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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본격 법정스릴러 <의뢰인>의 프로덕션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부분은 법정이라는 공간의 구현이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 중 하나인 검사와 변호사의 치열한 논리대결이 이루어지는 공간이고 동시에 영화의 핵심 소재인 배심원 제도를 사실적으로 담아내야 했고 이를 위해서는 기존에 알고 있던 법정보다는 훨씬 큰 규모의 공간이 필요했다.

사전 제작 단계에서부터 전국 각지에 있는 실제 법정 공간들을 답사했지만 촬영 여건이 용이하지 않은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실제 재판이 이루지는 공간이다 보니 대여 자체가 힘든 상황이었다. 결국 미술감독을 포함한 모든 제작진은 대형 법정세트를 만드는 것으로 방향을 잡아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배우들의 동선이나 조명, 카메라 등 촬영 장비의 제한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실제 법정보다 넓고 높은 돔 구조의 형태로 틀을 만들었고 여기에 실제 법정에서는 볼 수 없는 창문을 만들어 외경과 블라인드 등의 효과를 더해 이를 인물의 감정 변화를 표현하는데 활용하였다. 또한 법정이 주는 단조로움과 답답함을 탈피하는 방안으로 벽면 구조에 층을 두어 높낮이를 조절하고 판사석 뒤로도 깊이를 더했다. 전체적인 색감은 실제 법정에서도 사용되는 베이지 색과 고동색을 사용해 공간 안에 정착하도록 만드는 안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완성된 돔 구조의 대형 법정 세트는 영화의 사실감과 공간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대형 법정과 어우러진 검사석, 변호인석, 배심원석, 방청석 등은 실제 구조물의 디테일을 최대한 살려 지금까지 한국영화에서 보지 못한 새로운 공간적 매력을 선사한다. 또한 실제 법정의 1.5배 이상 되는 넓은 공간은 인물들의 움직임에 대한 자유로움을 제공하며 캐릭터의 입체감을 높여 공판 과정을 실제로 지켜보는 듯한 생생한 현장감을 극대화한다. 뿐만 아니라 여러 대의 카메라를 설치해 롱테이크로 촬영한 각각의 인물들의 모습은 세밀한 표정변화까지도 잡아내며 영화 속 극적인 드라마를 고스란히 전달할 것이다.

<의뢰인>의 캐스팅이 완료되는 순간, 영화를 가장 기대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하정우, 박희순, 장혁의 조합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들에게도 어려움은 있었다. 하정우는 전작 <황해>의 촬영을 마친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합류했기 때문에 자유분방하고 댄디한 모습의 변호사로의 변신이 쉽지 않았다. 이에 크랭크인 이후 본인의 외양이나 변호사라는 캐릭터에 익숙해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했다. 하지만 손영성 감독이 하정우에 대해 "연기에 있어서 천재 같다"고 밝혔듯이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부터 손짓 하나, 표정 하나, 말투의 어미처리까지 시나리오 속 캐릭터의 모습을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오랜 시간 연극무대에서 단련된 실력을 지닌 베테랑 배우 박희순에게도 <의뢰인>의 많은 대사 연기는 부담이었다. 하지만 그가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에 이르기까지 숨겨둔 비장의 무기는 바로 노력이었다. 촬영 전까지 모든 대사를 완벽하게 암기하는가 하면, 카메라 앞에서 마치 무대 위의 배우가 관객들을 바로 앞에 두고 연기를 펼치는 듯한 자연스러움과 정확한 발성으로 검사라는 캐릭터를 더욱 설득력 있는 인물로 만들었다.

'한철민' 캐릭터는 많은 배우들이 욕심을 낸 배역이지만 다른 두 배우에 비해 적은 분량이 치명적 단점이었다. 하지만 장혁은 캐릭터가 영화 속 사건을 이끌어 가는 중요한 인물이라는 이유로 분량에 관계없이 도전해 보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무수히 많은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더욱 보완된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또한 촬영장에서 잘생긴 외모보다 그를 더욱 빛나게 한 것은 성실함이었다. 법정 장면을 촬영할 당시, 한 마디의 대사도 없이 내내 앉아서 다른 두 배우의 보조를 맞춰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열흘 동안이나 집중하는 성실함은 관객의 뇌리에 오랫동안 남을 명장면을 탄생시켰다.

<의뢰인>은 국내에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국민참여재판(배심원제)를 소재로 삼고 있다. 아직까지 우리에게 낯선 제도이니만큼 제작진은 물론 배우들도 그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고 제작진을 비롯한 주연배우들은 실제 배심원제로 진행되는 재판을 하루 종일 참관했다. 법정의 방청석은 별도의 선별 과정 없이 신분증 검사를 통해 참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기자가 방청을 하는 경우도 있고 로스쿨이나 사법대학교 학생들이 단체로 참관해 케이스 분석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얼굴이 알려진 배우들이 방청석에 앉아 있으면 법정 과정에 영향을 줄 수도 있었기 때문에 배우들은 물론 제작진도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우리에게는 취재 차원의 참관이지만 다른 이들의 인생을 다루는 중요한 상황이니만큼 주의 깊게 행동했다.

당시 참관한 사건은 술자리에서 칼로 친구를 살해한 피의자에 대한 공판이었고 우발적인 범행인지 계획적인 범행인지를 놓고 변호사와 검사가 공방을 벌였고 배심원제라서 12명의 배심원이 있었다. 억울해 보이던 피의자의 모습은 검사의 지적이 계속될 때마다 설정된 상황일 수도 있겠다는 느낌으로 변해갔다. 이런 점들이 연기를 해야 하는 배우들에게는 굉장히 인상적이고 소름 돋는 경험으로 전달되었다. 특히 용의자 역을 맡아 유죄인지 무죄인지의 모호함을 표현해야 했던 장혁은 순진함과 악랄함이 존재하는 피의자의 이중성을 면밀하게 관찰하며 연기 틀을 잡아나갔다. 검사 역을 맡은 박희순도 역시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매끄럽거나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떤 순간에서도 핵심적인 부분들은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는 검사의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아 자신의 캐릭터를 잡는데 반영했다.

실제 재판의 참관은 배우와 제작진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캐릭터 설정과 법정 장면을 촬영하는데 있어 실제 법정 과정을 지켜볼 때 느낀 점들을 많이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사실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한 법정 장면들을 완성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