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페 느와르 Cafe noir
 


2009, D-cinema, 멜로/드라마
198분, 청소년 관람불가

제 작 : 영화사 북극성
제 작 : 김종원 l 프로듀서 : 김두헌
각본/감독 : 정성일
촬 영 : 김준영 l 조 명 : 차상균
미 술 : 조상경 l 편 집 : 문인대
음 악 : 이지연 l 동시녹음 : 이승철
배 급 : 조제 ...more

2010년 12월 30일(목) 개봉
blog.naver.com/cafenoir2010

 

출 연
영수 :: 신하균
선화 :: 정유미
미연 :: 문정희
미연 :: 김혜나
은하 :: 요조


About MovieProduction note


-> 크랭크인 : 2008년 12월 7일 l 크랭크업 : 2009년 5월 25일 (총 38회차)

첫번째 밤
 

<카페느와르는> 드라마라기보다 차라리 에세이입니다. 이 영화를 하나의 드라마로 보려는 한, 아무것도 느낄 수 없을 지 모릅니다. <카페 느와르>는 영화에 전 존재를 걸고 살아온 한 시네필이 영화에 다가가려는 사적 고투이며 영화의 표현 가능성에 대한 또 하나의 탐구입니다. 정성일 감독은 평론가에서 감독의 자리로 옮겨가 영화를 만든 것이라기보다, 여전히 비평가의 자리에서 영화로 비평을 쓰고 있다고 보는 편이 차라리 맞을 것입니다. 장 뤽 고다르가 <미치광이 피에로>를 만들고 나서 "이 영화는 한 편의 영화가 아니라 영화를 향한 시도"라고 말했습니다만, 이 말은 <카페 느와르>에도 고스란히 적용될 것입니다.

여기서는 자연스러움과 조화와 합일이 아니라 부자연스러움과 충돌과 파열이 우선합니다. 혹은 그 양자가 교차됩니다. 의도된 어색함, 다른 인물들에 의해 주문처럼 반복되는 대사들, 내레이션과 화면 혹은 대사의 시간의 화면의 시간의 불일치 혹은 시간과 공간의 비약, 넌센스에 가까운 삽입장면들의 삽입, 가정(假定)과 실제의 혼용, 꿈과 현실의 도착(倒錯) 등등 <카페 느와르>는 하나의 드라마로 받아들여지기를 한사코 거부하며 이 같은 반관습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새롭게 사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카페 느와르>는 형식 실험으로 점철된 아방가르드 영화가 아닙니다. 이 영화에는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는 명료한 이야기의 줄기가 있습니다. 알려진 대로 <카페 느와르>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를 각색해 각각 1, 2부에 배치했습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햄버거를 먹고 자살하려는 소녀의 이야기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나뉘어 배열되어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 영화에는 사랑해선 안될 두 여자를 사랑한 한 남자의 이야기와, 이상한 한 소녀의 이야기, 이렇게 두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른은 죽지만, 소녀는 살기로 결심합니다. 혹은 남자는 죽지만 여자는 살아남습니다. <카페 느와르>는 영화에 관한 에세이이면서 동시에 죽음과 삶에 관한 성찰입니다.


두번째 밤
 

<카페 느와르>는 장소의 영화입니다. 이야기를 위해 꾸민 공간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서울이라는 장소의 질감과 표정을 담은 영화입니다. 남산, 세종로 일대, 덕수궁, 남대문 재건 현장, 그리고 문제의 청계천… 한국의 모든 것이 집약된 서울이라는 대도시를 구성하는 이 장소들은 우리 모두에게 익숙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는 있는 동안, 당신은 이 익숙한 장소들이 낯설게 느껴질 것입니다. 이 영화가 그 장소들을 다르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서울의 세속적 이미지를 대변하는 남산 타워가 숭고한 성모상과 나란히 놓일 때, 혹은 청계천의 낡은 상가들과 시장이 기나긴 트레블링 숏으로 끝없이 이어질 때, 혹은 영화의 인물이 그 아래 탈시간적인 모조의 하천 둑방을 하염없이 걸어갈 때, 이 장소들은 일상적이고 현재적인 기능을 넘어서 새로운 시간과 기억을 불러들입니다.

카페 느와르는 그러므로 또한 시간과 기억의 영화입니다. 청계천의 새로운 하천과 낡은 건물은 전근대의 기억과 근대의 속도 사이에서 우리의 시간감각을 교란합니다. 같은 청계천에서 촬영되었으면서도, 흑백 화면에 담긴 꿈과도 같은 허구의 로맨스와, 칼라의 화면에 담긴 기괴한 형상의 공존은 우리의 혼란스러운 내면 풍경일 것입니다. 또한 우리 시대의 어떤 영화들은 우리에게 물질화된 기억을 남깁니다. 한강에 가면 <괴물>의 기억이 침범하고 분노는 <올드보이>의 행동을 불러들입니다. 또한 평화로운 놀이공원에서 <살인의 추억>의 잔영이 습격하기도 합니다. <카페 느와르>에는 어떤 세밀한 다큐멘터리도 담을 수 없는 21세기 서울의 삶의 내면적 기록입니다. 상대적으로 긴 러닝타임을 보는 동안 거의 의식할 수 없는 이유도 그 기록의 절절함과 시급함 때문일 것입니다.


세번째 밤
 

<카페 느와르>는 교양의 영화입니다. 괴테와 도스토예프스키는 말할 것도 없고, <극장전> <괴물> <올드보이> <행복> <살인의 추억> 등이 직접 혹은 간접 언급되며, 엔딩 크레딧에는 브레히트, 체호프, 라캉 등의 인용이 밝혀져 있습니다. 동시에 여기엔 <빨간 풍선>의 소품, 고다르의 <주말>의 트래킹 시퀀스, <따로 또 같이>의 카페 장면에 대한 오마주가 있으며, 장 마리 스트라우브의 구도, 오즈 야스지로의 쇼트, <친애하는 당신>의 크레딧의 변형, 또한 성서와 디오게네스의 일화의 코믹한 인용 등도 망라됩니다. 아마도 그 인용들의 최종 목록은 정성일 감독만의 영원한 비밀일 것입니다.

물론 <카페 느와르>는 암호를 매설하고 그 암호를 푸는 자에게만 입장을 허용하는 퍼즐의 제국이 아닙니다. 이 영화는 영화광의 단순한 지적 유희가 아니며, 이 영화의 인용과 변주들은 텍스트 내부에서 다른 요소들과 긴밀하게 상호작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영화는 엄격한 계획의 산물이 아니라, 장소의 물질성과 구체성, 그리고 우연성을 신뢰하는 열린 영화임에도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카페 느와르>에는 당대의 영화광이자 필사적 탐독가으로서의 정성일의 사적 기억의 몽타주, 교양의 아카이브가 담겨 있습니다. <카페 느와르>는 많은 해석과 반응에 열려 있으면서 동시에 영원히 개인적인 영화, 감독과의 최종적이고 궁극적 대화를 대화를 실현할 초(超)수신인(바흐친)을 기다리는 그런 영화이기도 합니다. <카페 느와르>는 한국영화사에서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 진정한 21세기의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