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단편의 선택 : 비평가 주간] 디지털의 독립선언 : 낡은 것으로부터의 탈주

디지털영화는 항상 새로움으로 다가온다. 어떤 영화는 너무나도 선명한 화면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끌어들이는가 하면, 어떤 영화는 희뿌연 화면으로 인해 관객들에게 몽롱한 기분을 선사한다. 디지털 영화는 항상 경계와 원칙이 없는 무한한 다양함으로 다가온다.

이번 전주영화제에서 '한국 단편의 선택 : 비평가 주간'에서 '디지털의 독립선언 : 낡은 것으로부터의 탈주'에 초대된 작품들 또한, 다양한 형태의 구성과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황철민 감독의 <삶은 달걀>은 전개가 매우 느리다. 내용만을 보여주기 우해 만들었다면 더욱 짧게 만들수도 있는 영화이지만, 감독은 자살을 생각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숩게 이해가 되는 것이 아닌 몰두가 필요한 내용으로 파악하여 관객들이 영화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느리게 진행하는 배려를 하고 있다. 사북의 폐광으로 인해 삶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아버지와 그의 딸, 그리고 카지노에서 도박으로 모든 돈을 잃은 한 남자. 이들 셋은 비록 이들이 죽음에 이르게 되는 원인에서 과정까지의 길은 다르지만, 죽음과 삶이 지니는 원초적인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 <삶은 달걀>은 심각한 내용에 비해 다소 농담스러운 'Boiled Eggs'라는 영어제목을 지니고 있지만, 감독은 'Life is...'라는 개념으로 관객에게 생각을 시간을 마련하고 있다.

최양현 감독의 <자살비디오>에는 크레딧이 없다. 영화를 보다보면 대본없이 만든 영화인 것 같은 느낌이 전해진다. 자살사이트가 사회적 문제가 되던 시기에 자살이라는 소재로 영화를 착상한 후, 주위에 자살미수자를 취재하면서 쓴 대본없는 소설형식의 간단한 시나리오로 배우들에게 즉흥연기를 시도하면서 하루만에 촬영하는 등 순전히 아마추어식으로 보이려는 프로의 의도가 영화에 숨겨놓고 있다. <자살비디오>는 자살사이트 상담 게시판에서 만나 여러 차례 연락을 오고가다가 실제로 만난 영필과 상운이 결국 동반자살을 결심하고 다른 이에게 자신들이 자살하는 모습을 찍어달라는 영필의 부탁에 동행을 하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렇다고 자살이라는 소재가 무언가 교훈을 주고 계몽성을 강조하기 보다는 픽션과 논픽션, 거짓말과 사실사이에서 교류하는 영화의 매체속성을 이용한 다큐형식의 영화이다.

<탐폰 설명서>를 보는 이들은 내내 웃음을 그치지 못한다. 그렇다고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코미디적인 요소가 가득한 영화는 아니다. <성새론> 감독은 영화라기 보다는 뮤직비디오 혹은 제품설명서의 느낌이 가득한 이 영화를 여성감독이였기에 표현 가능했던 아기자기함과 귀여움 및 아름다운 색채를 한껏 담아내고 있다. 또한, 생산의 기능인 일반 생리대로서의 용도외에 쾌락의 상징인 마스터베이션, 레즈비언 섹스라는 취향으로의 다른 용도로 쓰일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각 장에서의 화면 구성형식과 영화 전반의 흐름을 이끌어주는 음악으로 인해 디지털이라는 매체와 단편영화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일반인들도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영화이다.

<연애에 관하여>를 보고 있노라면 연애라는 것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김지현 감독은 연수, 현경, 정민의 자신들의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맘껏 하게 하면서 내심 입으로 드러내진 않는 숨겨진 연애의 모습을 밝힘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이 결코 진실할 것인가 의심을 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에 대한 넘쳐나는 우월감으로 연애담을 말하던 연수는 연애에 있어 성공한 사람으로 표현되는 듯 하다가 새로운 연인 정민으로 인해 승욱에게 버림받은 패배자로 그려진다. 결국, 연애에 있어서 그 누구도 패배자도 승리자도 아닌 모두 사랑받고 버림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다른 이들의 연애담을 엿듣는 형식으로 영화가 진행된다.

이송희일 감독의 <굿 로맨스> 자칫 문제성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소재의 영화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원조교제의 고정관념적 형식을 뒤엎어서 33살의 여자와 18살의 소년의 로맨스를 보여준다. 이 둘의 데이트는 여느 커플들의 데이트와 다를 바 없이 함께 산책하고 식사를 하고 섹스를 하지만, 서로가 크게 다르기에 작은 일로 싸우고 그것이 섹스 후 대가로 돈을 주는 원조교제로 보여지게 된다. 그렇다고 어느 한 편의 입장에 서서 무분별하게 편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초점에서 번갈아 보여주면서 그들의 로맨스가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렇듯 디지털의 독립선언으로 분류된 다섯편의 영화는 디지털이라는 공통요소를 제외하고는 그 소재와 보여지는 영상의 성격에 있어서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또한, 그런 차이들은 디지털이 보여줄 수 있는 무한한 다양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코리아필름 명예기자 변은혜