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 사진 보기...more

<멀리가지마라>의 가장 독특한 특징은 바로 연극 무대를 그대로 옮겨온 듯한 구성이다. 제작진은 이야기적으로는 장르적인 영화를, 연출적으로는 한정된 예산 안에서 다양하고 실험적인 시도를 원했다. 이에 미술과 소품을 최소화한 검은색이 지배적인 공간, 바로 연극무대를 떠올렸다. 무의 공간인 무대위를 배우들로 채움으로서 배우가 공간이자 미술, 그리고 소품이 되어 관객들에게 한층 더 높은 몰입감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연극에서 메인 무대가 있는 것처럼 <멀리가지마라>에서도 가족들이 유산 상속을 위해 모인 집을 중심으로 영화가 진행된다. 김근아 미술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은 집이라는 공간을 만들어낼 때 깊이를 알 수 없는 무대의 검은색 배경을 활용했다. 검은색 공간에 문을 세우면 사람들이 오가는 통로가 되고, 창문을 달면 바깥 세상의 소리가 들리고, 식탁을 놓으면 주방이, 변기를 놓으면 화장실로 바뀌는 등 미니멀리즘을 통해 '초현실의 공간'을 탄생시킨 것이다. 특히 영화 속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거실 공간은 소파와 2개의 문, 그리고 창문의 위치를 기준으로 배우들과 카메라의 동선을 구상하였으며, 자칫 놓칠 수도 있는 영화의 스토리와 각기 다른 인물들의 세세한 면면까지 계산한 연출로 관객들에게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이처럼 어느 곳이든 될 수 있는 무대를 배경으로 관록의 연기를 펼쳐낸 배우들의 열연이 더해져 초현실적인 공간에서 펼쳐지는 <멀리가지마라>의 지독하게 현실적인 이야기가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됐다.

무대에서 스크린으로 옮겨진 무대 위에서 흥미롭게 전개되는 스토리부터 낱낱이 드러나는 K-가족의 민낯까지, 독특하고 새로운 시도가 돋보이는 영화 <멀리가지마라>는 색다른 영화를 기다려왔던 영화 팬들의 갈증을 채워줄 것이다.

<멀리가지마라>라는 다소 독특한 느낌의 영화 제목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언뜻 보면 단순히 해석되는 문장에는 박현용 감독의 또다른 해석이 담겨있다. 그건 바로 "무엇이든 과하면 해롭다", 즉 지켜야할 선은 지켜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된 것이다. 흥미로운 비하인드는 "선악의 양면성을 지닌 사람들이기에 정도를 잘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의 제목을 고심하던 제작진에게 박명신 배우가 '멀리가지마라' 라는 모두를 만족시킬 문장을 던져주었다는 후문이다.

제목의 뜻처럼 영화에선 유산 상속을 위해 한 자리에 모인 평범한 가족이 선을 지킬 듯, 넘을 듯 아찔한 상황을 계속해서 연출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웃음을 터트리게 만드는가 하면, 어느 지점에선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아이러니에 빠지게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무엇이든 과하면 해롭다는 감독의 말이 묘하게 설득된다. 그리고 돈 앞에서 무색해지는 형제 간의 우애, 가족을 향해 숨겨왔던 속내를 거칠게 내뱉는 등 저마다의 선을 적어도 한 번씩은 넘고 마는 극중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상황에서 정도를 지키며 사는 것이 참 어렵다는 것에 공감하게 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를 통해 "정도를 잘 지키자"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 역시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여기에 극 초반 가로등 아래에서 '정헌철'이 과자를 사러 가는 자신의 딸과 조카를 향해 "멀리 가지 마라"며 한 마디를 툭 던지는 장면으로 깨알 같은 웃음 포인트를 더했다.

"내가 이 형제들 중에 한 명이라면?"이라고 가정하고 영화를 보면서 제목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끔 하는 영화 <멀리가지마라>는 오는 3월, 관객들의 마음을 멀리 갈 수 없게 만들 예정이다.

한정된 검은색 공간, 그리고 최소화된 소품과 미술 장치까지 이렇게 공간을 한정 짓게 되면서 <멀리가지마라>의 제작진은 또 다른 고민을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한정된 공간에서 이야기를 더욱 명확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박현용 감독은 구두환 촬영감독과 함께 카메라를 되도록 멈추지 않으면서 화자를 계속 따라가는 롱테이크 촬영 방식을 시도하기로 했다. 배우들이 계산된 구도에 맞춰 약속된 방향으로 이동하면 카메라 역시 배우들과 함께 이동하며 감정의 흐름에 맞는 구도를 담으려 한 것. 한정된 공간 안에서 롱테이크로 촬영을 진행하면서 카메라의 앵글, 배우의 위치에 따라 그 씬의 주인공을 명확히 표현해 관객이 더욱 스토리에 몰입할 수 있게 했다. 김주일 조명감독은 인물에 스포트라이트가 되어주는 조명을 설치해 관객이 화자에게 더욱 집중할 수 있는 효과를 더했다. 다만 한정된 공간에서 끊임없이 이동하는 카메라와 배우들의 동선 탓에 조명 장비가 동이 날 정도였다는 후문. 그리고 제작진과 배우들의 충분한 논의와 함께 시작된 촬영에선 카메라와 배우들이 동시에 움직이며 씬 순서에 따라 서로 약속된 자리를 잡아가며 완벽한 호흡을 만들어갔다.

박현용 감독이 공들인 씬 중 하나로 꼽는 장면은 바로 극 중반부에 등장하는 이 집안의 유일한 사위 '조현근'의 독백 장면이다. 검은색 공간에 우뚝 세워져 있는 문을 열면 화장실이 등장하고, 화장실 안에서 혼잣말로 가족들 험담을 쏟아내는 그의 어깨 너머로는 벽이 있어야 할 자리에 벽이 없다. 대신 생략된 벽 너머 응접실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첫째 '정헌구'와 셋째 '정헌규'의 모습이 조명아래 비춰지고 있어 극적인 재미를 더한 것이다. 짧지 않은 현근의 독백과 함께 카메라, 조명, 배우들의 동선 합을 맞추다 보니 스무 번 이상의 테이크를 갔던 장면이었다고 한다. 이렇듯 영화 곳곳에 보여지는 롱테이크 씬들은 제작진과 배우들 사이의 환상적인 호흡을 엿보게 하는 것은 물론, 인물의 감정을 더욱 극적으로 보여주어 스토리에 대한 몰입감을 한층 끌어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