게 프랑스 최고 권위지 ‘카이에 뒤 시네마’의 편집장 장 미셸 프로동, <분노의 주먹>, <디파티드> 등을 만든 거장 마틴 스콜세지 감독 등의 찬사를 받으며 매니아의 영화에서 세계 영화팬들의 영화로 격상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2010년 현재, 대한민국의 영화계는 다시 한번 50년의 시간을 지나오며 거 대한 걸작의 표본이 된 <하녀>의 예술성과 존재감에 압도되고 있다. 임상수 감독이 리메이크를 결심하고 전도연이라는 최고의 배우가 주연을 맡은 2010년 리메이크 < 하녀>가 등장한 것처럼 동시대 국내외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 배우 그리고 관객 조차 50년 전 이 기이한 영화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마틴 스콜세지가 이끄는 세계영화재단(WCF)의 첫 번째 디지털 복원 프로젝트 <하녀>,
깨끗한 화면으로 완벽하게 되살아나다!
 

해외의 고전영화들이 일찌감치 보존 가치를 인정받으며 안정적으로 보관되어 오는 것에 비해 국내 영화계는 뒤늦게 고전영화의 보존과 복원을 화두로 삼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미국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자신이 운영하는 세계영화재단(WCF, World Cinema Foundation)을 통해 김기영 감독의 1960년작 <하녀>를 첫 번째 디 지털 프로젝트로 선정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디지털 복원 지원사업이 제3세계 영화 에만 국한된다는 세계영화재단의 기본방침과 다른 것으로, 당시 스콜세지는 ‘<하녀 >에 대한 개인적인 애정으로 이 영화의 지원을 결정한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당시 <하녀>의 필름 상태는 불안정했다. 두 개의 서로 다른 프린트를 합쳐놓은 것 이었기 때문이다. 기본이 된 오리지널 네거티브 필름은 1982년 5권과 8권, 두 개 의 릴이 사라진 상태로 발견되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1990년 영어자막이 들어간 또 다른 프린트를 찾아내 소실된 두 릴을 채워 일단 하나의 <하녀> 프린트로 완성 됐다. 하지만 영문자막은 손으로 휘갈겨 쓴 것이었고, 어떤 장면에서는 자막이 화면 의 1/3 이상을 차지해 몰입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먼지와 티끌, 스크래치를 제거하 는 것 외에도 자막제거작업은 유례가 없었기 때문에 힘든 작업이었다. 그럼에도 한 국영상자료원은 자막복원솔루션 ‘MJW1.0’을 개발, <하녀>의 자막을 말끔히 제거하 고 자욱이 남거나 윤곽선이 깨지는 부작용까지도 없앨 수 있었다. 이처럼 정상적인 상영이 불가능했던 <하녀>는 그 가치를 알아본 스콜세지 감독의 지원과 한국영상 자료원의 협조로 깨끗하고 안정적인 화면으로 관객들과 만나게 되었다.


서스펜스 넘치는 공간, 도발적인 캐릭터, 사회풍자적 시선
모든 것은 김기영 감독의 천재성으로 완성된다!
 

“<하녀>시리즈에 시골 출신의 젊은 여자들이 나오는 건 60, 70년대 당시 한국에서 아주 흔한 모습이었기 때문이거든. 근대화 정책으로 여자들이 농촌을 버리고 도시 로 와서 버스 안내양이나 하녀로 일했지. 당시에는 곧잘 가정부가 있는 중산층 집 안에서 치정사건도 일어나곤 했기 때문에 그들이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어.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나는 주로 중산층 가정을 소재로 했기 때문에 만든 거야. 명보극장 사장에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했고.”
- 故 김기영 감독

근대화를 시작한 1960년의 한국에서 여공, 하녀, 맞벌이 주부, 생계형 예술가로 대 표된 <하녀>의 영화 속 캐릭터들은 새로 지어진 2층집이라는 공간 속에서 충돌하 고 공생하게 된다. 김기영 감독은 이 한정된 공간 속에서 결코 어우러질 수 없는 반목을 통해 이들의 도발과 파격, 갈등을 서스펜스라는 영화적 장르로 표현하며 근 대화 시기의 과도기적 성향, 즉 중산층으로의 열망, 여성의 신분상승 욕망, 좌절 등 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영화를 가득 채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미장센은 전적으로 이 천재 감독 의 예술적 취향에서 비롯된 것이다. 의학도였지만 어려서부터 미술에 뛰어난 재능 을 보였던 그는 ‘세상의 축소판’이란 생각으로 영화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2층 집 세트를 만들었고, 직접 가구와 소품까지 제작했다. 뿐만 아니라 영화 속 조명에 도 관심을 기울여 현재까지도 두고두고 회자될 기괴함을 창조해냈는데, 당시의 조 명기법에 대해 결코 입을 여는 경우는 없었다. 창조과정에 대한 과묵함, 그리고 시 대를 앞선 세련된 연출력은 그 신화성을 더욱 부채질하는 요소가 되어 이제 마틴 스콜세지, 박찬욱, 봉준호, 임상수 등 현존하는 국내외 최고 감독들과 평론가들은 그를 천재감독으로 부르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 원작 <하녀>의 재개봉은 그런 故 김기영 감독의 거대한 재능을 일반 관객들이 확인하고 되새기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김진규, 주증녀, 이은심, 엄앵란, 안성기..
파격적인 연기에 도전한 당대 최고배우들을 만나라!
  <하녀> 속 캐릭터들은 도덕성보다 개인의 욕망에 초점이 맞춰진, 당시로선 파격적 인 성향의 인물들이 주를 이뤘다. 이에 투입된 것이 최고의 연기파 배우로 손꼽히 던 김진규, 주증녀, 그리고 신예 이은심이다. 김진규는 한국영화사에 손꼽히는 걸작 <오발탄>과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등에 출연한 당대 최고배우로, <하녀>에서는 하룻밤 외도로 삶을 송두리째 저당 잡히는 남자의 억울함, 그리고 자신의 가정을 중산층으로 격상시키려는 집요한 욕망까지 복합적으로 담아내는 훌륭한 연기를 선 보인다. 영화의 핵심인 ‘하녀’ 역의 이은심은 악녀의 잔인한 본성과 욕망을 있는 그 대로 담아내는 파격적인 연기로 <하녀> 이후 이렇다 할 작품을 내놓지 못했을 정 도. 이 밖에도 400여 편 이상의 작품에 출연한 한국 대표 여배우 중 한 사람인 주 증녀가 ‘동식 부인’ 역으로 등장해 한국고전여인상의 표본을 보여주며, 신성일과 세 기의 결혼식을 올려 이목을 집중시킨 인기 여배우 엄앵란도 출연해 맹랑한 젊음을 연기한다. 특히 지금은 국민배우로 존경 받는 안성기의 8살 아역배우시절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하녀>가 주는 즐거움 중 하나다.

<하녀>, 아버지 그리고 감독 김기영을 추억하며... 故 김기영 감독의 아들 김동원 선생 글
  저희 부친이신 김기영 감독의 대표작인 <하녀>가 제작 50주년을 기념하여 디지털 복원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선보이게 되었다.
이 작품이 소개된 1960년은 4.19 혁명이 일어난 해로 사회적으로 상당히 혼란스러운 해였 고 내가 초등학교 2 학년 남산 밑 필동에서 어렵게 셋방살이를 하던 때로, 영화를 직접 제 작하기란 굉장히 어려운 여건이었을 것이다.

<하녀>는 당시 조선일보 사회면 기사에 실렸던 금천 가족 살해 사건을 모티브로 직접 시나 리오를 집필해서 완성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숨막히는 서스펜스와 그로테 스크한 분위기가 연속적으로 이루어지지만 가정의 소중함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순간적인 실수로 파멸의 위기를 맞는 가정을 그리지만, 가정을 지키려는 주부와 하 녀의 사투, 처절한 죽음으로 자신의 잘못을 속죄하려는 가장의 죽음은 그만큼 평소 가정을 신성시 하시던 아버님의 가치관을 표현한 것이다. 또한 남성의 생리적 욕구에 대한 여자의 순결과 모성본능의 위대한 힘을 전달하시려 한 것 같다.

부친의 모든 작품이 그랬듯이 작품 하나를 완성 할 때까지의 과정은 그야말로 산모가 오랜 진통 끝에 출산을 하는 것과 같았다. 제작, 연출 및 시나리오 집필과정부터 촬영, 헌팅, 소 품, 세트 디자인, 포스터, 광고 디자인 및 편집까지 전 과정을 혼신의 힘을 다하여 남들보다 몇 배 많은 시간과 노력을 거쳐 당신만의 영화를 완성 하실 수 있었다. 특히 시나리오를 쓰 실 때는 집 근처 여인숙에서 몇 달 동안 숙식을 하며 작업을 하는데 그 고뇌의 모습이 늘 가족을 안타깝게 하곤 하였다. 극장에서 첫 개봉이 이루어졌을 때, 관객의 반응을 보시고 초조해 하시며 흥행이 안되었을 자괴 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당시 어린 마음에 본 업이던 의사를 안 하시고 왜 영화를 하시면서 고생을 하시나 생각하였지만, 후일에 이르러 부친을 이해하게 되니 그 뜻을 더욱 깊이 헤아릴 수 있게 된 것 같다.

부친의 영화에 대한 열정과 집념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평생을 영화와 가족 외에는 어떠한 시간도 할애하지 않으셨다. ‘나는 영화를 사랑한다, 나는 내가 좋아 영화를 하므로 평생 후 회도, 여한도 없다’고 입버릇 저럼 말씀하시고 돌아가시는 그날까지도 새로운 영화를 준비 하시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이 가장 사랑하는 모친과 함께 생을 마감하셨다.

이 작품의 기념적인 재상영에 맞춰 당시 주인공이셨던 이은심씨가 이 소식을 듣고 멀리 해 외에서 연락을 주시고 격려해주신 것에 감사 드리며, 이 작품을 디지털 복원하여 새롭게 만 들어주신 세계영화재단 (WCF, World Cinema Foundation)의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한국영 상자료원에 또한 감사 드린다.

끝으로 ‘좋아하는 일에 미쳐라. 그리고 최고가 되라. 그것이 인생의 최대의 즐거움이다’라는 말씀을 추억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