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 사진 보기...more

Q. 이적요는 어떤 인물인가?
A. 이적요는 노시인이고 문단에서는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여고생 은교를 만나면서 큰 심경의 변화를 겪는다. 보는 이로 하여금 늙는다는 것이나 젊음, 청춘에 대해 많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주는 캐릭터가 아닌가 싶다.

Q. 특수분장이나 노인 연기 등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 당연한데도<은교>를 선택한 이유는?
A. 전혀 생각지도 못한 캐릭터여서 정지우 감독에게 제의를 받았을 때 많이 난감했다. 하지만 나에게 제안했다는 것 자체가 내게 신뢰감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에 해왔던 역할들도 쉬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이번 역할은 가장 큰 도전이자 고난이었다. 심적이나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정지우 감독만 믿고 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적요는 정말 큰 산이었다.

Q. 노인 역할을 준비함에 있어 어떤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나?
A. 이적요라는 인물이 지닌 정서적 느낌을 찾는 것들이 어려웠다. 정지우 감독과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더듬더듬, 작은 것부터 찾아가기 시작했다. 또 탑골 공원에 가면 어르신들이 많이 계신다. 그곳에서 어르신들과 막걸리 한 잔 하면서 그분들의 모습도 관찰하고,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영화나 드라마 속 노배우들의 얼굴도 더 유심히 지켜봤다. 그럼에도 이적요의 나이대가 가지고 있는 연륜이 묻어나는 모습을 표현하는 게 쉽지 않아 절망적이었다. 오히려 욕심을 버리고 시간이 흘러 내가 늙었을 때 이런 모습일 거라고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흐름을 타면서 연기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자 편해졌다. 좀 더 비워내고 뭔가를 많이 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했던 것 같다.

Q. 현장에서 정지우 감독,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A. 정지우 감독의 연출작들을 찾아서 본 관객이자 <모던 보이>를 함께 찍고 두 번째 작품을 같이 하는 배우의 입장에서 <은교>는 정지우 감독의 지난 작품들의 장점들을 한데 모은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한 작품을 같이 해봤기 때문에 대화도 유연하게 잘 통해서 촬영하는 데 많이 도움 되었다. 김무열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후배이자 동료이다. <은교>에서 각자 다른 숙제를 가지고 만났음에도 한 작품을 함께 해봤기 때문에 서로의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좀 더 잘 이해하고 연기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섬세한 캐릭터를 너무나 잘 소화했다. 김무열이 <은교>에서 보여줄 놀라운 연기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김고은은 영화 경험이 없어서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집중력도 뛰어나고 은교 캐릭터 역시 잘 소화해냈다. 이적요 입장에서는 빠져들 만한 충분한 매력을 소유한 캐릭터이자 배우인 것 같다.

Q. 관객들에게 <은교>가 어떤 영화로 남길 바라나?
A. <은교>는 늙음에 대한 생각들을 떠올려보게 된 계기의 작품이었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면서 이런 부분들을 떠올려 본다면 이 영화를 만든 가치가 있을 것 같다.

Q. 서지우는 어떤 인물인가?
A. 이적요의 제자이다. 세 인물 중 가장 평범하고 일반적인 사람이자 그 때문에 가장 복잡한 내면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모습을 다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질투,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 욕망이 많고 절망도 많은 인물이다.

Q. 소설가 역할을 어떻게 준비했나?
A. 소설가라는 특성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정지우 감독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감독님이 많은 자료를 보여줬다. 어머니가 소설가라서 보조 작가가 상주를 하는데, 두 사람을 관찰하는 재미 또한 쏠쏠했다. 이적요와 서지우의 관계처럼 오래 알고 지냈고, 친하면서도 두 사람만의 복잡미묘한 갈등도 있다. 감독님이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라는 노래를 추천해줬는데, 감정이 안 잡히거나 뚜렷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는 잠시 촬영을 쉬었다 가는 한이 있더라도 이 노래를 듣고 촬영하곤 했다.

Q. 존경심과 열등감, 질투를 오가는 서지우의 감정을 표현하기가 어렵지 않았나?
A. 서지우는 존경심과 열등감이 공존하기 때문에 슬픈 캐릭터인 동시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인 것 같다. 욕망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감정인데 그것이 불가능해 보일 때 끝없이 절망하기도 하고 다시 일어나 또 다른 방법을 찾기도 한다. 서지우는 끝까지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해 열등감이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촬영을 하면서 그런 열등감은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모든 제자, 아들, 형, 동생 등이 겪고 있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큼 마음도 아팠고 공감도 많이 됐다.

Q. 관객들에게 <은교>가 어떤 영화로 남길 바라나?
A. 영화 <은교>는 삶 속의 인간이라는 유한론적 존재에 대한 슬픔을 그리고 있다. 갈망이 있고, 욕망이 있고, 슬픔이 있고, 질투가 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어렵지 않은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근간에 보기 힘든 좋은 작품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Q. 한은교는 어떤 인물인가?
A. 은교는 열일곱 살의 여고생이고 자기 감정에 굉장히 솔직한 아이인 것 같다. 뒷 일은 잘 생각 안 하고, 그 나이가 가질 수 있는 감성을 가지고 있다. 환경적인 이유 때문에 애어른 같은 면도 있지만, 그 또래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평범한 아이이면서 동시에 결코 평범하지 않은 아이인 것 같다.

Q.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 같다. 첫 데뷔작으로 <은교>를 선택한 이유?
A. <은교>를 찍게 된 건 상당히 용기가 필요했고 도전이었다. 시작하기 전에 두려움이 컸기 때문에 이 작품을 선택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도전을 하냐, 포기를 하냐의 문제였던 것 같다. 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이 작품을 포기한다면 다음에 어떤 역할이 오든, 그 안의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도전해서 이겨내고 싶었다.

Q. 은교가 이적요와 서지우를 대하는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려 했나?
A. 은교가 이적요에게 느끼는 감정은 조금 높은 것인 것 같다. 존경의 대상이기도 하고, 한 없이 기대고 싶기도 하고, 감정의 공유도 나누고 싶어한다. 반면 서지우에게 느끼는 감정은 어느 정도 보호본능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떨 때는 얄밉게 굴지만 어떨 때는 은교가 서지우를 다독여주기도 한다. 그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Q. 관객들에게 <은교>가 어떤 영화로 남길 바라나?
A. 영화를 보면 많은 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고, 한 편으로는 동정심이 느껴지기도 할 것 같다. 재미있게 촬영한 만큼 관객들에게 좋은 영화로 오래 기억에 남을 수 있으면 좋겠다.

Q. <은교>는 어떤 영화인가?
A. <은교>는 노시인의 사랑과 순정에 대한 영화다.

Q. 원작소설과 차이를 둔 부분이 있다면?
A. 이적요와 은교의 캐릭터가 좀 다르다. 이적요라는 인물을 좀 더 절제하면서 그렸던 것 같다. 특히원작소설에 비해 은교라는 아이는 좀 더 자기 주장을 가지고 있다. 어리기 때문에 자기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앞 뒤를 재거나 판단하지 못한 상태로 여러가지 일을 하게 되는 보다 능동적인 은교를 만들어낸 것 같다.

Q. 각 배우들의 캐스팅 이유는?
A. 원작소설을 읽고 보니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마음에는 여전히 청춘이 있으나 껍데기가 늙어가는 것 같았다. 그런 본질적인 관점을 표현하는데 젊은 배우가 노인 분장을 하면 대단히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른의 배우가 일흔의 노인 역할을 하면서 더 흥미롭고 여러가지 함의를 가진 캐릭터를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김무열을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우리 주위에 평범한 사람들은 굉장히 상처받기 쉽고 예민하다. 그런 면에서 김무열은 서지우라는 캐릭터에 아주 잘 어울렸다. 김고은은 오랜 시간에 걸친 오디션을 통해 만났다. 은교가 노시인과 젊은 제자에 호기심을 느껴야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김고은을 만나고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내면에 단단함과 자기중심을 가지고 있어 휩쓸리지 않고 대상화되지 않으면서도 자기감정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은교 역에 잘 어울렸다고 생각한다.

Q. 촬영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A. 박해일에게는 이적요를 연기하는 게 도전이었을 것이다. 촬영 중반을 넘어가니 박해일이 자기가 맡은 캐릭터에 점점 몰입해가면서 노인처럼, 노인의 연약한 육체와 정신으로 변해갔다. 극 중 이적요 시인이 서지우와 은교에게 정서적으로 서운해지는 감정들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다 보니 실제로 피로해지고 우울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많이 없어서 마음이 짠했다.

Q. 관객들에게 <은교>가 어떤 영화로 남길 바라나?
A. 영화를 보면 굉장히 긴 시간 동안 마음 속에 울림을 간직할 수 있을 것 같다.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가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박범신 작가. 올해로 등단 40주년을 맞이한 그의 별명은 '영원한 청년작가'이다. 그만큼 지치지 않고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오고, 블로그와 트위터 등을 통해 독자들과의 소통의 끈도 잊지 않고 있다. 특히 「은교」는 박범신 작가가 처음으로 컴퓨터로 쓴 글이자, 블로그에 연재하며 만들어간 작품이다. 불과 한 달 반 만에 써 내려간 「은교」는 스스로 "내 안에서 생성된 날 선 문장들이 포악스럽게 나를 앞으로 밀고 나갔다. 나는 때로 한없이 슬펐고, 때로 한없이 충만했다"고 고백할 만큼 본인이 나이 들면서 느낀 감정들을 솔직하게 그려냈다. 「은교」와 더불어 '갈망의 3부작'이라고 불리는 「촐라체」, 「고산자」 외에도 소설집 「토끼와 잠수함」, 「흰 소가 끄는 수레」,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 장편소설 「죽음보다 깊은 잠」, 「풀잎처럼 눕다」, 「불의 나라」, 「더러운 책상」, 「나마스테」 등의 작품을 발표했으며 대한민국문학상, 김동리문학상, 만해문학상, 한무숙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Q. 소설 「은교」는 어떤 작품인가?
A. 소설 「은교」는 삶의 유한성에 의한 존재적 슬픔에 따른 깊은 갈망을 그린 소설이다. 내가 늙어가면서 경험한 슬픔과 그리움 등을 '갈망'이라는 주제로 써낸 소설이다.

Q. 이적요, 서지우, 한은교가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은 어떤 것인가?
A. 이적요와 서지우 사이에는 예술가적인 갈등이 있다. 서지우는 재능은 없지만 유명한 예술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고, 이적요는 재능이 뛰어나지만 은교를 만나면서 평생 자기 절제를 하며 살았던 인생에 회의를 느끼는 인물이다. 그리고 은교는 영원한 처녀성과 순결성, 불멸성을 말하는 인물이다. 따라서 세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보면 영원과 불멸을 가운데에 둔 삼각관계라고 할 수 있다.

Q. 정지우 감독이 영화화하는 것을 듣고 어떤 기분이었나?
A. 지금까지 내 작품 중 20여 편 이상이 영상화 되었지만, 이번 영화는 특히 정지우 감독에 대한 신뢰가 깊어서 특히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은교」는 여러 영화사와 감독에게 프로포즈를 받은 작품이다. 정지우 감독의 전작 <해피엔드>나 <사랑니>를 봤는데, 드물게 인간이 가진 가장 밑바닥의 심리를 잘 그려내는 감독으로 느껴졌다. 「은교」는 사실 서사만 옮겨와서는 감동이 없다. 세 사람의 갈등 구조와 밑바닥에 있는 본질적인 심리를 섬세하게 잘 그려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정지우 감독이 잘 할 수 있겠다는 믿음을 가지고 인연을 맺게 되었다.

Q. 각 배우들의 캐스팅에 대한 만족도는?
A. 아주 잘 어울린다고 본다. 내가 처음 「은교」를 썼을 때를 감안하면 극 중 박해일은 상상했던 것보다 젊지만, 워낙 연기력이 출중하니 연기로 충분히 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김고은은 첫인상이 그야말로 '영원한 처녀'같은, 순결하고 맑고 깨끗한 인상이었다. 김무열은 모두가 사랑하는 배우이니 그의 매력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 것 같다.

Q. 관객들에게 <은교>가 어떤 영화로 남길 바라나?
A. <은교>라는 영화가 억압당해 있는 관객들의 감수성을 건드리는 영화가 되기를 바란다. 자본주의 세상에선 자본주의적인 욕망이 우리를 지배하기 때문에 우리가 진실로 무엇을 원하고 그리워하는 지 모른다. 특히 젊은 이들은 더욱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영화를 통해 내 마음 속에 있는 근원적인 욕망과 그리움이 무엇인지, 그러한 감성을 건들임 당하고, 쫓아서 살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