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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나인뮤지스; 그녀들의 서바이벌>은 어떻게 시작된 다큐멘터리인가요?
A. 원래 제가 기획했던 작품은 DMZ였습니다. 전작이 탈북자 인권에 관한 것이었기에, 분단 문제를 심도
있게 다뤄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해당 주제를 더 이상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에 봉착했습니다. 고민
하던 중에 TV에서 어느 유명 아이돌 그룹의 인터뷰를 봤습니다. 우연이었는데, 갓 스물을 넘은 그들은 마치
인생을 다 배운 사람 같은, 즉 교과서 같은 대답을 천연덕스럽게 하더군요. 순간, 머리 속에 아주 많은
생각이 지나갔습니다. 저들이 혹시 매니저들의 생각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는 아바타는 아닐까? 저 어린 나이에
인생을 다 알아버렸으니, 그 과정은 얼마나 지난했을까? 과연 무대 뒤에서도 저 그림 같은 미소를 계속 지을
수 있을까? TV 카메라 앞에 앉기 까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까? 이미 인생의 정점에 서 버린 저
어린 영혼의 나머지 인생은 어떤 모습일까? 그래서 어떻게든 케이팝 스타들의 이면의 모습을 반드시 담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Q. 제작 기간은 어떻게 되는지요?
A. 촬영만 1년 했습니다. 편집과 후반 작업에 1년이 더 걸렸습니다. 사실 스타제국으로부터 촬영을 허락
받은 시간이 정확하게 1년이었습니다. 세라의 인터뷰는 그 1년 동안 마치 버릇처럼.. 종종 계속했습니다.
그 중에 골라서 쓴 것이기에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이뤄진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전체 스토리 촬영은 허락 받은 1년 동안 꾸준히, 매니저들과 같은 스케줄로 스타제국에 출근하면서 이뤄진
것이랍니다.
Q. 촬영 전에 예상했던 것과 달랐던 부분이 있었다면 어떤 것인가요?
A. 스타제국에 들어서기 전에 제게는 선입관이 있었지요. 매니저는 가해자, 스타지망생은 희생자라는 이분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생활을 하면서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또 불만을 가슴에 담고 살면서도 차마 연예기획사를
떠나지 못하는 수많은 연습생들을 목격했습니다. 그러면서 가해자는 과연 누구인가? 하는 의문이 차츰 들기
시작했습니다.
나인뮤지스의 데뷔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무대 위에서 예상 밖의 실패를 마주한 순간, 매니져와 연습생이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서로에게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을 봤습니다. 결국 저들은 같은 배를 탄 사람들이
아닌가? 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이돌 스타 산업이라는 건, 각자의 욕망이 만들어낸 비즈니스 현장이 아닌가,
하는 판단을 이제야 합니다. 결국 스타가 되겠다는 욕망, 스타를 만들어서 명예와 부를 거머쥐겠다는 욕망이
그들을 스스로 옥 안에 가둔 것이라고 봅니다. 동시에 TV브라운관 앞에 숨어서 어린 소녀들의 노출과 노래,
춤을 요구하는 우리네의 욕망이 그들을 불구덩이로 몰아세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 아이돌 산업을
보면,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소비자들의 욕망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이라는 판단을 하게 됐습니다.
Q. 탈북자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천국의 국경을 넘다>에서 케이팝 문화-아이돌 그룹의 모습을 기록한 <나인뮤지스;
그녀들의 서바이벌>로 이어진 행보가 독특해 보입니다. 각 작품의 주제를 결정하고 기획하게 된 가장 큰 동기는
무엇이었나요?
A. 소재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목숨을 내놓고라도 제작하고 싶은 작품인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탈북자 다큐멘터리에서도, 케이팝 다큐멘터리에서도 저는 포기할 수 없는 강한 이끌림을 느꼈습니다. 탈북자를
취재하는 동안, 밀입국을 하고, 밀항선을 탄 게 여러 번입니다. 혹자는 묻습니다. 두렵지 않았느냐고, 대체
왜 그런 짓을 하느냐고. 하지만 당시에는 그 위험을 모르고 불나방처럼 작품에 매달렸습니다. 그만큼 자유를
찾는 탈북자와 함께 하는 삶이 좋았거든요.
나인뮤지스를 촬영하면서 저는 어린 시절의 제 모습을 종종 만났습니다. 목표를 앞에 두고 무너진 적 많은
재능 없는 인간이었습니다. 유난히 가난해서 욕심 내던 모든 것을 누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포기할
줄 모르는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이었습니다. 지나간 제 부끄러운 모습을 연이어 발견하면서 저는 자주 연습실에서
숨어 울었고, 가끔은 껄걸 웃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1년이 훌쩍 지나갔고, 편집하는 또 다른 1년이
지나가서 2년을 채웠네요. 두 가지 소재의 작품을 하고 나서야, 이제 겨우 다큐멘터리 연출에 눈을 떠갑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작품을 연출했기에 죄스러운 마음도 많습니다.
Q. 보여지는 이미지가 특히나 중요한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그들 측면에서는 공개하고 싶지 않은 부분들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촬영에 있어 어려움을 느꼈던 순간은 없었나요?
A. 어느 날 스타제국 사장님이 연습실에서 촬영하고 있는 제게 와서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맨날 같은
연습실만 찍어대다 결국 작품도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러다 회사에서 쫓겨나는 것 아닌가요?" 그가 진심으로
걱정하면서 전한 말입니다. 감사한 일이죠.
사실 기획사가 보여주고 싶은 것과, 저희가 담고 싶은 것은 정 반대의 내용이었을 겁니다. 때문에 촬영하는
매 순간, 저희는 가슴을 졸였습니다. 두어 번 쫓겨난 적도 있었습니다. 가끔 스탭들에게 고백한 적 있습니다,
"탈북자 촬영보다 이번 촬영이 더 힘든 것 같다." 전작과 이번 작품의 스탭이 거의 같았는데, 그들은 제
고백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입니다.
지나간 촬영 1년도 힘들었지만, 편집을 했던 1년도 힘들었습니다. 스타제국 식구들과 나인뮤지스 멤버들에게
정이 담뿍 들었던 탓입니다. 지나치게 민감한 내용은 빼내고 싶었고, 그들의 내면을 농밀하게 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촬영한 내용은 내면을 표현하기에 충분하지가 않았습니다. 연출자인 제가 모자란 탓입니다. 결국 기획
의도 대로 무대 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내보내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걸러내야 하는 게 참 많았습니다.
그래서 마음 고생이 잦았습니다.
Q. 다큐를 통해 경험한 연예계는 인기가 성공의 척도가 되고, 대우 또한 그에 따라 결정되는 듯 보이는데요.
그런 곳에서는 '너무 출세하지 않고 아래도 쳐다보며 사는 삶'을 잊기가 쉬울 것 같습니다. 지금의 나인뮤지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A.
지금도 저는 TV에 나인뮤지스가 나오면 마음 편히 보지를 못합니다. 혹시라도 노래에 실수 할까봐, 안무가
틀릴까봐 마음을 졸이면서 시청합니다. 그녀들이 등장하는 매 순간, 저는 로드 매니져와 같은 심정으로 그들을
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그녀들이 스타가 되는 것보다, 그녀들이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친동생처럼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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