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흑수선 Last Witness
 


한국, 2001, 미스테리 액션 스릴러

제 작 : ㈜태원 엔터테인먼트
각본/감독 : 배창호
프로듀서 : 김송현
촬 영 : 김윤수
조 명 : 이승구 / 편 집 : 김 현
미 술 : 오상만 / 음 악 : 최경식
동시녹음 : 강봉성(한양)
무술감독 : 정두홍
조감독:김윤재,김한상,김명주,황동궁
배 급 : ㈜시네마서비스 ..more

2001년 11월 16일 개봉
홈페이지 www.lastwitness.com

= 제6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

스틸 사진 보기...more


 

Investigator 수사관
오형사 역 : 이정재
수사반장 역 : 정진각
소형사 역 : 정상철
천형사 역 : 이대연

Suspects 용의자
손지혜 역 : 이미연
황석 역 : 안성기
한동주 역 : 정준호
강만호 역 : 강성진
김중철 역 : 김수로


= 시놉시스 =

- 2001년 11월, 반세기의 비밀이 밝혀진다!!
그녀의 또다른 이름... <흑수선>

볼 수 없는 또 다른 역사, 그 속에 비밀이 있다

시체 한구…
  한강에서 떠오른 한 노인의 시신(양달수).
이 사건을 쫓는 오형사(이정재)는 사건의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 간다.
현장에서 발견된 특수 제작된 일본 금속안경.
'대량(大良)'이라는 명함 조각.
그리고 양달수의 방에서 발견된 결정적인 두 장의 사진.

탈출 포로들과 또 다른 살인
 

사진의 장소 거제 옥천초등학교를 찾은 오형사.
그는 오래된 손지혜(이미연)의 일기장을 발견하게 되고,
거제포로수용소를 둘러싸고 있는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된다.

한국전쟁당시 탈출포로 검거일을 했던 양달수는
탈출 포로 손지혜를 데리고, 어느날, 거제도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손지혜를 사랑하던 황석(안성기)은
50여년간 비전향 장기수로 형을 살고
최근에 출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편 한국전쟁당시 양달수와 함께 포로를 검거했던 지서주임 김중엽이 죽는,
또 다른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그리고…반전
  금속안경테의 주인이 일본인 사업가 마에다 신따로임이 밝혀진다.
그리고, 한국전쟁당시 인민대장이었으며
손지혜와 함께 탈출하다 총살 당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한동주(정준호)가
'마에다 신따로'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형사는 양달수가 살인당한 즈음에 한동주가 한국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를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주목하는데...

 

About History : 거제도 포로수용소?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거제시 신현읍 고현리에 위치했으며 한국전쟁 후 1950년 11월에 만들어졌다. 한국군포로 15만, 중공군포로 2만으로 총 17만명의 포로를 수용했으며 300여 명의 여자 포로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용소내 '반공포로'와 '친공포로'간의 유혈사건이 자주 발생했으며 1952년 5월 7일 수용소 사령관 돗드 준장이 납치되기도 했다. 휴전협정이 이뤄지자 수용소는 폐쇄되었고 친공포로는 판문점을 통해 북으로 송환되었다. 1999년에, 남아있는 포로수용소 건물 일부를 '포로수용소유적관'으로 완공해 1999년 10월 15일 개장했다.

연혁
- 1950년 11월 UN군에 ㅡ이해 거제시 신현읍, 연초면, 남부면, 일부 36,300,000평에 수용소 설치
- 1951년 6월말까지 한국포로군 15만, 중공포로군 2만 17만명의 포로수용
- 1951년 12월 11일 포로교환 합동 분과위원회 구성 1952년 2월 포로송환대비 포로분류심사 실시 1952년 2월 18일 포로송환 심사 항거 폭동 1952년 5월 7일 포로수용소 사령관 프란시스, 돗드준장 납치 감금 1952년 5월 9일 폭동진압을 위해 수용소 인근 주민 1,116세대 소개 조치 1952년 6월 10일 친공포로 분산수용 1953년 6월 18일 이승만 대통령 반공포로 27,389명 석방 감행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 조인으로 수용소 폐쇄 1999년 10월 15일 포로수용소 유적관 개관 현재 2만 여 평의 포로수용소 '테마파크


About History : 한국전쟁
 

한국전쟁의 경과보고
- 1950/06/25 한국전쟁 발발
- 1950/06/28 한강교 폭파, 서울 실함, 유엔안보리 군사원조 결의
- 1950/10/01 남한군, 38도선 돌파 북진
- 1950/10/19 남한군과 유엔군, 평양 탈환
- 1950/10/25 중공군, 제1차 공세 개시
- 1951/01/04 1.4 후퇴, 서울 피탈
- 1951/03/15 남한군, 서울 재탈환 및 북진
- 1951/06/23 말리크 소련 유엔대표, 휴전회담 제의

: 휴전회담 및 전쟁종결기(1951.7.10~1953.7.27) - 포로송환 문제 대두시기

- 1951/07/10 개성에서 휴전회담 개시
- 1951/10/25 휴전회담장 판문점으로 이동
- 1951/12/18 쌍방 포로명단 교환(포로수용소 반란의 초석이 됨)
- 1953/04/20~26 부상병 포로 교환
- 1953/06/08 포로 송환 문제 타결
- 1953/06/18 이승만 대통령. 반공포로 석방
- 1957/27 휴전협정 조인


About History : 비전향 장기수
 

<흑수선>의 '황석'은 비전향 장기수 중 해방이후 한국전쟁이 종결되기 전까지 좌익활동과 연관해 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빨치산 세대"다.

1951년에서 종전까지의 상황은 '앞줄 사형, 뒷줄 무기'식의 완전요식행위의 재판과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난장판이어서 "돈 없으면 죽고, 5만 환을 내면 사형수가 석방되고, 3만 환밖에 내지 못하면 사형에서 무기로 감형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을 정도다. 감옥안의 실태는 세 숫갈만 먹으면 없다는 기아급식, 추위, 그릇이 없어 고무신으로 국을 받아먹어야 했던 심각한 물질적 결핍, 내부갈등 등으로 인해 아비규환의 생지옥을 방불케 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들 대부분은 사형을 선고 받고 처형되거나 옥사 하였고, 유기형은 만기출소, 무기를 받은 경우는 4·19 직후 민주당 장면 정권이 들어서면서 '간첩죄'를 제외한 무기수에 대해 일괄적인 20년 감형조치가 있어 60년대말에서 70년 초에 모두 석방된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적절한 관리의 필요성과 이데올로기 탄압의 하나로 박정희 정권때인 75년에는 <사회안전법>을 날치기로 통과시키고 전향하지 않는 사람은 다시 '청주 보안 감호소'로 재구금시켰다. 이 당시는 사실상의 영구집권을 꾀하는 유신체제에 대한 국민들의 거센 저항과 이에 대한 국가권력의 노골적인 탄압사이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였다.

결국 89년에 <사회안전법>이 "그 적용범위도 광범위하여 국민의 기본적인 인권제약을 가하여 왔다는 비판"을 입법기관인 국회가 받아들여(1989, 국회민주발전을 위한 법률개폐특별위원장의 개정이유중에서)<보안관찰법>으로 대체 입법됨으로써 당시 전향을 거부하고 '청주보안감호소'에서 수감되어 있던 51명의 보안감찰 감호자는 모두 출소하게 된다.


About History : 남조선 노동당
 

1946년 11월 서울에서 결성된 공산주의 정당

설립연도 : 1946년
구 분 : 정당
소재지 : 서울
설립목적 : 남한의 공산화 공작
주요활동 : 남한의 공산주의 세력 규합, 민주주의 민족전선 결성, 총파업 주도,

줄여서 일명, 남로당이라고도 한다. 1946년 11월 조선공산당과 남조선신민당(新民黨)및 조선인민당(朝鮮人民黨)이 합동하여 창당되었다. 일제강점기 1925년 조선 공산당을 결성한 공산주의자들은 광복이 되자 1945년 9월 20일 조선공산당을 재건하였고, 북한에는 같은 해 10월 북조선분국을 두었다.

당시 남한에는 여러 좌익 정당들이 있었는데, 남한에서의 기습적인 조선인민공화국 수립선포, 신탁통치 지지 표명, 정판사사건(精版社事件)이후, 공산당의 활동은 거의 정지상태에 있었으므로, 남한에서의 세력을 재정비하기 위하여 남조선노동당을 조직했다. 그러나, 좌익계이면서도 공산주의자가 아닌 일부 지식층이 1947년 5월 근로인민당을 조직하자, 좌익계 단체들은 남조선노동당과 근로인민당으로 양분되었다.

남조선노동당은 합법적으로 남한의 공산화공작을 계속하였고, 1946년 2월 민주주의 민족노선을 결성했다. 1946년 8월 29일 북한에 북조선노동당이 결성되었으며 1950년 4월 남북의 노동당이 조선노동당으로 통합됨으로써, 남조선노동당은 김일성 지배하에 들어갔다. (출처 : 두산 세계 대백과 EnCyber)

 

 

감 독 - 배창호

80년대 최고의 흥행감독 & 스타일리스트

배창호 감독은 90년대 작가주의 감독과는 달리 대중과의 접촉 면적이 넓었기 때문에 당시에 한국영화의 흐름을 주도하였다. 80년대 개연성이 없는 반전이나 지나친 극단적인 감정을 강조하던 당시의 신파적인 흐름을 극복한 감독이 바로 배창호 감독이었다. 특히 배창호 감독은 <황진이>에서 롱테이크를 한국영화사상 처음으로 시도하면서 자신만의 영화스타일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당시 '스타일리스트'라는 수식어를 받을 정도로 평론계에서 극찬을 받기도 했지만 정작 자신은 '영화소재에 따라 변하는 것이지 자신은 특별히 추구하는 스타일이 없다'라고 말한다. ...연출의도

[Filmography]
<꼬방동네 사람들>(82) <적도의 꽃>(83) <깊고 푸른 밤>(84)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84) <고래사냥>(84) <고래사냥2>(85) <황진이>(86) <안녕하세요 하나님>(87) <꿈>(90) <천국의 계단>(91) <젊은 남자>(94) <러브스토리>(96) <정>(00) <흑수선>(2001)

[수상경력]
- 1983년 대종상 감독상 <꼬방동네사람들>
- 1983년 한국연극영화예술상 감독상 <꼬방동네사람들>
- 1984년 영평상 감독상 <고래사냥>
- 1984년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감독상 <적도의 꽃>
- 1985년 한국연극영화예술상 감독상 <깊고 푸른 밤>
- 1986년 대종상 감독상 <깊고 푸는 밤>
- 2000년 이탈리아 우디네이 아시아영화제 최우수 관객상 <정>
- 2000년 프랑스 베노데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최우수 관객상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