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활 The BOW
 


2005, 드라마, 90분, 15세 관람가

배급/제작 : 김기덕 필름
제 작 : 김기덕 l 프로듀서 : 강영구
각본/감독 : 김기덕
촬영(D.O.P) : 장성백
미 술 : 청솔아트 l 편 집 : 김기덕
음 악 : 강은일 l 동시녹음 : 정현수
해외배급 : 씨네클릭아시아 ...more

2005년 5월 12일(목) 개봉
홈페이지 ...thebow.cafe

제58회 칸 영화제 공식부문 '주목할 만한 시선' 초청!


 

출 연
노인 II 전성환
소녀 II 한여름
대학생 II 서지석


= 영화리뷰 =


망망대해에서 펼쳐지는 노인과 소녀의 기묘한 러브스토리

 

활, 무기가 될 수도 악기가 될 수도 있는 이중성을 가진 물체. 감독은 그 '활'이란 물체에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사방을 둘러봐도 푸른 바다와 하늘밖에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 그 한가운데에 표류된 듯 떠있는 낡은 배 안에는 바다낚시꾼들을 뭍에서 작은 고기잡이배로 실어오는 일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는 노인과 10년 동안 한 번도 바다 밖을 나가본 적이 없는 소녀가 살고 있다. 바로 그 소녀를 낚시꾼들의 끈적끈적한 농과 쓰다듬음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노인의 활이다. 노인은 바깥세상에서 온 낚시꾼들의 손길이 소녀의 몸에 닿자마자 활시위를 당긴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자신의 여자에게 가해지는 성적 희롱에 대한 분노뿐만 아니라 세상과 철저히 격리된 듯한 그들만의 공간에 유일하게 드나드는 외부인들의 손길이 견딜 수 없기 때문이리라.

한창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할 만한 나이인데도 소녀는 뭍으로 나간 노인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노인이 태워온 바다낚시꾼들에게 희롱 당하고 그들에게 활 점을 쳐주기 위해 그네에 올라타며 아무런 불만 없이 행복해 보이기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녀 또래의 젊은 낚시꾼이 배에 찾아오면서 소녀와 노인의 태풍전야처럼 잔잔하기만 했던 일상의 평화는 조금씩 깨지기 시작한다. 젊은 낚시꾼은 넓은 세상을 느끼지 못한 채 배 안에 발이 묶여있는 소녀에게 연민과 매력을 느끼고 그녀를 뭍으로, 세상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노인을 설득하기에 이른다.

영화에서는 소녀가 어떻게 노인을 만나 배에 오르게 됐는지 노인이 왜 그토록 소녀를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키고 굳이 수십 년의 나이 차를 초월해 백년가약을 맺으려고 하는지에 대한 까닭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어린 소녀에게 욕망을 품고 오로지 자신만이 소녀를 가지기 위해, 세상 사람들의 더러운 시선으로부터 소녀를 보호하는 노인을 젊은 낚시꾼이 말했듯이 이기적인 유괴범이라고만 치부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노인은 소녀를 사랑했고 그 사랑이 완성되는 순간을 소녀가 장성해 자신의 여자가 되는 순간이라 믿기 때문이었으리라. 자신의 사랑을 인정해 주지 않을 세상을 향해 그렇게 활시위를 당겨댄 것은 아니었을까.

활을 쏘고 연주하는 노인은 활이 가진 그 이중성을 모두 내포한 인물이다. 소녀를 향한 시선과 세상을 향한 시선의 차이는 너무나도 극명하다. 소녀를 세상으로부터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에서 오는 팽팽한 긴장감과 자신의 여자가 될 소녀를 바라보며 음악을 만들어 내는 아름다움은 이 거친 바다의 노인이 동시에 가지는 아이러니이다.

김기덕 감독은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무기인 특유의 기묘한 상상력을 이용한 상징으로 영화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 스토리보다 그 상징이 깔려 있는 이미지들의 연결과 그 고리들에 초점을 맞추며 극을 따라가는 것이 '활'을 감상하는 묘미이자 방법일 수 있다.

2005.5.18 / 코리아필름 객원기자 김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