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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초, 처음 <하나안>을 기획했을 때 이 영화는 젊은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4세와 강제이주를 당한 고려인 1세 할아버지가 함께 연해주로 여행을 떠나는 로드무비였다. 당시 나는 1937년 고려인들의 강제이주, 우즈베키스탄의 풍광과 색채,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3, 4세대 고려인들의 삶이라는 세 가지를 다 담아내고 싶은 욕심을 갖고 있었다. 어릴 때 강제이주를 당한 고려인 1세 드미트리와 고려인 4세로서 강제이주의 역사에 관심이 없는 반항적인 젊은이 스타쓰의 만남과 70여년 전 강제이주의 경로를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회귀와도 같은 여행을 그리고자 했고, 처음 <하나안>의 이야기가 탄생했다. 이 최초의 기획을 발전시켜 가면서, 영화는 역사적으로 20세기 초의 항일투쟁으로부터 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의 모습까지, 공간적으로는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러시아 그리고 한국까지 건너가는 커다란 프로젝트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약 1년 반 동안 영화를 준비하면서 우리에게는 서울시와 서울영상위원회에서 지원한 아주 적은 돈밖에 없었고, 내가 정말 그리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제작의 현실에 직면하자, 나는 내가 담고자 했던 것들이 지나친 욕심이었고, 내 이야기가 작위적인 설정이었음을 깨달았다. 결국 타슈켄트를 배경으로 우즈베키스탄 젊은이들의 리얼한 삶의 모습을 담은 시나리오로 전면적으로 수정했고, 그 결과 <하나안>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었다. 내가 가장 잘 아는 이야기였기에 더 탄탄하고, 더 큰 진정성을 갖게 되었다. 이 영화에 가장 큰 영감을 주었던 친구 스타쓰에게 주인공을 맡겼다. 그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주었고, 우리는 기적처럼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제작비가 매우 제약돼 있는 상황에서 스태프를 구성하는 게 쉽지 않았다. 감독은 최소한 메인 스태프(촬영 2명, 사운드 1명, 조명 1명) 정도는 한국 스태프를 데려 가려고 했는데, 개런티가 적거나 없는 사정은 물론이고, 비행기 표도 비용 부담이 되는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현지 스태프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지만 촬영감독이 고민이 많았다. 최소한 1명이라도 있어야 되는데 말이다. 하지만 감독이 일단 가려고보자고 밀어붙였다. 결국에는 감독, 촬영감독, 주인공과 연극원 재학중인 감독의 동생, 총 4명이 타쉬켄트에 촬영을 하러 가게 됐다. 여기서 말하는 감독의 포인트: "실은 촬영 어시스트 한 명 정도는 데려 갈 수 있었다. 촬영감독에게는 일부러 데려 갈 수 없다고 말했다. 전략적인 생각 때문이다. 나(감독)에게는 우즈베키스탄이라는 나라가 잘 아는 나라이지만, 촬영감독한테는 낯선 땅이고, 말도 안 통한다. 만약에 한국 사람이 한 명 더 있으면 그 사람과만 놀고 고립될까 걱정했었다. 하지만 나도 조감독, 연출부도 없이 혼자였다. 비록 말은 통하지만 나나 촬영감독 보다 영화에 대해서 모르고 한국 영화 시스템을 모르는 사람들 하고 일해야만 한다. 그래서 둘이서 서로 의지하고 신뢰하지 않으면 이 영화가 절대로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제작비가 부족할수록 우즈베키스탄 현지로 미리 들어가서 프리프로덕션을 더 꼼꼼히 해야 되는데 문제가 있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어떠한 촬영이든 정부에서기관에서 촬영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 허가를 받으려면 시나리오 내용의 통과를 받고 나서 촬영비를 하루에 200$씩 내야 되는 조건이다. 하지만 우즈베키스탄 정부에서 지적하는 검열 수준은 워낙 까다로워서 <하나안> 같은 시나리오는 절대로 통과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물론 돈도 없었다. 그래서 허가 없이 촬영하기로 했는데 그 방법은 여러 행정적인 문제를 일으켰다. 일단은 촬영감독은 1개월짜리 관광비자를 받았고, 프리프로덕션 부터 촬영까지 한 달이라는 시간 밖에 우리에게 있지 않았다. 그래서 우즈베키스탄으로 출발하기 전에 많은 것을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어떤 장비가 있는 지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촬영장비는 한국에서 가져가기로 했다. 그러나 촬영허가가 없으면 공항에서 장비를 통과 시키지 못하게 돼 있었다. 기동성이 좋고, 해상도와 퀄리티가 좋고, 값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촬영장비는 캐논 DSLR(7D)를 사용하기로 했다. 카메라는 일반 스틸카메라처럼 작았다. 물론 보조장비들이 있었지만 촬영장비를 분리해서 여러 가방에 넣어서 가져갔다. 다행히 공항에서 걸리지 않았다. 문제는 사운드 장비였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구소련 방식대로, 동시녹음이 아닌 100% 후시녹음을 한다. 그래서 현지에서 동시녹음을 잘하는 사운드 기사와 붐맨, 녹음 장비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처음에 방송국 사람들과 방송국 장비를 쓰려고 했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경험도 없고, 장비도 영화 촬영 할 때 쓰는 녹음기가 아니라 나이트클럽에서 쓰는 무식하고 커다란 리모콘 판넬과 컴퓨터였다. 계속 알아보던 중 다행히 영화에서 동시녹음 경험이 있는 기사를 찾았다. 그 기사는 장비도 가지고 있었다.

타슈켄트에 가서 헌팅과 캐스팅을 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스케줄이었기 때문에 시나리오 작업 할 때부터 감독이 이미 알고 있는 장소를 썼다. 현지 캐스팅디렉터에게 캐스팅을 미리 하고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타슈켄트에 가기 전에 최대한 캐스팅과 장소 섭외를 해두려고 노력 했었다.

우즈베키스탄 법으로는 외국 관광객은 개인 집에서 머물 수 없고, 호텔에서만 지내야 된다. 하지만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서 감독의 집에서 머물기로 했다. 타슈켄트에 도착해서 촬영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은 4-5일 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매일 헌팅, 캐스팅, 스태프 구성 작업을 동시에 진행 했었다. 그중에서 스태프 구성에 대해서 특별한 전략을 세웠어야 했다. 독립영화로써 우리 프로젝트는 특별한 작업 모델이 필요 했었다. 주인공은 전문 연기자가 아니었고, 촬영감독은 말이 안 통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촬영 허가 없이 찍어야 된다는 점 등등의 핸디캡들이 있어서 더욱더 방법을 많이 고민해야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조건 신뢰하고 따라갈 수 있는 팀을 만들지 않으면 주어진 틀 안에서 이 영화를 완성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영화 경험 있는 사람들과 일반인들을 섞어서 팀을 만들었다. 일반인들은 영화에 대해서 애정이 크고 관심이 많기 때문에 무조건 따라올 거라고 생각했었다. 문제는 영화 경험이 없는 것이었다. 예상했던 것처럼, 감독과 촬영감독 밖에 없었다. 그리고 감독의 동생은 촬영 어시스트, 연출부, 때로는 제작부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현지 스태프가 결합하여 촬영 2명, 조명 3명, 그립 2명, 연출부 2명, 분장 1명, 제작 2명, 캐스팅, 기사 등등 이렇게 해서 15명 정도 되는 팀이 만들어 졌다.

크랭크인이 다가 왔다. 메인 배우가 카메라 앞에서 어떤 식으로 연기할지 몰라서 정확한 콘티도 나올 수는 없었다. 그리고 배우는 전문 배우가 아니라서, 그에게 미리 시나리오를 보여주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영화를 찍는 것은 미친 짓이고, 큰 리스크였다. 비전문 배우, 비전문 스태프를 데리고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확률은 높지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 매우 위험했다. 하지만 이 사실을 나(감독)는 누구한테도 얘기할 수 없었다. 무조건 밀어붙이려고 했었다. 그리고 나만 확신을 가진 게 아니라 모든 스태프들한테 품게 했어야 되니까 자신있게 할 수 밖에 없었다.

편집은 아는 편집실의 장비를 빌려 감독이 전체적으로 집에서 하고 편집실에서 기사의 도움을 받아 좀 더 진전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120분 정도 되는 순서편집에서 프로듀서와 의논하며 불필요한 씬들을 걷어내고 이야기를 많이 압축시켜 88분 정도의 분량이 나왔다. 서울씬에서 흔쾌히 도와주신 배우들의 씬도 거의 대부분 잘라내야 해서 미안했다.

동시 녹음 상태가 안 좋아서 믹싱 작업할 때 꽤 어려웠다. 아무래도 별로 좋지 않은 녹음장비와 동시녹음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다음에는 동시녹음팀을 꼭 한국에서 데려가야겠다 라는 생각이 든다.

후반작업 하면서 제일 어려웠던 것은 우즈베키스탄의 분위기와 실제 느낌을 살리면서 그 나라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음악, 편집, 색보정, 믹싱까지 굉장히 신경을 썼다. 음악은 단편작업을 같이 했던 음악감독과 진행했는데 수많은 곡들을 새로 만들어 주었다. 색보정은 촬영감독이 직접 했다. 그리고 사운드 믹싱은 전문 스튜디오여서 퀄리티가 매우 높았다.

처음에는 소통의 문제도 있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설명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작업을 해내면서 어느 정도 퀄리티를 뽑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